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미화 Oct 10. 2024

가까운 사람에게 지는 법

  내가 맞서는 사람이 있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들.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 교묘히 편을 가르는 사람들. 나는 되는데 너는 안된다고 하는 이기적인 사람. 무례함에 대한 내 안의 반응 버튼을 딸깍! 하고 누르는 사람들이다. 쓰고 보니 ‘맞서다’는 표현이 웃기다. 꼭 딴지를 걸고 넘어가야 하는 나도 예의가 바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아,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나도 때로는 상황에 대한 맥락도 모르고 말을 던지거나, 별시덥잖은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심지어 눈치 없이 난 척을 하기도 한다. 적고 보니 지극히 내 위주인 나의 무례한 행동들에 조금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 내 삶에서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례’는 어느 정도 웃으면서 무시가 가능한 것도 같다. 내가 맞서고 딴지를 거는 무례는 보통 옅은 관계든 깊은 관계든, 나와 어떻게든 '관계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참 난감하고도 위험하다. 가장 타격을 많이 받는 대상은 남편이다. 표정의 무례함도 말투의 무례함도 행동의 무례함도, 자잘한 어느 것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되려 내가 무례해지는 상황이 연출된다. 결혼하고 서로가 서로의 이면을 보기까지 우리는 자주 서로에게 무례했다.     


“그건 아니지 않아?”

“뭐가 아니야? 난 틀린 말 한 적 없는데.”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기분은 나쁘지.”

“당신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잖아. 그게 왜 내 잘못이야?”

“왜 그렇게 예의 없이 말하는 거야?”

“내가 뭘 또 예의 없이 말했다는 건데?”

“표정이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당신도 똑같거든?”     


 한 번은 이렇게 사소한 대화에서 시작된 다툼이 커져서, 온종일 말도 섞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 적이 있었다. 별것도 아닌 말투, 말 하나에 서로의 기분이 상했는데, 끝까지 누가 잘 못했는지를 따지며 점점 더 감정이 격해졌던 날이었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어도 화는 쉽게 풀리지 않았고, 결국 서로가 입을 닫은 채 그날을 보냈다. 내심 남편이 먼저 다가와 말해주길 바랐지만, 그러기는커녕 그도 나처럼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권태의 시작이 이런 건가’하며 확대 해석을 하며 넘겨짚기 시작했다.   

   

 가까운 사람의 무례에는 무례로 응수했었다. 밖에서는 세상 착하고 예의 바른 사람인척하면서 말이다. 최악이 최악을 낳고 그 끝은 ‘무시’라는 곳에 다다랐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무례함에는 웃으며 '무시한다'는 나의 대처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마지막 최후의 공격이 되어버렸다. 정말 난감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무례한 짓을 해도 용서해 줄 거라는 강한 믿음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걸 우리는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걸까. 그게 사랑이라면 제대로 삐딱선을 탄 것 같다.     

“엄마 아빠, 혹시 싸운 거야?”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말자고 약속했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공기 속에 흐르는 그 미묘하게 왜곡된 흐름을 귀신같이 감지한다. 엄마의 말투, 아빠의 표정, 두 사람의 몸짓이 흘려보낸, 도무지 ‘무시’하려야 할 수가 없는 그 주파수들을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     


“아니, 안 싸웠는데?”

“꼭 싸운 것 같아.”

“서로 의견이 좀 안 맞았지. 표현도 좀 그랬고 말이야.”

“휴, 난 또 싸우는 줄 알았네.”

    

암묵적인 신호가 오가고 서로의 삐딱선을 바로 잡아야 됨을 감지한다. 남편이 “미안해.”라고 말했다. 두루뭉술한 말속에 온갖 의미가 다 담겨 있는 걸 안다.  “그래, 나도 미안해.”라고 했다. 그날의 무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뭉툭한 사과의 말도 지금을 무마시키고 넘어가기 위한 꼼수로 해석하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건 우리가 서로 화해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라 생각했고, 그게 더 건설적이고  현명하다 판단했다.  

 

 비뚤어진 경로를 돌고 돌아, 때로는 이탈해 가며 오랫동안 함께 걸어왔다. 여전히 서로의 삐딱선을 못마땅해하는 때도 있지만 이제는 안다. 서로가 무례하지 않아야 다시 제자리에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매일 보지만 매일 낯선 사람. 낯설지만 혼자 속삭이는 것만으로도 의중이 파악되는 신기한 사람. 무례할 수가 없다 도무지. 나와 참 비슷한 사람과 살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수백만 가지의 무례를 웃음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무례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언제나 오래 남는 감정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 마음속 깊이 박혀버리니까. 가까운 사람에게 지는 것은 어찌 보면 나를 위함이기도 하다. 이겨서 뭐 하리.

이전 03화 싸움의 기술, 그런 거 없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