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다고 말하는 조그마한 입술을 바라보다가
행복해지고 싶다 외치고 싶은
굳게 닫힌 입술을 떠올린다.
꽃 같은 그 작은 입술을 떠난
‘사랑해’라는 단어를 재빨리 움켜잡고
가슴 깊숙이 살고 있는 어린 나에게
살며시 놓아준다.
분명 따뜻한 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시린 바람이 인다.
왜 이리도 ‘사랑’, ‘행복’에 집착할까 생각했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 아이들의 말은 가공된 것이 분명 아닐 텐데, 나는 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붙잡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일까 생각했다. 만들어놓은 큰 상자에 '사랑' '행복'이라는 것들을 가득 담고 나쁜 것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온몸으로 상자를 끌어안았다. ‘나 이만하면 잘 살고 있다’ ‘난 정말 좋은 엄마다’ ‘이런 게 올바른 부모다’ 오늘도 행복, 내일도 행복, 매일 행복! 두 팔 벌려 가득 품고 있는 상자 속에는 행복 말고는 들어오면 안 되는 것처럼 굴었다. 과시하고 싶은 욕망도 흘려보내지 못하고 꽁꽁 에워싸는 미련함도 모두 결핍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글을 쓰면서 알았다.
그런데 또 너무 네거티브하게만 생각할게 아니다. 순간순간 정말로 넘칠 만큼 행복했고 그렇게 살아낸 나 자신이 기특했고 대견했다. 어느 정도의 인정 욕구는 나를 또 긍정적인 방향으로 행동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무의식과 지금 행복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이 묘하게 연장선 상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글의 화두는 대부분 아이들과의 이야기였고, 나는 그런 글들로 내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 행복을 남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쓰면서 더 선명히 다가왔다. 글의 화두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서 나에게로 넘어왔다. 지금의 나의 모습과 과거의 나의 모습은 딱히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현재 마주하는 것들에서 과거에 마주하며 숨겼던 것들을 하나둘씩 건져내기 시작했다.
나를 보는 아이의 눈을 통해 나의 엄마가 보였고, 사랑한다는 아이의 말을 통해 엄마가 가슴에 담아둔 그 말이 보였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이토록 많이 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무 조건도 없는 이런 사랑을 말이다. 분명 나의 어린 시절에도 말이 아닌 글이 아닌 어떤 형태로라도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한 말이지만, 흔하지 않은 말. 하기 쉬운 말이기도 하지만, 쉽게 하지 못할 말들. 글 쓰면서 결핍을 가능성으로 바꿀 방법을 찾아낸다는 이유를 들어 한번 써봐야겠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시리다.
내 곁에서 오래오래 살아요.
천백 살까지 살아야 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