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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Feb 22. 2019

관건은 좋음이 아니라 싫음에 대한 태도일지도

위빠사나와 '하기 싫은 일을 하는 힘'

얼마 전, 열흘 정도 속세를 떠나 지냈다. 유발 하라리의 명상으로 유명해진 고엥카의 명상센터에서 하루 종일 명상을 하면서 지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위빠사나를, 고엥카에 의하면, 거의 원형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온종일 몸에 의식을 두는 것으로 시작한다. 온몸 구석구석에 빠짐없이 의식을 두면서 거기 어떤 느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걸 한 번 해 보면, 어느 곳에선 명확하고 강한 느낌이 있고, 어느 곳에선 느낌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잘 인지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어느 곳에서도 느낌이 없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다보면 점점 알게 된다.


 내 경우,  이걸 하려고 거기 앉으면, 몸이 엄청나게 반응한다. 사년 전에도 유독 심한 반응이 있긴 했는데, 이번엔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엄청 큰 바늘이 등 가운데쯤을 찌르고 들어가 갈비뼈 앞쪽으로 관통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가장 강했다. 고통스럽고 괴롭다.  그러나 함께 앉아 있는 한 시간 동안에는 몸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 그  고통스럽고 싫은 느낌을 없애려고 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것을 그저 지켜보는 것, 실은 고통스럽다 싫은 것이다 없애야 하는  것이다,란 '판단'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 거부하고 싶은 느낌에 특별한 중요성을 두지 않고 다른 부위의  담담한 느낌과 똑같이 "평등한" 관심을 주고 있으면 그것은 자연히 사라진다.


  그 반응은 몸에서 일어나는 신체적인 것이지만, 무의식의 작용이다. 흔히 빙산에 비유하며 의식은 30 무의식이 70이다란 얘길  하는데, 그것을 바로 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기 의지로 몸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사실 극히 일부다. 몸 작용의 대부분은  내 의지와 무관하며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힘 덕이다. 위빠사나는 잠재돼 있던 그 무의식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정신의학자 융이 봐야 할 것을 보지 않고 외면한 것은 언젠가 다시 겪어야다고 했던가. 그것을 의식적으로 불러오는 것이다.  암튼....


 그 고통스러운 느낌이 사라지면, 어느 순간 아주 기분 좋은 쾌락적인 느낌이 올라온다고 한다. 그 느낌  역시 다시 사라지는데, 그러고 나면 그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기다리고 찾고 바라게 된다고 한다. 느낌이 좋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내가 바라고 원한다고 해서 의지를 낸다고 해서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의지는 고통스러운 느낌으로 나타날 씨앗이  된다. 내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 갖게 되는 화, 절망 같은 거친 생각이 무의식에 다시 새겨진다는 것이다.


 이  명상은 여러가지 힘을 키워주는 수단인데, 그 가운데 핵심은 싫은 것을 떨쳐내려 하지 않고 좋은 것을 붙잡으려고 하지 않는 힘이다.  물론 여기서 싫은 것 좋은 것은 자기 주관, 에고의 것이다. 이 힘을 중도라고 하는데, 그저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몸으로 직접  경험하면서 익히고 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여길 다녀오고 나서, "싫은 것"에 주목하게 됐다. 고엥카는  좋은 느낌이 오는 순간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걸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고 내내 고통스럽고 괴로운 느낌 뿐이다. 내게 좋은  순간이란 극도의 고통과 괴로운 느낌이 사라지고 그저 담담하고 평온한 느낌이 드는 때 뿐이었다. 언젠가 그런 쾌락을 느끼는 순간이  오겠지만, 아마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 아닐까. 그나마 그 마저 지속되는 게 아니라 다시 사라지고, 그러면 또 다시 괴로운  느낌이 올라올 것이다. 그걸 아니, 쾌락이 찾아오는 순간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다.


 우리 삶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싫은 것을 거부하고 좋은 것을 쫓고 그런 날이 오길 바라지만, 그것은 언제나 찰나의 순간뿐이다. 인간에게 좋음이란 사실 싫은 것,  고통이 없는 것 그 평온 뿐이다. 그러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기에 우리는 또 다시 그 평온을 거부하고 뭔가를 기대한다. 그것이  좋음이길 바라지만, 싫음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래서 나는 삶을 잘 사는 비결은 좋음을 얼마나 잘 불러오는 기술에 있는 게 아니라  싫음을 얼마나 더 고통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얼마나 거부하지 않느냐 그 기술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대개 싫은 게 고통스러운 건 그걸 그냥 억지로 참고 이겨나가려고 해서다. 싫음을 다루는 방법은 억지로 참고 이겨나가는 방법만 있는 게 아닌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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