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를 쓰다

월요일 오후 2시 30분

by 글 쓰는 여자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냉정과 열정 사이』 속 여자 주인공 아오이는 햇살이 기우는 시간이면 욕조에 물을 받고, 칵테일을 마시며 책을 읽는다. 젊은 시절 온 마음을 바쳐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은 그녀를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욕조에서 그녀는 과거를 밀어내고 조용한 일상 속에 머문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혼자다.


매주 월요일 오후 2시 30분, 집에는 나 혼자고, 나는 아오이가 된다.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한다. 콸콸, 힘차게 쏟아지는 물소리와 이곳저곳 부지런히 가로지르는 로봇청소기 때문에 집 안은 잠시 분주해진다. 적당한 온도의 물이 알맞게 차오르면 수도를 잠근다. 거실에 음악을 튼다. 내 플레이리스트를 고르기도 하고, ‘차가운 이 계절을 닮은 이별 발라드’ 같은 리스트에 기대기도 한다. 필요할 때마다 없는 와인이 아쉽다. 딱 한 잔이면 되는데.


뽀얀 수증기가 내려앉은 욕실 문은 살짝 열어 두고, 샤워커튼을 친다. 로봇청소기가 멈추고 나서야 음악은 욕실 안으로 스며든다. 욕조 트레이 위에 노트북을 올려 전자책을 읽거나, 가끔은 종이책을 펼친다. 트레이의 폭이 좁아 욕조로 미끄러지거나 물이 튈까 수건을 깔고 늘 조심한다.


호기심 많은 냥이가 샤워커튼을 쓱 쓱 긁으며 야옹거린다. 커튼 틈새로 얼굴을 들이밀고 지금 거기서 무얼 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 녀석을 냉큼 들어 욕조에 넣는 짓궂은 상상을 한다. 욕실을 가득 울리며 수다를 떨던 냥이는, 이내 흥미를 잃고 자리를 떠난다.


편안한 시간이다. 느리고, 부드럽다. 이 시간은 완벽하게 나의 것이고, 나는 이 시간에 조용히 다독여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