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끝으로 감각하는 기억

4살 때 먹었던 미역국의 맛

by 홍시

점심때 직원 식당에 미역국이 나왔다. 한 입 숟가락으로 가득 떠 넣었는데 이 맛은! 나를 4살의 그때로 돌려놓았다.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그날의 공기, 공간. 맛과 기억은 주관적이라지만 창문으로 둘러싸인 해가 질 무렵의 병실이 생각났다. 출산의 고통을 겪은 엄마에게 배달된 하얀 식판 위의 미역국 한 그릇. 나는 엄마 대신 해산이라도 한 듯 미역국을 싹싹 다 먹어버렸다. 음 너무 맛있다!. 미역국을 다 먹고 배 두들기며 고층 창문으로 바라본 길거리의 풍경이 생각난다.

동생과 나는 4살 차이이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병원 정기 검진을 다녔다. 강서구 화곡동에 있던 큰 산부인과를 가다 보면 발 밑에 상수도라고 쓰여있었다.

"엄마! 아빠이름!!" 4살의 나는 아빠이름이라고 말했다. 생일이 12월이었던 만 2살의 나. 진짜 똑똑하지 않은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동생을 출산하기 전 엄마는 몸이 약해 계속 방에 누워있었다. 그때 아빠랑 둘이 외출하는 일이 잦았는데 아빠를 따라 내과에 갔었다. 미끄러운 대리석에서 스케이트 타겠다며 놀다가 대리석계단에 그만 이마를 부딪혀 길게 꿰매는 일이 생겼다. 아빠는 진료 대기 중에 피 흘리는 나를 보고 냅다 둘러업고 옆의 외과로 달렸다. 상처 마취를 하고 바로 꿰매었는데 마취한 줄도 모르고 바늘로 꿰매도 하나도 안 아프고 간지럽기만 하다고 으스댔던 나도 생각이 난다. 하여튼 그때 그렇게 피도 옷에 잔뜩 묻히고 크게 다친 나를 아빠는 엄마가 놀랠까 봐 문 밖에 세워두었다. 아빠는 먼저 들어가 " 여보 놀래지 말고..." 하며 뜸을 들린 다음 나를 슬쩍 데려와 들이밀었다. 엄마는 그 덕분에 많이 놀래지는 않고 나를 꽉 안아주었던 기억이다.

그 일은 대물림되어 우리 딸은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운동기구에 이마를 찧어 6 바늘 꼬매기도, 기대했던 어린이집 긴 나들이날 서랍장에 머리를 부딪혀 의료용 스테이플러로 꿰매기도 했다.

그때 하얗게 질린 얼굴의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덜컹한다. 엄마도 그랬을까? 엄마는 나에게, 나는 딸에게 모든 일이 대물림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간다. 나를 닮은 아이를 보며 아이의 아이를 생각해 본다.

먼 훗날의 딸도 내가 해줬던 좋아하던 두부부침, 메추리알 장조림을 먹으며 예전을 추억하겠지? 그리고 또 다른 아이에게 기억을 남기겠지? 나는 너에게, 너는 또 다른 너에게. 엄마가 해준 두부조림을 냠냠 맛있게 먹는다. 엄마 자주 만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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