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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총총 Apr 27. 2023

괴즐레메(Gözleme), 괴상하지만 낯익은 부침개

세계 3대 요리 : 튀르키예 미식 여행 Episode #2-4

[맛있는 빵에 진심인 사람들 2-4]

괴즐레메(Gözleme), 괴상하지만 낯익은 부침개


안탈리아에서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엘 가려고 택시 한 대를 대절했다. 성수기엔 외곽으로 조금 거리가 있는 아스펜도스로 가는 투어가 많지만, 1월의 안탈리아는 가장 북적거린다는 러시아 관광객조차 뜸하고 한산하다.


나를 태우러 온 기사는 30대의 건장한 튀르키예 아저씨다. 가기 전에 뭘 좀 먹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기에 그러자고 했다. 시골길을 달려 간판도 없는 천막으로 쑥 들어가더니 튀르키예 아주머니에게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단골집인 듯싶다. 이름도 괴상한 '괴즐레메(Gözleme)' 집.


그런데 괴즐레메집 노천에는 화덕이 없고 솥뚜껑 같은 녀석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아주머니가 밀가루 반죽 한 덩어리를 들고 나오더니 밀대로 훅훅 민다. 얇아진 반죽에 치즈를 뿌리고 척척 접어 솥뚜껑 위에서 굽는다. 아…! 괴즐레메는 화덕에서 굽는 빵이 아니라 솥뚜껑 같은 데에서 부쳐내는 빵이구나…!


괴즐레메를 만들기 위해 반죽을 꺼내 밀대로 훅훅 민다. 처음에는 괴즐레메가 뭔지 모르니 칼국수와 같은 면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피데(Pide)처럼 간 고기와 치즈를 뿌린다. 이쯤 되니 이 음식의 정체는 혼돈 속으로 쑤셔 박힌다.
얇아진 반죽을 척척 접더니 화덕이 아닌 솥뚜껑에서 네모지게 접어 부쳐낸다. 한국에서의 잔칫날 전이랑 느낌이 비슷.


괴즐레메가 구워지는 동안 아주머니는 땔감으로 화력 조절을 하면서 소기름 같아 보이는 기름을 붓으로 바른다. 괴즐레메는 이내 윤기가 반드르르 돌기 시작한다. 잘 구워진 괴즐레메는 흡사 부침개 같다. 바삭바삭한 괴즐레메를 한입 베어 무니 고소한 우지(牛脂)의 맛이 먼저 느껴지고, 밀가루의 바삭한 촉감이 이어지고 그다음에는 치즈의 고소함이 회오리친다.


소기름을 척척 발라 고소함을 더하고 솥뚜껑에 눌어붙지 않게 한다. 소기름은 신의 한 수다.
옛날 커뮤니케이션의 온상지 혹은 카더라 통신의 출발지처럼 괴즐레메가 구워지는 동안 단 1초도 대화가 끊어지지 않는다. 택시기사의 수다력이 더해져 현장은 흡사 옛날 빨래터.


아주머니들과 택시 기사는 괴즐레메를 만드는 동안에서 쉴 새 없이 튀르키예어로 떠들고 있다. 우물가의 수다 마당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나는 어차피 튀르키예 말을 알아듣지도, 하지도 못해 끼지 못하니, 옆에서 괴즐레메만 우물거리며 먹고 있다.

세 판 째다. 요 녀석은 노천에서 즉석으로 구워 먹는 가장 맛있는 간식이 맞다.


떠들든지 말든지... 어차피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괴즐레메나 먹으련다. 냠냠. ㅎ




이 괴즐레메와 낯익고 비슷한 음식을 아제르바이잔 바쿠(Baku)에서 다시 만난다.

5년 전에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을 다시 찾으러 가는 길이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삼촌이었던 미샤 아저씨는 5년 전 바쿠의 게스트하우스에 묵었을 때 나랑 죽이 잘 맞아,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밤마다 로컬 보드카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던 절친이다. 미샤 아저씨는 아제르바이잔 전쟁 때 참전용사였고, 후유증으로 큰 수술을 몇 번이나 치렀다고 한다. 5년 전에도 다리를 살짝 절었다.


지도앱도 없던 시절이라 지금의 앱은 무용지물이다. 기억에만 올곧이 의존하여 미샤 아저씨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나선다.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묻힌 기억력은 참으로 강력하고 신비하다. 길의 기억이 가까워와 질수록, 감각에만 의존하던 그 길이 점점 뚜렷해지며 확신이 짙어진다.


불현듯, 메이든 타워에서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그 거리를 걷다가 예쁜 노천 카페를 발견한다. 느낌상 이런 곳은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곳이다.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리운 절친을 보기 전에 팽창한 긴장감을 요깃거리로 달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런 노천 카페라면 배가 불러도 무조건 앉아야 한다. 안 그러면 현지 경찰이 잡아간다는 속설이 있다. ㅎ 나는 아무래도 참새방앗간인가 보다.


기웃 거리 보니 구탑(Qutab)을 파는 곳이다. 점심께 즈음의 구탑을 만드느라 가게 주인 내외는 정신이 없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바깥쪽 노천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기다리며, 폭발하며 휘몰아치는 설렘을 달랜다.


내가 시킨 고기 구탑은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구탑집 주인 내외의 정신없는 동선 거리만큼이나 늦게 나왔지만, 그 덕에 나는 내가 시킨 구탑을 만드는 과정을 방해 없이 구경할 수 있다.


5년 만에 미샤 아저씨를 만나러 가서 행복한 건지, 고소하고 맛있는 고기 구탑 때문에 행복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제야 알았다.

튀르키예의 안탈리아에서 먹었던 그 노닥거린 괴즐레메는 아제르바이잔 바쿠 이 골목 구탑과 원형을 같이 하는 익숙하지만 괴상하고 낯익은 부침개라는 사실을.


두 나라 구성원의 다수 민족은 같은 튀르크계 민족이다. 튀르크계 민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음식문화의 교집합이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 문화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알겠다. 튀르크계, 우랄-알타이 뭐 이런 것들을 다 떠나서, 두 나라 어느 그룹의 사람들의 혈중 괴즐레메 농도 부족으로, 이 괴상하지만 무언가 몹시 익숙한 부침개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맛있는 빵에 진심인 사람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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