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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어른 May 30. 2024

아이랑 500일 세계여행 대체 얼마를 쓴거야?

떠나기 전의 예산과 여행지에서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처음 세계여행 400일 여정을 시작할 때 우리의 예산은 1억 +@ 였다.

매일 가계부를 기록하진 않았지만, 신용카드와 여행 예산을 넣어둔 체크카드 계좌를 모두 계산해볼까?

여행 350일 차에 중간 정산한 지출 누적액이 1억 4천만 원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월평균 1,200만 원, 하루 40만 원. 우리 가족이 세 사람이니 한 사람 당 하루 여행경비 133,000원.

여정 내내 가성비 숙소를 찾고, 미슐랭 레스토랑을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낭비한 기억이 없는데..? 아이가 갖고 싶다는 장난감이며 타오르는 쇼핑 욕구를 억누르며 지냈는데? 하루 평균 25만 원 지출 계획으로, 방문 국가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썼다고 믿었지만, 긴 여행 중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몰랐다. 이렇게나 예산 계획이 크게 빗나간 이유를 찾아야 한다.








첫째, 목표예산 수립 시 5살 아들의 몫을 너무 낮게 책정했다.

우리에겐 밥 한 끼도 거르지 않는 정우가 있다. 녀석이 성인 1명 이상 먹어치운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예산 중 가장 큰 항목 중 하나가 식비인데, 어쩌다 일찍 잠든 며칠을 제외하면 매일 삼시 세끼와 간식을 챙겨 먹었다. 생소한 환경과 처음 보는 음식에도 굴하지 않고 잘 먹는 모습이 기특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는 말에 한숨이 나온 적도 많았다.


“엄마, 나 배고파.”

“뭐라고??? 정우야, 2시간 전에 밥 많이 먹었잖아.”

“아까는 적게 먹었어. 지금 또 너무너무 배고파.”

“너, 파스타 한 그릇 다 먹고 피자 3조각 먹고 엄마 음식까지 뺏어 먹었잖아.”

“아니, 엄마. 그래도 내가 지금 배가 고픈데 어떻게 해?”



방금 밥을 먹었음에도 샌드위치, 아이스크림이 또 먹고싶은 아이, 처음 접하는 음식도 아랑곳않는 모습.
쌀국수 한 그릇, 피자 한 판을 혼자 다 먹는 5살 어린이. 밥먹고 후식으로 옥수수도 사주세요!


거기다 저가항공이나 국적기 항공을 이용할 때 어린이 좌석은 성인 가격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일부 항공사는 약간 저렴했지만, 할인 폭이 매우 낮다. 어린이의 박물관 무료입장, 대중교통 무료이용 등의 베네핏이 있었지만, 1년 치를 계산해 봐도 100만 원이 채 안된다.

여행 예산 수립 시 성인 3명으로 계산했어야 했다. 애초에 400일 예산 1억은 말이 안 되는 목표였다.




둘째, 3개월 간의 미국 대륙 자동차 횡단여행.

여행을 시작한 2022년 6월은 Covid가 소강국면에 접어들고, 전 세계적 경기부양책으로 풀어둔 현금유동성으로 인플레이션 최정점이었다. 90일 간 미국 여행 당시 환율은 1,450원까지 치솟았다. 가장 기대했던 미국횡단이기에 높은 물가를 어느 정도 각오했지만, 온몸으로 체감하는 미국의 물가는 대단했다. 비싸기로 유명한 하와이부터 보스턴까지 89일 간 이스타 비자기간을 꽉 채워 미국에 머물렀으니 계좌가 초토화될 수밖에...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까지 2달간 13,000km를 달린 자동차 횡단으로 자동차 렌트비와 주유비, 잦은 숙소 이동으로 숙박비까지 높아졌다. 하와이에서 만난 young님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소형 SUV를 빌렸지만, 보험료 포함 하루 10만 원이 넘었다. (렌트, 보험료, 카시트 : 약 7,000,000원)


허름한 음식점에서 밥을 먹어도 한 끼 최소 5만 원 이상 지출해야 했다. 어른들이야 아무거나 먹는다지만, 한창 자라는 어린이의 영양을 신경 써야 하기에 매일 패스트푸드를 먹을 수도 없다. 한 사람 당 한 끼에 적어도 15달러를 지불했다. 무려 tip 미포함 금액이다. 지금 생각해도 미국의 팁 문화는 도대체 누가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화를 불렀다.

점심은 최소 15%, 저녁은 최소 20%를 팁으로 지불해야 한다. (고급식당에서는 22%부터 시작한다.)

