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 한 올당 200원은 너무 심했어. 엄마가 머리숱이 많으니까 너에게 머리를 내어주었지만, 너 그건 알아야 해! 머리숱은 자산이란 걸 말이야. 너는 오늘 엄마의 노후 자산의 일부분을 겨우 2000원의 너의 노동과 맞바꾼 거야. 사실, 흰머리를 발견할 때마다 좋아서 낄낄거리는 너의 웃음소리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고작 2000원이 대수이겠냐 싶었던 게 엄마의 진심이야. 그리고 솔직히 네가 해준 어깨 안마 서비스를 생각하면 내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지. 얼마나 시원했는데! 제법 컸다고 손에 힘이 좋더라. 네가 탕탕 두드릴 때마다 어깨의 뭉친 근육이 잘게 부서지는 것 같더라니까. 너무 시원했어. 하루의 노곤함도 탕탕 소리와 함께 조각나버리고 우리 웃음소리만 남았잖아.
엄마도 너와 똑 닮은 추억이 있어. 그 이야기를 너에게 들려주고 싶구나. 엄마도 너처럼 똑같이 족집게 핀셋을 들고 할머니의 흰머리를 뽑았었지. 엄마가 딱 너만 할 때였으니까 할머니가 엄마 나이쯤, 아니 조금 더 젊었을 때구나. 할머니는 새치가 조금 일찍 올라왔나 봐. 할머니는 엄마가 흰머리를 뽑는 걸 많이 좋아하셨어. 숱도 없으셨는데도 말이야. 그런데 엄마에게 흰머리를 뽑으라고 머리를 내어주신 마음을 알 것도 같아. 오늘 너를 보니까 말이야.
이걸 말하면 네가 또 협상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때 엄마는 한 올당 500원을 받았어. 너 그거는 알아라! 그때는 할머니가 흰머리가 나기 시작할 때라 뽑을 머리카락이 많이 없었다는 걸. 4개 정도 뽑으면 지금과 같은 2000원이었지만 그 당시 2000원이면 문방구에 친구들 데려가서 골든벨 울릴 수 있을 정도의 가치였어. 할머니가 거금을 주면서까지 흰머리를 뽑으라고 한 이유가 있어.
할머니는 흰머리를 찾으려고 족집게 뒷부분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길을 내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는 그 느낌이 너무나 좋았데. 엄마가 흰머리를 찾으려 할머니의 머리를 만지고 있으면 할머니는 잠시 눈을 감고 졸기도 했어. 잠이 그렇게 왔다고 하시더라. 이걸 왜 좋아할까 생각을 했는데, 엄마도 할머니 나이가 되고, 너의 무릎에 누어 어릴 적 엄마와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은 모습인 너를 보니까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온몸으로 이해가 되더라.
더 재밌는 건 말이야. 처음에는 흰머리가 많이 없어서 500원을 주던 할머니가 어느 순간 흰머리가 많아지기 시작하고 엄마가 많이 뽑으니까 한 올당 100원으로 내리는 거 있지. 그때 엄마는 속이 상했어. 할머니가 나이가 들어서 속이 상한 게 아니고 흰머리를 많이 뽑아도 얼마 못 번다는 생각에 속이 상한 거 있지. 엄마가 참 철이 없었지? 이해해 줘 엄마도 그때는 어렸으니까. 할머니는 다른 의미로 속이 상하셨을 것 같아. 자꾸만 흰머리가 많아지면 말이야, 뽑을 수도 없으니까. 엄마도 나이가 들어 뽑아낼 수 없을 정도로 흰머리가 많아지면 말이야, 지금이 조금은 그리워질 것 같아.
너는 나를 참 많이 닮았어. 엄마는 엄마의 유년 시절을 자꾸만 너에게서 찾아. 행복하지 않은 유년을 보냈다고 미워하고 원망하던 엄마에게 자꾸만 너는 ‘그게 행복이었다’라고 알려주더라고. 엄마는 그래서 참 고마워. 어쩌면 엄마는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들을 그냥 놓아버리고 흘려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예전에 네가 물어봤던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야. 엄마는 너에게 할아버지의 흰머리에 대해서도 웃으면서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 엄마는 할아버지의 흰머리를 뽑은 기억이 없지만 이제 상상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네 덕분에 말이야.
엄마가 이제 흰머리가 너무 많이 나기 시작하는 거 같아. 요즘 신경 쓸 일이 많나 봐. 그래서 말인데 하나만 부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