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행이 특별해진 이유, 500일 세계여행 전체 루트.
안녕하세요. 저희는 2022년 6월 27일부터 2023년 11월 7일까지 500일간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가족입니다. 지금은 제주도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머물고 있어요.
500일 세계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다들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긴 여행을 어린 아이랑 할 수 있느냐 물으시더라고요. 저희가 비범한(?) 가족일 수도 있지만, 그저 평범했답니다. 여행 전 남편 호선생은 국내 모 외식기업의 글로벌 총괄을 맡았어요. 해외 사업에 오래 몸담다 보니 아무래도 해외출장 경험이 많긴 했지만 출장=그저 일, 일, 일이었기에 여유로움을 즐기는 여행과 거리가 먼 삶이었죠. 거기다 평범한 회사원이자 외식 컨설턴트였던 엄마 홍어른과 먹성 대단한 만 5살 아들 정우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족이었어요. 다만 여행을 워낙 좋아했기에, 주말이면 몸이 간질간질해서 떠나고 싶어 했달까... 어쩌면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국내외 여행이 세계여행의 초석이자 트레이닝 기회가 아니었나 싶네요.
500일 세계여행 이야기는 남편의 일기와 저의 부족한 글을 연재중이지만, 어떻게 세계여행을 결심하게 됐는지.. 여행 준비과정과 계획 세우기 등의 여행 전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글을 씁니다.
못생겼지만 귀여운 남편은 제게 데이트할 때부터,
"나중에 꼭 세계여행을 갈 거야. 나랑 결혼해서 꼭 세계여행을 함께 떠나자."라는 말을 자주 했답니다. 친정엄마께서는 저런 사기꾼이랑 결혼하면 큰일 난다며 결혼을 만류하셨지만, 마침내 저는 그와 결혼했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물론 다른 가족들처럼 때로는 다투고, 대체로 즐거운 날들이었죠. 평범한 날들을 보내면서도 '우리 나중에 세계여행 꼭 가자!'라는 말을 마음 한구석 주문처럼 새기며 살았어요.
어느덧 직장 생활 15년 차, 쉼이 필요했기에 모든 것을 내려두고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며 향후 인생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인생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설계가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처음엔 제주 1년 살기를 해보면서 조금은 여유롭게 지내면 어떨까 했어요. 아이가 다닐 자연친화적인 유치원을 정하고, 살 집을 알아보던 중이었죠.
어느 날 밤, 카타르 월드컵 조 추첨 방송을 지켜보던 남편이, 무릎을 치며 무언가를 깨달은 듯 외쳤습니다.
우리 세계로 가자!!
이제껏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세계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이후엔 긴 여행을 떠나기 힘들 테니, 지금이 떠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죠.
2017년생 어린 아들과 함께 하는 여정이며, 미식 탐구와 투자에 대한 지혜를 얻는 것에 비중을 두어 계획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특히 투자 중이던 미국 주식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가급적 선진국 대도시를 여행하며, 길거리 관찰도 자주 했네요. 그렇게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을 몸소 실감했답니다.
여행을 떠난 2022년 6월은 코로나가 종식돼가는 시점으로, 전 세계 인플레이션 최정점인 시기였어요. 환율도 물가도 높았지만, 여러 나라의 치안도 불안정한 상황이었어요. 출발 당시 아이의 몸무게는 19kg, 담당 의사께서 황열병과 말라리아 접종은 54개월 아이의 간과 신장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아쉽게도 중남미와 남 아프리카를 생략했습니다.
그럼에도 여행의 방향은 안전지향적이되, 5대양 6 대륙을 모두 경험하기로 했습니다.미국에서는 두 달간 13,000km 넘게 운전하며 아메리카 대륙 횡단하며, 아찔한 모험도 했답니다.
디스크가 있는 엄마와 어린이를 배려해 긴 비행시간을 피해 기착지를 짧게 두고 이동하며, 대략적인 루트만 정한 뒤 현지에서 티켓을 예매 후 숙박지를 구하는 말 그대로의 ‘자유여행’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가장 큰 모험은 남편과 아들과 하루 종일 붙어지내는 거였어요. 24시간 함께 있으려니, 피 터지게 싸웠던 날도 많았네요. 그리고 아이가 크게 아팠던 가슴 아픈 날들도 있었답니다. 아이 보초 서며 눈물 참고 입술을 깨물던 그때의 감정 역시 생생하네요.