강제성을 띄는 건 아니라지만, 팁을 안 내면 웨이터의 인상이 구겨지니 이게 말이 되나 싶다. 참고로 팁을 이중으로 낼 수 있으니 잘 살펴야 한다. 일부 식당에서는 영수증에 팁을 미리 넣어서 청구한다. 이걸 모르고 추가로 20% 넘는 팁을 지불하는 사고가 생길 수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영수증 내역 확인은 필수다. 때로는 셀프서비스 식당에서도 계산 시 tip을 선택하라고 나오는데.. 뻔뻔하게 No tip을 선택해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로 지불했던 내역을 기재한다.

LA 롱비치 한식당에서 주문한 순두부찌개 1인분 22달러 (당시 환율로 한화 30,800원),
아이가 매일 사달라던 아이스크림 2 스쿱에 와플콘 추가하면 11달러 (당시 환율로 15,400원)
뉴욕 한식당에서 오징어볶음, 된장찌개, LA갈비 1 접시, 콜라, 소주 주문하니 팁 포함 21만 원을 냈다.



21만원 한 상 차림 @ 뉴욕 34번가 한식당 (2만원짜리 소주)
한국에서 살 때보다 더 자주 쌌던 도시락과 간식.. 예산을 아끼려면 몸을 바삐 움직여야 한다.  


돈을 아끼는 게 여행의 목적이 아니기에,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자연사 박물관, 과학관, 미술관, 놀이공원 등을 찾게 되는데, 그때마다 어마어마한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1인당 10달러 미만으로 입장할 수 있는 곳이 있던가? (아! 워싱턴 D.C의 박물관들은 무료라서 너무 좋았다.)

올랜도의 디즈니월드에 방문했을 때 세 명의 입장료만 60만 원이 넘었다. 그토록 기대했던 디즈니월드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단 하루 방문했고,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김밥 도시락을 싸갔다.


그렇게 미국을 횡단하며 쓴 돈이 5,800만 원이다.
월평균 1,933만 원
89일을 나누니 하루 651,600원
하루 1인당 217,200원을 쓴 셈이다.

한 명으로 계산하니 비난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인플레이션과 1,400원대 환율은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세 번째로 숙박비다.

평균 숙박비 15만 원 목표로 여정을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호스텔, 게스트하우스 등 싼 숙소에서 묵으며 배낭여행 경험이 있지만, 5살 아들과 함께하는 초장기 여정에서 마냥 싼 곳에 머물 수는 없었다.

더구나 러-우전쟁 이후 발발한 에너지 가격의 고공행진으로, 15만 원짜리 숙소는 구하기조차 쉽지 않았고, 결국 평균 18만 원의 숙박비를 지불했다. 하루 3만 원이 늘었지만, 목표예산보다 천만 원이 추가 지출됐다.

초장기 여정에서 아무리 부지런히 움직여도 하루 12시간 이상 활동은 무리다. 나머지 시간을 숙소에 머무르게 되는데, 편안하고 좋은 숙소는 머무는 도시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힘이 있고, 여정 전반을 행복하게 한다. 이를 몸소 깨닫다 보니, 더 지불하더라도 좋은 조건과 위치의 숙소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연스레 숙박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나칠 수가 없다. 안 사주면 거리에 누워서 엉엉엉...




마지막으로 외식비다. 

우리 부부는 외식기업에서 오래 일했고, 한국 복귀 후 현업으로 복귀할 수 있기에, 시장조사 차원의 예산을 따로 넣었는데, 주문 메뉴 수가 한 두 개 늘어나, 어느 날엔 하루 4끼를 먹기도 하고, 우연히 발견하는 음식을 맛보기도 하면서 예산이 초과됐다. 여정 중 더운 날씨를 많이 겪었는데, 걷다가 마주치는 아이스크림 가게는 5살 어린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처럼 ‘티끌이 모여 거덜’ 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솔솔하게 계좌를 녹였다. 이렇게 지출한 간식비용만 1년 간 700만 원(하루 2만 원)을 넘어간다.









350일 차, 정신을 차리고 긴축재정 모드에 돌입했다.

이집트 샴엘셰이크에서 머무는 동안, 여정을 100일 더 연장하기로 했다. 여정을 늘린 큰 이유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지만, 정우의 영어 말하기가 틔이는 시점이었다. 남편과 한국 복귀를 앞두고 두 달간 많은 고민하며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 돌아가 영어유치원이나 사교육에 드는 비용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최대한 여정을 지속하기로 했다. 그렇게 100일 여정을 늘렸지만, 목표예산이 보기 좋게 초과되었기에, 긴축재정에 몰입해야만 했다.


당시 샴엘셰이크의 숙박비는 하루 5만 원 (침실 2개, 화장실 2개, 주방과 거실이 딸린 타운하우스)였고, 식비를 아끼기 위해 저렴한 이집트 물가를 최대한 활용했다. 로컬 시장에서 식재료를 사다 직접 요리했다. 현지인 파레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운전사이자 정우의 유모 역할을 자청했던 파레스에게도 한 달에 3만 이집션파운드(약 1,200,000원)를 지불했지만 그 덕분에 아이의 영어와 수영, 다이빙, 아랍어, 운동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늘었다. 그렇게 4개월 간 이집트에 머물며 지출한 돈은 약 1,300만 원으로 예산을 크게 아낄 수 있었다. 매일 맛있는 음식과 신선한 과일을 실컷 먹고, 환상적인 홍해바다에서 스노클링과 다이빙을 즐겼고, 정우는 성장했다.  



