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로 투 원> 리뷰
페이팔은 전 세계의 온라인 지불 시스템을 운영하는 기업이다. 해외 직구를 할 때 한 번쯤은 들어보는 이름이다. 온라인 결제 시스템으로 우리를 편리하게 만들어준 페이팔은 여러 명이 공동으로 창업한 회사다. 대표적인 창업자로 현재 테슬라를 이끌고 있는 일론 머스크가 있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 중에 '피터 틸'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현재 50대를 넘은 나이에 25억 달러, 한화 약 2조 9천억 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억만장자다. 이 피터 틸이 지은 <제로 투 원>이라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 이 책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다. 경쟁이 아니라 왜 하필 독점인 걸까?
내가 독점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우리나라의 자동차 시장을 현대자동차가 독점하고 있는 모습이나, 통신 3사가 통신 시장을 독과점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소위 말해 자기들끼리만 한탕해 먹는, 이기적이고 나쁜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시각이 바뀌었다. 독점을 꼭 나쁘게만은 볼 수 없다는 관점이 생겼다. 불공정한 방법으로 독점을 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독점 기업은 더 특별한 가치를 제공하고 사회 전체의 진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 독점이윤 덕분에 더 이상 돈을 버는 것과 경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훨씬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내고 세상을 최적화시키는 기업의 독점은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이야기하면 구글과 애플이 이런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구글은 검색엔진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고, 애플은 태블릿 시장을 넘어 많은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위 두 기업은 독점이윤을 본 만큼 우리에게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독점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일부 사업가나 소비자의 시선에 불과할 수 있다. 콘텐츠 공급자나 광고주,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려는 경쟁자는 독점을 건전한 시장 경제를 방해하는 악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쪽의 관점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면 좋다.
이처럼 경쟁이라는 본질이 아닌, 독점에 관해 주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왜 독점에 집중해야 하는지, '창조적 독점 기업'이 왜 앞서가고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기술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 창업자
창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
미래에 대한 큰 꿈을 품고 있는 사람
비즈니스 관련 지식을 쌓고 싶은 사람
피터 틸은 페이팔 공동창업자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로 변신했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기업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패턴을 이 책에서 이야기한다. 독점에 관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창업, 경영, 자기개발과 관련된 이야기도 다룬다. 따라서 창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창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감명 깊었던 메시지가 많았다. 그렇다면 피터 틸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졌을까.
이 7가지 질문을 모두 제대로 공략한다면 운명을 지배하고,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실제로 이 7가지 질문에 세부적인 해설을 해주는 방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1. 기술
점진적 개선이 아닌 획기적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2. 시기
이 사업을 시작하기에 지금이 적기인가?
3. 독점
작은 시장에서 큰 점유율을 가지고 시작하는가?
4. 사람
제대로 된 팀을 갖고 있는가?
5. 유통
제품을 단지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할 방법을 갖고 있는가?
6. 존속성
시장에서의 현재 위치를 향후 10년, 20년간 방어할 수 있는가?
7. 숨겨진 비밀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독특한 기회를 포착했는가?
7가지 질문 중 대여섯 가지만 제대로 답할 수 있어도 그 사업은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업은 이 질문에 대해 훌륭한 답 한 가지도 가지고 있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기업을 세웠을 것이다. 망하는 지름길이다.
왜 경쟁이 아닌 독점일까. 독점 기업은 오랜 기간 동안 독점 이윤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독점 이윤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은 기업의 혁신과 진보를 위한 원동력이 된다. 독점 덕분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도 있고, 연구 프로젝트에도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경쟁은 이윤을 깎아 먹는다.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비용이기 때문이다. 경쟁을 더 많이 할수록 얻는 것은 더 줄어든다. 경쟁에 눈이 멀어 '시장이 계속해서 남아 있을 만한 곳인가' 하는 더 중요한 질문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경쟁을 신성시한다. 경쟁에 대해 집착하는 교육 시스템 아래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경쟁을 부추기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경쟁이라는 개념을 받들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경쟁보다 중요한 것은 독점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모든 독점 기업은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은 다음과 같은 특징 중 몇 가지를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점 기업이 가지고 있는 4가지 특징에 대해 알아보자.