여행 전에는 일단 친숙한 아시아에서 한 달 정도 워밍업 후, 오세아니아를 거쳐 북미로 넘어갔다가 유럽으로 가자는 대략적인 계획을 세웠어요. 실제로 여행하면서, 비행시간을 위해 호주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기 전 기착지 하와이를 거쳤고, 유럽의 쉥겐조약을 감안해서 유럽 대륙 체류 89일째 북아프리카 대륙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는 루트가 되었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 4개월 넘게 머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 저희가 여행 전 참고했던 책 두 권은 '<에이든 세계여행 지도>와 <세계 일주 바이블>'에요. 특히 에이든 세계지도는 문화, 대륙 별 연도 순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 세계여행의 전체적인 루트를 세울 때 유용했어요. 여행에는 에이든 부록인 세계지도만 챙겨갔고, 아이와 함께 세계지도를 펴고 다음 여행지는 어느 나라, 도시로 가고 싶은 지 이야기 나눴어요. 아이도 여행의 참여자로서 본인이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했던 대화가 정우 자아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
* 광고 아닌 제가 선택한 책이며, 이미 세계여행자들에게 유명한 자료에요. 저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여행 책을 쓰고 싶네요.
저희 여정을 간략히 설명하면
베트남 나트랑 4박 5일 → 호치민 4박 5일 → 싱가포르 8박 9일 → 인도네시아 발리 9박 10일
케언즈 3박 4일 → 브리즈번 3박 4일 → 골드코스트 4박 5일 → 시드니 20일
서부 샌프란시스코부터 남부 마이애미를 거쳐 동부 보스턴까지 약 20여 개 도시
토론토 3박 4일 → 나이아가라 2박 3일 → 토론토 3박 4일 →로키산맥 & Banff 3박 4일 → 캠룹스, 밴쿠버)
(런던 > 바르셀로나 > 마드리드 > 톨레도 > 세고비아 > 말라가 > 세비야 > 리스본 > 파리 > 코펜하겐 > 파리 > 아테네 > 비엔나 > 로마 > 피렌체 > 나폴리 > 살레르노 > 볼로냐 > 모데나)
(카사블랑카 10일> 라바트 > 카이로 2박 3일 > 다합 7박 8일 > 아인수크나 2박 3일 > 샤름엘셰이크, 기자 (100일) >
(조지아 트빌리시 > 카즈베기 > 구다우리 > 트빌리시 > 이스탄불 > 프랑크푸르트 > 슈투트가르트 > 베를린 > 부다페스트 > 프라하)
방콕 > 도쿄 > 시즈오카 > 슈젠지 > 오사카 > 교토
하와이와 미국 본토에서만 차량을 직접 렌트해서 로드트립을 했고, 대중교통이 발달한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어요. 특히 유럽은 워낙 기차 문화가 발달해서, 국가 간 이동도 기차로 충분히 가능해요. 기차 예매는 'Omio'라는 앱이 한국어 지원, 카드 결제가 쉬워요. 대중교통이 불편한 조지아와 모로코에서는 주로 택시를 이용하거나 걸어 다녔네요.
세계여행을 하면서 자주 사용했던 택시 앱은 '우버, 볼트, 그랩' 3가지 정도겠네요. 국가 별 도시에 따라 주 사용하는 택시 앱이 다르지만, 3개 앱을 깔면 충분히 편하게 이동할 수 있어요. 이집트에서만 유일하게 저희 여정을 도와줬던 운전기사 겸 정우의 유모 역할을 해준 젊은 친구 fares와 함께 지냈어요.
여행이라는 표현 대신 ‘살기’라는 표현이 어떨까요? 에어비앤비 현지 숙박에 머물며 로컬 마트에서 장을 보고, 로컬 식당과 현지 식재료를 최대한 경험합니다. 현지에서 사귄 많은 친구들에게 값진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고요. 실제로 현지에서 만난 인연들 덕분에 카이로, 이스탄불, 스튜트가르트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로컬 가정집 숙박을 경험했어요. 숙박비도 아낄 수 있었고,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과 문화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어 정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여행의 목적은 투자에 관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함도 있지만, 저희 부부의 직업과 관련된 전 세계의 미식을 맛보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여행의 묘미였어요. 그리고 아이를 위한 박물관, 과학관은 물론, 엄마가 사랑하는 미술관 투어도 여행의 즐거움이었답니다. 가족의 세계여행 전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구성원 모두가 무엇을 원하는지 미리 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잊지 마세요! 여행은 가족 모두가 행복해야 한답니다. 아이를 위해서 부모만 희생해서도 안되고, 엄마 아빠가 원하는 코스만 다니는 것도 아이들에겐 생지옥일 거예요.
저희 여행이 보다 특별해진 건, 현지인들과의 새로운 인연이 아닐까요? 길 위에서 만난 이방인 우리에게 따뜻한 배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고마운 분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정말 많아요.