환상적인 샴엘셰이크 바다
매일 스노쿨링, 다이빙, 국제학교 다니는 누나들과 영어로 대화하며 놀기, 물안경 자국이 생긴 안경 원숭이 어린이
소고기, 닭고기, 과일, 야채 모두 신선하고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어른주먹만한 석류 한 알 400원, 아이 얼굴만한 애플망고 1000원, 납작복숭아까지! 새까맣게 타버린 어린이.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조지아, 터키, 독일, 헝가리, 체코, 태국을 여행했고, 마지막 나라 일본 여행 당시 역대 최저 환율 덕을 톡톡히 봤다. 이스탄불 신혼부부의 초대를 받기도 했고, 조지아 카즈베기에서 만난 독일인 가족 마티아스, 웨이펀의 배려로 슈투트가르트 가정집에서 4박 5일간 머물며 숙박비를 아꼈다. 독일 전통 가정식과 바비큐를 즐겼고, 하루는 장을 봐다가 미역국과 계란말이, 돼지 양념갈비를 직접 만들어 한식을 대접했다. 그런 시간이 500일 여정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었고, 예산도 아낄 수 있었다.  








그렇게 500일 간 우리의 총지출은 1억 6000만 원이다.


한 달간 열심히 일한 결과물 월급을 받고 나름 알뜰하게 살았다는 뿌듯함으로 카드내역서를 보는 순간 ‘뭐가 이렇게 많이 나왔지? 잘못된 거 아냐??' 내 눈을 의심한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고 나면 낙담 가득한 수긍을 한다. ‘그래. 맞아. 이거 그때 샀지. 그때 여기 갔었구나.’ 이번 여정도 여지없이 같았다.


500일에 1억 6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여행에 쓴다는 것...

아무리 세 가족의 여행이지만 너무 많은 돈을 쓴 게 아닌가 비판받을 수도 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더 아꼈을 수도 있다. 북미와 호주를 제외하거나 한 두 도시만 도장 찍듯 방문하고, 동남아나 아프리카, 남미에 오래 머물렀다면 예산을 크게 아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투자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함이 여행의 큰 이유였기에, 미국을 포함한 '미래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선진 도시'에 가는 게 예산을 아끼는 것보다 중요했다.


몇 년 전 발행된 여행책자엔 세 가족이 5천만 원으로 1년 이상 여행한 사례도 있다. 대단한 가족이지만, 여행의 목적이 다르기에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보다, 서로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2020년 코비드 이후로 세계 모든 것이 바뀌었고, 여정 중 선진국 대도시를 주로 여행한다면 1년 예산은 1억 이상이 현실적이다. 인플레이션과 환율을 감안해도 최소 1억 1~2천만 원선이라 생각한다.


세계여행을 떠나지 않았다고 해서 냉동인간처럼 통 안에 들어가 돈 한 푼 안 쓸 순 없다. 즉, 한국에서도 기본 생활비부터 지출되는 돈이 적지 않다. 우리 가족이 서울에서 거주 당시 통신비, 보험료, 교육비, 식비, 관리비, 대출이자 등 한 달 평균 400만 원가량 지출했던 것을 감안하면, 세계여행하며 추가로 9,600만 원을 지출했다고 볼 수 있다. 해외 유심카드를 구매했지만 한국의 통신비를 내지 않았고, 매달 20만 원가량의 관리비, 1년 간 납입중지해 둔 각종 보험료와 건강보험료, 유치원 비용 등 한국을 떠나며 지불하지 않은 비용도 많다. 각종 경조사 비용과 가족모임의 제반 비용 역시 해외에서는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 물가 또한 엄청나게 올랐으니, 밥값과 식재료 구매비 등 생활비가 크게 늘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세계여행 경비가 천문학적인 금액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세계여행을 계획중이라면, 세계여행을 떠나지 않고 한국에서 지출하던 비용을 염두에 두기를 제안한다.


 






500일 간 1억 6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지불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기에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긴 여행이 아이의 성장과 우리 부부의 사고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종종 아이와 두 번째 세계여행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보다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부모로서 인생의 길잡이가 되고 싶다.

 

그나저나, 대체 500일 간 세 사람이 얻은 것과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변화는 무엇일까? 80여 개 선진도시를 돌며 마주한 투자 인사이트로 한국에 돌아와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 대체 왜 제주도에 정착했는지, 세 가족은 어떻게 삶을 영속하고 있는지.. 많은 것을 순서대로 공개하겠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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