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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Jan 08. 2023

"한국의 유가증권 100년사"3 - 1.16 국채파동

차익결제 제도로 인해, 투기 거래를 일쌈던 금융기관이 결제를 하지 못해

아주 오래 전 읽었던 책, "한국의 유가증권 100년사"의 내용을 소개하는 중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1958년 발생한 1.16 국채 파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지난 번 글을 못 본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한국의 유가증권 100년사 - 증권시장의 출현

한국의 유가증권 100년사2 - 건국국채 이야기


***


지난 시간 건국국채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았으니, 이번 시간에는 1958년 1.16 국채 파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액결제'에 대해 이해가 필요합니다. 외환시장에서 NDF라고 알려져 있는 거래가 가장 대표적인 차익결제 상품입니다(조선비즈, "[경제기사야 놀~자] 차액결제선물환(NDF)은 무엇이고 누가 거래하나요?"). 


(거래가 종료된) 만기 때 계약금액 전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계약한 선물환율과 만기시 현물환율의 차액만을 미 달러화로 정산하는 선물환 계약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1월 1일에 A라는 외국계 은행이 B라는 국내 은행에 NDF 거래로 3개월 뒤에 계약금액 100만달러를 NDF환율 1100원에 팔기로 하는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4월 1일의 실제 환율이 1000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B라는 국내 은행은 환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손해를 본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1000원에 살 수 있는 달러를 1100원에 비싸게 산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달러 기준으로 얼마나 손해를 보았냐면 달러당 손실 비율 (1100원-1000원)/1000원=0.1에다 전체 거래금액 100만달러를 곱하여 10만달러를 손해를 본 것입니다. 이때 B은행은 A은행에 10만달러만 지급하고 계약을 종료합니다. 이렇게 계약금액 전체가 아닌 차액만 결제하기 때문에 차액 결제 선물환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계약금액 전부가 필요한 게 아니라, 매매의 결과로 발생하는 손익(차익)만 정산하니 큰 돈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죠.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으니, 바로 투기가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차익을 정산하지 못하는 경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즉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이 비슷한 거래가 바로 청산거래 제도입니다(247~248쪽).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가 개설되면서 청산거래가 도입되어 증권거래제도는 다시 실물거래와 청산거래라는 이원적인 형태로 운영되었다. 먼저 이 때 채택된 거래제도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실물거래는 다시 1부와 2부로 구분된다. 실물거래 1부는 매매계약 체결이 전장(오전장)에 성립된 것은 당일 오후 2시까지, 후장(오후장)에 성립된 것은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수도결제하는 것이며, 1962년「증권거래법」이 제정되면서 당일결제거래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실물거래 2부는 매매계약 체결이 성립된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증권현물과 대금을 교환하여 결제하는 거래이며, 1962년「증권거래법」이 제정되면서 특약일 결제거래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청산거래는 증거금만으로 매매할 수 있고 반대매매(轉買, 還買)에 의한 차금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증권현물과 대금이 맞교환되어야 하는 실물거래와 크게 달랐다. 청산거래는 결제기한에 따라 거래량에서 커다란 차이가 발생하므로 투기적 거래를 억제하려고 했던 정부와 활발한 거래를 원했던 증권업자 간의 이해가 결제기한을 둘러싸고 대립되었다. 증권거래소 개설 당시에 결제기한은 15일 한으로 했으나 증권업자의 요구에 밀려 1956년 4월에 1개월 한정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다 다시 1957년 8월에 결제기한은 2개월 한으로 연장되었다. 


지금으로 보면 선물시장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부 증거금만 내면 차금결제가 가능했으니 말입니다. 물론 거래를 활성화시키기에 증권사와 거래소는 이 제도의 유지를 원했습니다(248쪽).