시드니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이민 25년 차 stella 이모, 하와이 첫 숙소 Yong 님과 Gigistone 선교사님, 샌프란시스코 인터컨티넨탈 호텔리어 스페인 청년 Jamie, 뉴욕 버스비를 대신 내준 예쁜 아가씨 bella, 10년 만에 다시 만난 jacob&연주 언니 부부, 사촌 오빠에게 선뜻 방을 한 달이나 내어준 착한 Gina 아가씨, 퇴사 후 7년 만에 만난 런던의 광규 선배님, 방콕에서 뵀던 영진, 준영 선배님 모두 저희의 세계 여정을 응원해 주셨던 고마운 분들... 발리 우붓 라이스 필드에서 만났던 이탈리아 아저씨를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땐 지구가 좁구나 생각했답니다. 맛있는 저녁 먹고 우연히 방문한 서점에서 만난 스페인 대통령(총리) 페드로 산체스.. (바르셀로나에서 우연히 대통령을 만날 확률?)
정우를 너무 예뻐해 주고 멋진 선물까지 준비해 준 따뜻한 카사블랑카 호스트 Abudel 부부, 카이로 공항 픽업 기사로 인연이 시작되어 이집트에서 머무는 약 4개월간 가족같이 지냈던 Fares, 덕분에 이집트 전통 결혼식은 물론 Fares 본가에서 3주나 머무는 민폐를 끼쳤지만, 흔쾌히 우리를 초대하고 매일 맛있는 밥을 해주셨던 mama와 baba.. 우리의 이집트 부모님.. ^^
샴엘셰이크에서 정우 누나를 자청하며 수영과 영어를 가르쳐 주고 늘 귀여워해 줬던 Farah, Farida, Laura 세 자매.. 늘 정우를 예뻐해 주던 Shark's bay의 삼촌들, 라스 모하메드 보트 투어에서 만난 이스탄불 커플 Harbish와 Mustapa는 이스탄불 숙소에서 쫓겨난 우리를 도와주고, 맛집에 데려가고 흔쾌히 신혼집 한편을 내주던 미소가 아름다운 신혼부부..
조지아 카즈베기 성당 트래킹 중에 만난 중국인 웨이펀과 독일인 마티아스 가족이 독일 슈투트가르트로 초대해주어 함께 칸슈타트 비어 페스티벌도, 독일 가정식도 즐길 수 있었어요. 3개 국어 하는 마코, 리나 누나 덕분에 정우 영어 말하기 실력도 나날이 성장했고요. 그저 길 위에서 스친 인연인 우리 세 사람에게 방을 내어주고, 따뜻한 식사를 주고 지금까지도 인스타그램과 What's app으로 여전히 안부를 묻고 있는 따뜻한 인연들..
500일 세계여행이 없었다면 전혀 만날 거라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답니다.
막연하기만 한 세계여행을 계획하기 전, 우선 내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이지? 내가 이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정하세요. 그리고 어떤 나라를 꼭 가보고 싶은지 추려보세요. 조금씩 좁혀 나가다 보면 어느새 당신만의 세계여행 루트가 완성될 거예요. 그리고 여행할 나라의 언어 공부를 하세요. 물론 영어를 못해도 여행할 수 있지만, 그 나라 언어를 한다는 건 아주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남편의 6개국어가 세계여행에서 빛을 발했답니다.)
정우도 저도 세계여행하면서 영어가 많이 늘었어요. 아이와 세계여행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여행 동안의 교육에 대해 고민하실 텐데.. 걱정했던 것보다 아이들의 습득력은 정말 놀라워요. 한국에서 사고력 수학 문제집 4권과 아이가 좋아하는 비행기 백과사전 한 권을 가져간 게 전부에요. 대신 방문하는 도시에서 가급적 하루는 반드시 서점이나 도서관에 방문하려 했어요. 다양한 경험하며 성장하지만, 계속 책과 친해질 수 있는 환경에서 영어원서를 자주 읽어줬던 게 도움 되었어요. 걱정했던 한글은 귀국한 지 한두 달 만에 완벽하게 떼더라고요.
한국에서 여행 계획 전체를 다 준비해서 떠날 수도 있지만, 저희처럼 완전 자유여행도 각자의 장단점이 있어요. 완전 자유여행의 경우에는 여행지에서 다음 여행지와 숙박을 알아봐야 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었지만.. 다음 목적지가 정해져있지 않기에 원하는 어디로든 떠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로컬들을 만나서 로컬 가정집에서 머무는 경험도 할 수 있었거든요. 여러 세계여행책과 후기를 가볍게 읽어보시며 나만의 여행 루트를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코비드 이후 세계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아주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대다수 젊은이들이에요. 어린아이와 함께 장기 세계여행을 떠나는 가족은 여전히 흔치 않습니다. 페루나 볼리비아, 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 등 가기 힘든 여행지를 떠나는 여행만이 세계여행의 정석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각자의 사정과 예산에 맞게 멋진 여행을 준비해 보세요. 당신도 할 수 있답니다.
저희처럼 보통의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부부도 안전하고 건강하고 맛있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여러분께 전하고 싶어요.
다음은 역시 가장 궁금한 돈 이야기로 돌아올게요.도움이 되셨다면 공감, 댓글 남겨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