나에겐 몹쓸 병이 하나 있는데, 평생을 걸려도 못 고칠 병인 것 같다. 그건 바로 중2병... 오랜만에 병이 또 도져, 소설과 단어,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갑자기 했다. 그래서 그 고민의 결과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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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데 있어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 편의 시가 쓰이기 위해서는 시를 표현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단어의 선택이 중요하며, 100가지 잘 쓰인 단어 속에서 부적절한 한 단어의 두드러짐은 모든 글 쓰는 이들의 심장을 녹인다.
그래서 글을 쓸 때에는 단어를 잘 선택해야 하기도 하지만, 또 그 단어의 의미를 잘 전달하기 위한 bulid up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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텁썩부리 장한이 앞에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이 미친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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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기에 나오면 안 되는 장면일 것 같은데, 이 걸 한 번 각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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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췌해진 여자는 비틀 거리는 걸음으로 남자 앞에 쓰러지듯 앉았다. 온몸에 힘이 조금도 남지 않은 듯한 그녀였지만, 금색 빛 테투리가 둘러진 상자를 꼭 쥔 손은 파란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다.
사실 그랬다. 그 상자는 도저히 그녀의 힘으로 구할 수 없는, 거친 악어의 이빨을 거치고, 누구도 건널 수 없다는 수라의 강을 건너, 겨우겨우 구해온 신비의 영약 아스피린이 들어 있는 상자였다. 그만큼 귀한 약이기에, 그래서 실수로 떨어뜨릴까 꼭 쥐고 있는 걸까.
아니 그녀는 그 약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니라 그였다. 바로 앞에 앉아있는, 괜찮은 것 같지만 도저히 고치지 못할 감기를 앓고 있는 그 사내에게 필요한 약이기에, 그녀는 그 가녀린 손으로 상자를 조심히, 꽉, 그렇게 쥐어 넘겼다.
텁썩부리 장한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이 미친년아.'
그녀는 처연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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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얼마나 구차하냐 하면,
'여인은 텁썩부리 장한을 사랑하고, 텁썩부리 장한도 그녀를 사랑한다.'
라는 한 줄의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서, 길고 긴 내용을,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만들어가며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년을 넘게 소설이 사랑과 우정을 얘기하고, 정의를 얘기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질리지 않아 하는 이유도 이 구구절절함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소설가는, 글을 쓰는 사람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양하게 설명하기 위해 100장, 천장의 구구절절함을 써 내려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구절절함과, 그리고 그 구구절절함이 잘 정리된 스토리는, 우리를 감동받게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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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결국 우리가 하는 일도, 삶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우리는 생각보다 정답을 당연히 알고 있다. 사람들에게 진실해야 하고, 거짓을 말하면 안 되고, 사랑을 할 때는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정답을 알고 있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하나하나씩 쌓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의 마음은 단어 하나로 전달되지 않는다.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 한 문장이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그 사이에 쌓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구구절절함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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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단어를 의미 있게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매일 구구절절함을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