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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Dec 11. 2022

한국의 경제위기와 극복4 - 카드위기 이야기

카드회사의 대출, 1999~2002년 동안 9.4조원에서 72.8조원으로

지난 시간에는 90년대 말의 외환위기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온르은 카위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혹시 지난 번 글을 못 본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경제위기와 극복 - '8.3 사채동결' 조치

한국의 경제위기와 극복2 - 외채위기 이야기

한국의 경제위기와 극복3 - 외환위기 이야기


***


1999~2001년에 발생한 연쇄적인 대기업 도산, 그리고 정보통신 붐의 소멸은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금리를 인하하고 재정지출을 늘리는 정도의 대응에만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카드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최악의 판단을 내립니다. 


아래 <표>에 나타난 것처럼, 카드 발급건수는 1999년 3,899만장에서 2002년 1억 481만 장으로 늘어났습니다. 3년 만에 거의 3배가 늘어났는데, 탈이 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입니다. 같은 기간 현금성 대출은 9.4조원에서 72.8조원으로 거의 8배 가까이 늘어났구요. 


출처: “한국의 경제 위기와 극복”. 243쪽.


***


문제는 당시 카드 관련 연체율이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중이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은행의 카드관련 연체율은 1999년 7.8%로 대단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중이었으며, 2001년에도 7.3%를 유지하는 중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신용카드 관련 대출(=현금서비스 및 카드론 등)이 급증했으니, 사고가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둘 중 하나겠죠. 당시 DJ 대통령의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된 상태에서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하고 또 점검을 못했던 것이 컷을 것입니다(한겨레, 2009.8.18,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병고와 싸웠던 ‘인동초’").


네번째 도전만에 대선에 승리, 98년 2월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2년 4월 과로와 위장장애 등으로 국군 서울지구병원에 입원해 국민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2003년엔 관상동맥 확장시술을 받았고 이후 주기적으로 매주 세차례씩 신장 혈액 투석을 받아 왔다.


또 다른 요인은 2002년 선거였을 것입니다. 대통령 임기 말에 카드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게 힘든 일이었겠죠. 1997년 외환위기가 대통령 선거 직전에 터졌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런 여러 불운까지 겹쳐, 카드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림> 은행권 신용카드 연체율 추이(%)

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정보 시스템.


***


2002년부터 급격히 카드사의 경영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해, 2003년 한 해 동안의 당기 순손실이 1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특히 연체된 채권의 비율은 무려 14.1%로,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할 수준으로 악화되었죠. 결국 업계 1위였던 LG카드는 신한은행으로 넘어가고, KB카드는 국민은행에 합병, 외환카드는 결국 외환은행과 함께 론스타에 팔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출처: “한국의 경제 위기와 극복”.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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