독자 기술이 있으면 해당 제품을 복제하는 게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구글의 검색 엔진, 출시 당시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예시로 들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수록 해당 제품을 더 유용하게 만들어준다. 네트워크 효과를 활용하는 대표적인 기업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서비스와 에어비앤비, 우버, 카카오 T, 배달의 민족과 같은 O2O 서비스들이 있다.
네트워크 효과가 필요한 사업들은 작은 시장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왜 작은 시장일까? 국내 재능마켓 서비스인 '탈잉'을 예시로 들어보자.
탈잉은 '재능 마켓' 서비스다. 판매자는 기술이나 취미를 가르쳐주고, 이러한 재능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돈을 주고 재능이라는 재화를 구매한다. 판매자와 구매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재능에 관한 수요와 공급을 만들어낸 탈잉은 처음엔 고려대학교 페이스북 그룹으로 작게 시작했다. 페이스북 그룹은 확실히 작은 시장이었다. 또한 모든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게 디자인된 것도 아니었다.
고려대라는 작은 시장이었지만, 반응은 꽤 괜찮았다. 이를 사업 기회로 본 지금의 탈잉 CEO는 이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성장시켰다. 작은 시장을 독점하고 크기를 키워나간 것이다. 탈잉의 경우를 보면, 초기 시장이 너무 작다고 해서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처음 사업을 디자인할 때부터 대규모로 성장할 잠재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반면 서비스 회사는 독점 기업이 되기는 어렵다. 서비스 기업보단 소프트웨어 기업이 규모의 경제로 얻는 효과가 클 것이다. 서비스 회사의 고정비 때문이다. 서비스 기업과 다르게 소프트웨어 기업은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하나 늘었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을 새로 만드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독점기업들은 튼튼한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애플이 바로 이런 경우다. 애플은 브랜드 전략 외에도 뛰어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반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브랜드 전략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압도적인 소프트웨어 기반(윈도우와 오피스) 덕분에 많은 덕을 본 경우다.
회사를 세웠든, 커리어가 무엇이든 간에 세일즈 능력이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훌륭한 제품을 만들었어도 고객이 알아보지 못하거나 필요를 못 느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가치는 저절로 전달되지 않는다.
최고의 제품이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p.172)
그래서 세일즈가 중요하다. 저자는 효과적인 유통 채널 한 가지를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누군가는 무언가를 팔아야 한다. 가장 흔한 실패의 원인은 제품이 나빠서가 아니라 세일즈를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또한 세일즈는 숨겨져 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본다고 말한다. 고객이 스스로가 설득에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광고를 광고로 느끼면 자연스레 거부감을 느끼는 것과 같다.
이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독점의 중요성을 배운 것이다. 나는 사업에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 싸워서 이겨야 한다. 그런데 애초에 경쟁을 벗어나 독점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가치를 전달해줄 수 있을 것이다.
Zero to one을 직역하면 0에서 1이다. 0에서 1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기술의 진보를 의미한다. 우리가 그저 여태 있던 서비스와 제품을 벤치마킹하는 식으로 새로운 것을 만든다면, 이것은 1이 n이 되는 것과 같다. 저자는 1에서 n이 되는 것은 큰 이윤을 벌어들이지 못하고 사회적으로도 진보를 이끌어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글쎄, 나는 여전히 1에서 n을 만들어 내는 것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1이라는 숫자가 2가 되려면 누군가는 1을 더하거나 2를 곱해야 한다. 0에서 1보다 압도적인 이윤은 벌어들이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이윤을 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성공이란 꼭 0에서 1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꿀 만한 거대한 가치를 제공하는 사람은 분명히 억만장자가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1에서 2를 만들고, 10을 만드는 사람들도 충분히 가치를 전달할 수 있고 그만큼 돈을 벌 것이다. 나는 이것도 성공이라고 본다.
참고
<제로 투 원> - 피터 틸 & 블레이크 매스터스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