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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천밴드 Dec 05. 2024

진드기

밤 따러 가는 길 그 언덕 풀밭에 

홍천 집 바로 옆에 밤나무가 크게 한 그루 있다. 


사실 밤이 열리기 전까지는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몰랐다. 시간이 지나 가을이 될 무렵 밤나무에 밤송이가 토실토실 열려 있었다. 밤을 수확하겠다는 의자로 밤송이를 억지로 따서 안을 벌려봤는데, 색이 내가 알던 밤색이 아니였다. 그리고 떨어져 있는 밤송이 안에 있는 밤은 벌레들이 먼저 먹어서 먹을 수 없는 밤들이 많았다. 한 일주일이 지나서 밤나무에 이제 제대로 열린 밤송이들이 많았다. 무엇이든 그 시기가 있고 밤나무 열매 밤도 수확해야 할 시기가 있었다. 밤송이가 자연스럽게 떨어지면서 안에 있던 밤들이 바닥에 떨어지도 하고, 밤송이 안에 그대로 있기도 했다. 


내가 심지 않은 밤나무지만 농부의 마음으로 밤들을 수확해 갔다. 정확히는 줍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잠깐동안 밤을 주우면 금방 가져갔던 그릇이 찬다. 밤을 가지고 돌아와 칼집을 내고 에어프라이에 돌려서 먹는다. 어떤 것은 제대로 칼집을 내서 잘 껍질이 벗겨지고 어떤 것은 제대로 칼집이 없어서 망해버려 작은 숟가락으로 안을 파먹는다. 밤은 아주아주 가끔 간식으로 먹을 때가 있긴 하지만, 내 돈 주고 사 먹은 적은 거의 없었다. 

사실 밤에 칼집을 내는 것 자체가 어렵고, 잘 굽는다 해도 껍질을 제대로 까서 먹는 게 쉽지 않아 노력 대비 밤을 그렇게 많이 수확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자꾸 벌레가 밤을 먹으라고 놔둘 수 없는 그런 벌레와 경쟁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밤을 수확해서 그릇을 채워서 돌아오면 아주 마음이 뿌듯하다.


아주 오래전에 내 조상이 밖에 나가 수렵 생활했던 그 수확하는 행위가 아마도 정말 내 안에 유전자 깊이 남아있는 것 아닐까. 산 근처 둘레길을 걸을 때도 밤이나 도토리가 있는 계절에 가게 되면, 아줌마, 아저씨들은 도토리, 밤을 줍는데 진심인 것을 본다. 아예 봉지를 준비해서 가득 채우면서 돌아다니고 있어서 산책보다는 도토리를 줍기 위해 걷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걸 보면 수확하는 것은 인간의 숨겨져 있던 본능 같은 게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 밤나무의 밤을 수확하려고 하면 수풀을 헤치고 가야 하는데, 그 수풀에 진드기가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밤을 수확하고 기쁜 마음으로 밤을 닦는데, 바지에 까만 점들이 생긴 것을 보고 좀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점들이 조금씩 움직였다. 노안이 정말 심해졌구나 하는 찰나에 다시 보니 점이 아니라 진드기였다. OMG. 너무나 징그럽고 너무나 무서웠다. 진드기에 물려 죽은 사람이 있다는 뉴스도 갑자기 생각났다. 너무 놀라 빨리 바지를 벗고 재빨리 샤워를 했다. 다행히 물지? 않는 진드기였던 모양이다. 별일은 없었다. 진드기가 무서워 진드기 퇴치제 같은 것으로 뿌리고 했는데,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풀들을 잘라서 풀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밤을 수확했다. 진드기가 있지만, 그것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인간의 수렵채집 본능은 진드기 따위를 뛰어넘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을 무시하면 절대 안 되지. 


한동안 미친 듯이 밤을 따고 주변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는데,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면 오래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넣어 놨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지나고 상했다. 내가 다 못 먹을 것들은 역시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인데, 아직 난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밤 요리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은데, [보늬밤] 요리를 해봤다. 리틀 포레스트 흉내를 좀 내보는 것이다. 밤 안쪽 껍질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인데, 여러 번 끓였다가 물을 버렸다 다시 끓이는 것을 반복하는 작업이 많았다. 막상 해보니 역시 맛은 있었는데, 하나두 개씩 아무 생각 없이 먹다 보면 다이어트는 저 멀리 가버리고 만다. 밤 수확 계절이 지나가 이제 밤나무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았다. 


내년 밤나무가 열리는 계절이 다시 기다려진다.

밤 수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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