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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돼지 Oct 05. 2019

코르셋과 연애

누구를 위한 코르셋인가

학창 시절, 친구가 자신의 머리가 길었다고 좋아했다. 나에게도 머리가 많이 길었다며 칭찬해주었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자라는 머리카락이 무슨 대수냐고 물었다. 친구는 그래도 길면 좋지 않냐고 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대학생이 되고 다른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소지품을 두꺼운 파카 주머니에 몰아넣고 친구를 만났더니 친구가 다른 여자애들은 다 가방을 들고 다니는데 너는 왜 가방을 안 들고 다니냐며 웃었다. 나는 의아했다. 들고 다닐 게 휴대폰과 지갑뿐인데 가방을 꼭 들고 다녀야 하나?

근 몇 년 사이 한국 여성들에게 ‘탈코르셋’이란 운동이 퍼지며 나는 과거의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코르셋이 다른 친구들보다 덜 해서 긴 머리를 선호하지 않았고, 화장품을 들고 다니지 않아서 가방이 필요 없었구나.

탈코르셋이란?
사회에서 ‘여성스럽다’고 정의해 온 것들을 거부하는 움직임으로 예컨대 짙은 화장이나 렌즈, 긴 생머리, 과도한 다이어트 등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탈코르셋을 외치는 여성들은 소셜미디어(SNS) 등에 부러진 립스틱이나 자른 머리카락 등을 올리며 이를 인증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탈코르셋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45270&cid=43667&categoryId=43667

나도 코르셋이 있다. 색조화장품이 있고, 치마를 입고, 화사한 옷들이 있다. 대신 평일에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아주 더운 여름에는 치마를 입지만 다른 계절에는 편한 바지를 입고 출근을 한다. 처음 산 8년 된 아이브로우는 올해 버렸고, 치크도 7년을 쓰다가 친구들이 피부가 상하겠다는 말을 해서 버렸다. 파운데이션은 기본 2년을 쓰다가 항상 다 쓰지 못하고 너무 오래된 것 같아 버린다. 화장을 잘 못하기도 하고, 흥미가 없어 연애를 할 때도 곧잘 남자들에게 민낯을 빨리 보여준다. 꽤 많다면 많은 남자들을 만났지만 내 민낯을 봤다고 태도를 바꾼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내 민낯이 잘났다는 얘기가 아니라 남자들은 무슨 화장을 했는지도 잘 모르는 게 태반이라 여자가 화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를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단 이야기다. 혹시나 민낯을 보고 떠난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가 이상한 놈이다.


가끔 TV에서 여자 연예인들이 자기는 남편에게 한 번도 민낯을 보여준 적 없다고 말하곤 한다. 시트콤이나 드라마 장면에서 남녀가 같이 1박 여행을 가면 여자가 아침에 먼저 일어나 살짝 화장을 하고 남자 옆 자리로 아가 자는 척하는 장면을 왕왕 본 적이 있다. 미디어에서 이렇게 여자가 화장을 열심히 함으로써 남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인식을 주입시킨 덕분에 실제로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외모를 열심히 꾸민다. 한 때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지 본인의 자기만족인지에 대해 인터넷상에서 논쟁이 붙은 적이 있다. 나의 의견은 어느 정도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외모를 가꾸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신 잘 보이려는 대상이 내가 호감이 있는 남성 정도이지, 길 지나가는 아무 남자에게는 아니다. 길 가는 꼬마에게 잘 보일 이유는 없는 법이다. 여자 친구들끼리 어울릴 때 하는 치장은 자기 만족도 있는 것 같다. 다른 친구에 대한 경쟁심리도 있고, 왜 꾸미냐고 물어본다면 한 가지 이유가 있진 않다. 누구나 꾸밀 자유가 있고 꾸미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럼에도 꾸미는 것 자체에 너무 삶이 치우쳐지면 허왕된 삶이 되기 쉽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절할 필요는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혹시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과한 치장을 한다면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여자의 외모 코르셋이 때문에 외모를 열심히 꾸민다고,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당장 연예계만 봐도 너무나 예쁜 여자 연예인들이 질 나쁜 남자 연예인과 결혼하여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은 운도 크고, 본인의 내면과 지식을 가꾸고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지, 화장대 앞에서 얼마나 공들이냐, 얼마나 예쁜 옷에 돈을 많이 쓰냐가 좌지우지되는 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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