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친구가 자신의 머리가 길었다고 좋아했다. 나에게도 머리가 많이 길었다며 칭찬해주었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자라는 머리카락이 무슨 대수냐고 물었다. 친구는 그래도 길면 좋지 않냐고 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대학생이 되고 다른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소지품을 두꺼운 파카 주머니에 몰아넣고 친구를 만났더니 친구가 다른 여자애들은 다 가방을 들고 다니는데 너는 왜 가방을 안 들고 다니냐며 웃었다. 나는 의아했다. 들고 다닐 게 휴대폰과 지갑뿐인데 가방을 꼭 들고 다녀야 하나?
근 몇 년 사이 한국 여성들에게 ‘탈코르셋’이란 운동이 퍼지며 나는 과거의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코르셋이 다른 친구들보다 덜 해서 긴 머리를 선호하지 않았고, 화장품을 들고 다니지 않아서 가방이 필요 없었구나.
탈코르셋이란?
사회에서 ‘여성스럽다’고 정의해 온 것들을 거부하는 움직임으로 예컨대 짙은 화장이나 렌즈, 긴 생머리, 과도한 다이어트 등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탈코르셋을 외치는 여성들은 소셜미디어(SNS) 등에 부러진 립스틱이나 자른 머리카락 등을 올리며 이를 인증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탈코르셋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45270&cid=43667&categoryId=43667
나도 코르셋이 있다. 색조화장품이 있고, 치마를 입고, 화사한 옷들이 있다. 대신 평일에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아주 더운 여름에는 치마를 입지만 다른 계절에는 편한 바지를 입고 출근을 한다. 처음 산 8년 된 아이브로우는 올해 버렸고, 치크도 7년을 쓰다가 친구들이 피부가 상하겠다는 말을 해서 버렸다. 파운데이션은 기본 2년을 쓰다가 항상 다 쓰지 못하고 너무 오래된 것 같아 버린다. 화장을 잘 못하기도 하고, 흥미가 없어 연애를 할 때도 곧잘 남자들에게 민낯을 빨리 보여준다. 꽤 많다면 많은 남자들을 만났지만 내 민낯을 봤다고 태도를 바꾼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내 민낯이 잘났다는 얘기가 아니라 남자들은 무슨 화장을 했는지도 잘 모르는 게 태반이라 여자가 화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를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단 이야기다. 혹시나 민낯을 보고 떠난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가 이상한 놈이다.
가끔 TV에서 여자 연예인들이 자기는 남편에게 한 번도 민낯을 보여준 적 없다고 말하곤 한다. 시트콤이나 드라마 장면에서 남녀가 같이 1박 여행을 가면 여자가 아침에 먼저 일어나 살짝 화장을 하고 남자 옆 자리로 돌아가 자는 척하는 장면을 왕왕 본 적이 있다. 미디어에서 이렇게 여자가 화장을 열심히 함으로써 남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인식을 주입시킨 덕분에 실제로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외모를 열심히 꾸민다. 한 때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지 본인의 자기만족인지에 대해 인터넷상에서 논쟁이 붙은 적이 있다. 나의 의견은 어느 정도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외모를 가꾸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신 잘 보이려는 대상이 내가 호감이 있는 남성 정도이지, 길 지나가는 아무 남자에게는 아니다. 길 가는 꼬마에게 잘 보일 이유는 없는 법이다. 여자 친구들끼리 어울릴 때 하는 치장은 자기 만족도 있는 것 같다. 다른 친구에 대한 경쟁심리도 있고, 왜 꾸미냐고 물어본다면 한 가지 이유가 있진 않다. 누구나 꾸밀 자유가 있고 꾸미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럼에도 꾸미는 것 자체에 너무 삶이 치우쳐지면 허왕된 삶이 되기 쉽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절할 필요는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혹시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과한 치장을 한다면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여자의 외모 코르셋이 때문에 외모를 열심히 꾸민다고,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당장 연예계만 봐도 너무나 예쁜 여자 연예인들이 질 나쁜 남자 연예인과 결혼하여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은 운도 크고, 본인의 내면과 지식을 가꾸고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지, 화장대 앞에서 얼마나 공들이냐, 얼마나 예쁜 옷에 돈을 많이 쓰냐가 좌지우지되는 건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