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를 쓰다

언니

by 글 쓰는 여자



캐나다로 돌아가는 날, 언니는 엄마에게 꼭 로봇청소기를 사드리라며 두둑한 현금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언니는 잊지 않았다. 언니는 그런 사람이다. 마음이 움직이면 미루지 않고, 해야 할 일을 곧장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나는 작년부터 마음만 먹고는 계속 미루다 잊어버렸는데 말이다.


25년 전, 언니는 형부의 공부를 위해 캐나다로 떠났다. 잠시 머물 생각으로 건넜던 바다였지만, 계획과는 달리 그들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살아냈다. 그때 나는 캐나다의 삶이 한국보다 한결 편할 거라고, 마음의 걱정은 덜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참 짧은 생각이었다. 낯선 땅의 계절과 언어, 어린 아기들, 멀리 있는 부모님, 그 사이에서 언니가 버텨낸 날들의 질감은 내가 막연히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거칠고 깊었을 것이다.


언니는 원래 힘든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편 없이 돌도 안 된 딸을 품에 안고 시댁에서 지냈을 때도, 생경한 이국땅에서의 삶에도, 오랫동안 투병하며 아파도, ‘힘들다’는 말을 꺼낸 적이 없다. 다시 만난 언니는 예전보다 더 아픈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를 먼저 걱정했다. 언니는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멀리 산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내 가정이 있다는 이유로 나는 언니에게 힘이 되지 못했다. 언니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잘 지내고 있는 사람으로만 여겼던 나 자신을 생각하면 한없이 후회스럽고 미안하다.


요즘에는 장녀들을 ‘K-장녀’라고 부른다. 유행처럼 번진 말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 한국 사회가 장녀에게 기대해 온 역할과 구조가 스며 있다. 가족의 중심을 잡고, 스스로의 아픔은 덮어두며, 누구보다 먼저 책임질 일을 찾는 사람들. 그 말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언니의 배려와 단단함은 성격이 만든 것인지, 아니면 장녀라는 자리가 빚어낸 모습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누군가의 짐을 대신 들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종종 외롭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언니는 그 길을 오래도록 말없이 걸어왔다.


언니가 떠나면서 나와의 거리는 다시금 멀어졌다. 어릴 적 언니에게 던졌던 미운 말과 행동들, 이제는 흐릿해진 장면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럼에도 늘 나를 품어주었던 언니. 나는 언니로 인해 두 번이나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그 덕분에 삶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언니가 건넨 손길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떨어져 살아도, 서로 다른 땅에 서 있어도, 마음 한쪽에서 늘 언니를 바라본다.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은 아무리 해도 모자라다. 언니가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오늘도 두 손 모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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