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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남동 심리카페 May 21. 2019

마음이 깨졌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심리카페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상담을 해주다 보면, 자신이 겪은 상실의 감정을 잘 다루지 않고 빨리 벗어나기 위해 애썼던 시간에 대해 자주 듣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회피라는 방어기제로 오랜기간 그 상처의 영향 안에서 살아가게 되죠. 저 역시 그랬었구요.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친한 친구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갔을 때에도 몰랐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고, 그리고 어떻게 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요.


마음이 깨졌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가만히 그냥 있으셔도 돼요. 깨진 마음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해요. 환경, 깨진 마음을 복구하려고 서둘러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 보류하세요. '마음이 깨진 나'에게 고요한 시간 허락하는 게 자신을 아끼는 태도예요.

-부부 심리상담가 김선희의 트위터 글 중에서.


예전에 제 심리카페에서 어떤 여자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꽤 시간이 지난 후부터 그냥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가 생겼어요. 뭔가 막 슬픈 건 아닌데 뭔가 서글프고 서러운 느낌이 올라오면서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저도 당황했던 적들이 있어요."



살다 보면, 여러 일들로 인해 마음이 깨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의 작은 일부분이든, 마음 전체든, 마음이 깨졌을 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깨진 마음이 다시 붙고 아물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깨졌을 때는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충분히 울어도 돼요. 아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도 한바탕 끝까지 우는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충분히 울면서 마음을 추스르지 않고 이성적으로 억누르거나 회피하며 빨리 회복하려고만 한다면, 마음을 깨지게 한 시간에 계속 얽매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눈물이 나면 눈물이 나는 대로
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세요.



"그럼, 저보고 무너지란 말이세요?"


네,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무너지세요.



아니, 안 무너지려고 하는 마음까지

무너뜨리고 펑펑 우세요.


방바닥이든, 도로 위 보도블록이든, 한 없이 슬프고 서러운 마음 다 쏟아낼 수 있게 펑펑 우세요. 울다가 지쳐 쓰러질 정도로 우세요.



한동안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저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죠. 그저 감정을 참고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걱정 끼치지 않고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제가 있을 뿐이었죠. 마음이 깨져있었던 그 순간에.






저에게는 특별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사교적이어서 친구며 선후배며 참 아는 사람들이 많은 친구였죠. 반면 저는 그 반대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친구랑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대신, 한 여름의 12시가 넘은 어느 늦은 밤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독서실에서 집으로 가고 있었죠. 그러다 별을 보자며 아파트 단지 안 아스팔트 위에 등을 대고 누웠습니다. 그러고는 두 눈 위로 펼쳐지는 밤하늘의 별을 보았죠.


저에게 이 기억이 잊히지 않는 건, 제 등으로 느껴지던 아스팔트의 따스한 온기와 함께 다른 거 신경 안 쓰면서 같이 밤하늘의 별을 보는 친구가 옆에 있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행동을 즐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죠.






저에게 이 친구는 분명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이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꼭 제가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한 것을 보면, 이 친구에게 저의 존재도 흔하고 평범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도 많고 친한 사람들도 많던 친구인데 저를 따로 불러 결혼식 사회를 부탁한 것을 보면요. 이 친구에게도 저는 특별한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친구에게 제가 생각했었던 것보다 더 크고 특별한 존재였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은, 이 친구의 결혼식이 아닌, 이 친구의 장례식에서였습니다.



네, 제 친구는 몇 년 전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제 친구의 병명은 혈액암이었습니다. 희귀 혈액암 진단을 받고 4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장례식장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자신이 암에 걸렸고,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더군요. 저는 4개월 동안 이 친구가 어떤 시간을 겪고 보냈는지를 보고 듣고 같이 있어주기도 하면서 알고 있는 것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어요.


저는 장례식장에서 이 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로 소개받으며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한두 번 정도 본 사람들도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결혼식장에서는 사회를 보았었는데, 장례식장에서는 어떻게 된 일이고, 어떤 시간을 보냈고,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었고, 이렇게 되어서, 이렇게 되었어요.라고요.


입관할 때에도 가장 친한 친구라고 입관식 하는 곳까지 참석하게 해 주셨고, 저는 이 친구 아버님 곁에서 손을 잡아드리고 위로를 해드렸었죠.



하지만

저는 저의 슬픔에 대해서는 드러내고 표현하지 않고 그냥 묻어버리고 품어버렸습니다.


저의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을 때에도 그랬었죠. 제대로 울어 보지를 못했었습니다.






저는 충분히 울 줄 몰랐습니다.


울어도 되는 줄 모르는 사람처럼 무너지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을 더 슬프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슬플 때에는 울어도 된다는 것을 보고 자라지 못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물에 수용적인 가족 분위기는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나에게도
나와 같이 말해주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척 나르시시즘 같은 말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제가 잘나거나 특별하거나 뭐 그런 류의 생각으로 갖게 된 생각은 아닙니다.


단지, 그저, 그냥 제가 느끼고 겪는 감정과 마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헤아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그냥 저 보고 마음껏 울라고, 울어도 된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울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큰 상실과 슬픔을 겪게 될 때, 그 감정을 다루어주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섬세한 사람에게 분명 안 좋은 영향과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그 순간에는 어떻게든 넘어갔다 하더라도. 저를 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혼자 빨리 적응해버리려는 방식은 그 순간은 빨리 넘어갈 수 있었을진 모르지만, 대신 오랜 시간 많이 힘들게 만들었고, 지금도 그 영향을 받고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도입 글로 적은 글의 김선희 님은 부부 심리상담가로 일하시면서 방송에도 나오곤 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저의 아주 먼 친척 누나이기도 하죠. 제가 공대에서 아동학과로 편입했을 때, 제게 점심을 사주며 이런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힘든 일을 견디게 해주는
'마음의 힘'인 것 같아.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갖게 된 생각은, 마음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고 쏟아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졌을 때, 계속 참고 억누르고 묻어주는 것은 자신을 아끼는 태도가 아닙니다.


자신을 아끼지 않는 태도에서는 마음의 힘이 자라나기 힘듭니다. 괜찮은 척, 센 척만 하고 있을 뿐이죠. 충분히 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슬퍼하고 있는 자신을 아껴주는 일이고, 섬세한 사람에게는 특히 더 필요한 시간입니다.



부디, 마음이 깨졌을 때는, 충분히
울 수 있는 시간을 가져주세요.






마지막으로, 마음이 깨져있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특히, 죽음이든, 이별이든, 되돌릴 수 없어 선택한 파혼이든, 이혼이든, 상실과 상처로 인해 마음이 깨져있는 분들에게 일레인 아론의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말이 힘들 때 저에게는 힘이 되어주었거든요.


우리는 항상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가까운 사람들을 잃게 되곤 해요. 그렇기 때문에 잃게 된 사람들을 대신하기 위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있어요.

- <섬세한 사람에게 해주는 상담실 안 이야기> 중에서


충분히 울고 마음껏 슬퍼하면서 깨진 마음 추스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당신 곁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시간을 갖는 것은 빨리 현실에 적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충분히 그런 시간을 갖고 다시 일어나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디, 곁에 상실과 상처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충분히 울고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 추스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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