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를 쓰다

읽고, 쓰고, 달리다

by 글 쓰는 여자



말차 라떼를 시킨다. 말차 티라미수에 말차치즈케이크 한 조각도 더한다. 연한 그린 색은 언제 봐도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달콤 쌉싸름한 맛은, 바로 이것이 인생의 맛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원래 말차를 좋아했지만, 뒤늦게 유행을 타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걸 보니 묘하게 흐뭇하면서도 질투가 난다. 좋아하던 것이 유행이 되는 일, 그건 반갑기도 하고, 어떤 비밀을 들킨 기분이기도 하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 챗 GPT에게 묻는다. 요즘은 말차만큼이나 챗 GPT 사용도 유행이니까.

“저녁으로 뭘 먹으면 좋을까?”

챗 GPT는 친절하게 되묻는다. 혼자 먹을 건지, 가족과 먹을 건지, 간단히 먹고 싶은지, 제대로 차려 먹고 싶은지. 나는 ‘가족과 간단히’라고 입력한다. 순식간에 다섯 가지 메뉴가 제시된다. 볶음밥과 계란 프라이는 냉장고 속 재료로 금세 만들 수 있고, 김치찌개와 밥은 한 냄비로 만족감이 충분하다고 한다. 냉동실 속 찌개용 돼지고기를 생각하며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로 결정한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는 그칠 기미가 없다. 오늘은 달리기를 쉬어야겠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남편이 나의 달리기에 별 동요가 없는걸 알면서도, 일부러 큰 소리로 아쉬움을 담아 말한다.

“아, 왜 계속 비가 오는 거야? 나가지를 못하겠네.”

어쨌든 비님 덕분에 달리기를 쉴 수 있다. 내가 안 나가는 게 아니다. 비가 와서 할 수 없이 못 나간다.


주저하다 소파에 앉는다. 티브이에서는 요즘 한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는 소식을 전한다. 소주와 막창이 런던에서도 인기라니, 놀랍다. K-문화의 물결이 멀리서도 느껴진다. 유행은 이렇게 나와 상관없는 듯 보이지만, 어느새 내 일상으로 스며든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비가 그쳤다. 에휴, 한숨이 난다. 어기적어기적 일어난다. 운동복을 꺼내 입고,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다. 최근 주문한 허리 벨트에 휴대폰을 넣으니 손이 한결 가볍다. 모자를 쓰고, 두 귀에는 에어팟을 낀다. 오늘은 김지연 작가의 소설을 들으며 달릴 생각이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요즘 유행인 달리기를 시작해 보았는데, 나름 매력이 있다. 책 읽기와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유행이 계기가 되었거나 뒤늦게 주목받았을 뿐, 결국 나에게 맞는 것들이다.


“나, 운동 가.”

남편은 살살해,라며 대단하다는 눈빛을 보낸다. 같이 하지 않으니 가끔 얄밉다. 운동화를 신고 끈을 꽉 조이자, 마음까지 단단해지는 기분이다. 오늘도 나와의 약속, 주 3~4회의 달리기를 위해 출발.


천변을 달린다. 바람이 차다. 늦은 시간, 좋지 않은 날씨에도 꽤 많은 사람이 달리고 있다. 러닝을 시작한 지 고작 3주, 달랑 5킬로를 뛴다. 러닝 한다고 말하기에 민망하다. 힘들면 걷고, 살살 뛰다가, 가끔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러닝 앱으로 기록을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천변에서 만나는 너구리와 삵, 고양이는 힘들게 달리는 나에게 잠시 쉼표를 준다. 특히 우리 고양이와 똑닮은 삵을 만났을 때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오늘은 활기 넘치는 강아지 몇 마리만 보았다. 이런 작은 만남이 달리기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벌겋게 달아오른 내 얼굴에 뿌듯함이 배어 있다. 미루던 숙제를 끝낸 홀가분한 마음으로 발끝을 내려다본다. 흰 운동화에는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달리기, 책 읽기, 글쓰기, 말차 한 모금, 챗 GPT와의 짧은 대화까지. 유행이든 아니든, 결국 나를 채우고 즐겁게 만드는 활동들은 모두 내 하루를 완성하는 나만의 루틴이 된다.



099f2ff71a1c59dc673129bffa703df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일은 맑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