청산거래는 증권시장에 대해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의 수요·공급뿐 아니라 가수급까지 이용할 수 있는 청산거래의 순기능은 매매가 집중되어 공정한 증권가격을 형성시켜 주며, 또한 증권의 원활한 유통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투자의욕을 고취시켜 증권시장의 발달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역기능은 증권실물을 갖고있지 않으면서도 매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투기거래가 횡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대한증권거래소가 설립되는 과정에서도 청산거래의 이런 문제는 논쟁점이 되었다. 1953년 12월에 입안된 정부의 증권법(안)에 명확히 제시되어있듯이 청산거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부정적이었다. 당시 재무부 차관이었고 후에 제2대 증권거래소 이사장이 되었던 윤인상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재무부의 분위기는 “(청산거래는) 특수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니까 매매하다가 사소한 실수가 일어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한 1년이고 2년이고 실물만 한 다음 점차적으로 청산거래를 시작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증권의 공급물량이 제한된 당시 상황에서 청산거래를 도입하지 않는 증권시장은 증권업자 입장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어서 그들은 청산거래의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결국 증권업자의 입장을 반영하여 청산거래제도는 도입되었지만, 그것은 항상 투기거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 한국사람들은 투기의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ㅠ.ㅠ


***


암튼 이 문제가 실제로 터진 것이 1958년 1월에 발생한 ‘1·16국채파동'입니다(248~250쪽).


1·16국채파동이란 제11회 국채발행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1957년 11월부터 전개되기 시작한 제10회 국채를 대상으로 한 투기적 거래가 과열되어 결국 국채거래가 결제불이행 사태를 초래하자, 1958년 1월 17일에 전날(16일) 매매된 거래분에 대해 매매행위를 무효화시킨 사건이다.

청산거래는 미래 가격에 대한 예상에 따라 증권거래인을 두 그룹으로 분류시킨다. 하나는 앞으로 국채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은 현재 국채를 매수하게 되고, 반대로 앞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은 현재 국채를 매도할 것이다. 청산기래에서는 차액결제방식에 의해 거래가 청산되기 때문에 이들은 시로 매수그룹 또는 매도 그룹을 형성하여 매수그룹은 실제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계속 매수주문을 내고, 반대로 매도그룹은 실제가격을 인하시키기 위해 계속 매도주문을 냈으로써 점점 투기적 거래 (당시에는 '책동진'이라고 표현했음)를 조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이러한 거래의 대부분이 空賣買이기 때문에 가격변동이 클수록 차액결제금액이 그만큼 커지고, 자금력이 부족한 증권회사는 결국 결제를 이행할 수 없는 상태에 직면하는 것이다.

제10회 국채파동은 정부가 제11회 국채발행계획안과 외환특별세법안을 국회에 동시에 상정하면서 제11회 국채발행이 불투명해진 것이 발단이었다. 국채발행안과 외환특별세법안은 모두 정부세입을 증가시키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증권업자들은 이 두 법안이 서로 상충관계(trade-off)에 있다고생각하였다. 외환특별세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매수그룹)은 국채공급이 감소하면서 제10회 국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그에 따라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여 이 국채를 매수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외환특별세법」의 도입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한 사람들(매도그룹)은 제11회 국채가 발행되면서 제10회 국채에 대한 수요가 감소할 것이고, 그에 따라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하여 이 국채를 매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매수그룹과 매도그룹 간의 공방전이 전개되는 과정에서정부와 국회 간의 국채발행안에 대한 줄다리기가 가격변동을 부추겼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957년 9월에 16~17환 하던 제10회 국채가격이 국회에서 국채삭감안을 발표한 12월에는 40환대로 급등했다. 이어 12월 말일에 국채발행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국채가격은 1958년 1월 초부터 계속떨어지기 시작하여 9일에는 24 환까지 폭락하였다. 이에 매수측이 연합작전을 펼쳐 국채가격은 다시 상승세로 전환되어 15일에는 38환까지 상승하였다. 1월 16일은 국채가격이 더욱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증권시장은 수습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증권거래소는 긴급이사회를 개최하여 17일의 오전장을 일시 중지하고 16일분 建玉(postition)에 대해 매매증거금(약정대금의 50%)을 납입하도록 했으나, 실제 16일 분 매매증거금을 납입한 증권사는 5~6개사에 불과했다. 따라서 정부는 16일분 제10회 국채청산 거래 매매분 일체에 대해 취소명령을 내렸다.


이 사건이 증권시장에 미친 충격은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 투자자들은 증권시장에서의 거래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증권업계는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들었죠. 다음 시간에는 주식시장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룰 것을 약속하며, 이만 마칠까 합니다.


즐거운 독서 행복한 인생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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