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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Oct 22. 2023

집념의 이사 대작전

언제는 꿈의 집이라더니 이제는 못 팔아서 안달


어느덧 1502호로 이사 온 지 2년이 훌쩍 지났다. 부담스러웠던 대출금은 조금씩 오르는 남편의 연봉과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나의 수입으로 점차 생활 속에 녹아갔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경제의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일까? 연일 계속되는 아파트 상한가가 언제까지고 이어질거란 착각에 빠져 우리는 그만 1502호를 빠르게 정리하는 대신 네이버부동산에 올라온 단지매물 중에 손에 꼽히게 높은 가격으로 고정해두고 있었다.


당연히 꽤 오랜 시간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고, 그 사이 급변하는 부동산시장에서 1502호는 충격적이게도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눈만 뜨면 가격이 치솟던 아파트 거래내역이 하루가 멀다 하고 하향세를 기록하는 시기로 접어들고 만 것이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옆동네, 서울 경기 할 거 없이 전국의 부동산시장이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1502호를 6억이 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했으면서도 2년 만에 10억이 넘는 거래내역을 본 탓에 나날이 가격이 떨어져 1502호가 9억이 되었을 땐 만져보지도 못했던 1억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여전히 소비형태나 생활수준에는 큰 차이가 없었으므로 나는 크게 개의치 않으며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남편이었다. 부동산시장이 불안정한 이때, 남편은 집을 팔아야 한다고 번쩍거리며 정신을 쏙 빼놓았다. 11억에 팔려고 내놨던 집을 9억 5천으로 내리고 보름쯤 지나면 9억 3천에 내놓는 건 어떠냐고 상의해 오는 식이었다. 굳이 왜 지금이어야 하냐는 질문에 남편은 지금이 우리처럼 돈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주택자가 될 수 있는 기회라고 나를 설득했다.


그래 위런 버핏도 그렇게 말하긴 했다. '남들이 욕심을 낼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을 내야 한다'라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지점을 리스크가 줄어든 상태로 봤던 위런 버핏은 나쁜 상황은 나쁜 상태가 아니라  할인된 가격에 자산을 구매할 수 있는 시기라는 명언을 남겼다.



'하.. 근데 그건 위런 버핏이지,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큰 선택을 앞둘 때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이 앞섰고 모험을 하는 일 앞에선 도전보다 먼저 주저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미취학아동이던 시절에는 남편이나 나의 직장이 이사의 가장 큰 고려대상이 되었지만,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을 키우는 시기가 되자 이사는 더욱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아이의 친구관계, 사춘기 등을 고려해 전학문제를 고심해야 했고, 다음 해의 유치원 원서접수가 이전해 11월에 초에 모두 이뤄지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사는 더더욱 급하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사를 향한 남편의 마음은 너무나 간절했다. 



'경제적 자유'라는 목표아래 해왔던 많은 선택을 두고 내가 가장 믿었던 것은 남편이었다. 그가 공부해 온 부동산 지식이나 지금껏 잘 해온 결정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보다 경제적 자유를 향한 열망이 덜했기 때문이다. 부동산,재테크 관련 서적에선 한결같이 '간절함'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부를 향해 가는 길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모두가 알지만 성공할 수 있는 열쇠는 간절함에 있다고 말한다. 남편과 다르게 나는 평소에도 '돈'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지낸다.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런 이상적인 삶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곤했다.


내가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진정으로 원했다면 스물두 살부터 나랑 연애를 했고, 나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며칠 동안 점심값을 아껴야 했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한 것은 그의 순수함과 선량함, 목표를 위해 끝까지 가는 성실함과 진중함. 무엇보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잘 살아보기 위해 애쓰는 남편에게서, 어떻게든 집을 팔아치우려는 집념의 남자의 눈에서 나는 간절함을 보았다. 결국 나는 3년간 살았던 동네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사로 절친한 이웃들과 멀어지게 되고, 어색하고 낯선 동네에서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 잘 해온 날들을 생각하며 문득 그곳이 어디든, 우리가 얼마를 더 갖게 되거나 혹은 크게 잃게 되어 생각도 못했던 모습으로 살든 함께라면 그래도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대책 없는 용기가 생겨났다.



내가 망설이던 동안에도 조금씩 집값을 내리던 남편은 이사에 뜻을 모으자 더 파격적인 가격으로 1502호를 팔아치우려고 애썼다. 언제는 꿈의 아파트라더니 이제는 못 팔아치워서 안달이었다. 그쯤 무슨 일인지 202호 아저씨와 집 팔기 경쟁이 붙게 된 남편은 거의 '사장님이 미쳤어요!' 수준으로 집값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02호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집념의 이과남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엔 1502호를 갑자기 전세로 전환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당시 전세가격은 5억 5천 선이었는데 남편은 그 돈이면 경기도 신도시에 아파트 한 채를 사는 일이 가능하다고 했다.

전세를 주고 그 돈으로 아파트 한 채를 더 사면 남편이 그토록 바라던 다주택자가 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집값이 다시 상승한다면 꽤 긍정적인 미래가 그려졌다. 드디어 해답을 찾은 듯 달콤한 꿈을 꾸며 전세로 1502호를 정리하려고 할 때, 인생이 그렇게 쉬울 리 있겠냐는 듯 또 한 번의 날벼락이 우리에게 떨어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제법 큰 부지의 대기업 회사건물이 아파트로 바뀐다는 기사가 났고 얼마 후 철거 작업을 시작할 거라는 안내가 곳곳에 붙었다. 그러니까 최소 2년간 매일 창문으로 공사하는 현장을 마주해야 하고, 아이의 등하굣길로 공사차량이 드나들고, 동네에는 소음과 먼지가 끊이지 않게 되는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면초가, 진퇴양난이 따로 없었다. 매일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나에게 공사소음은 견디기 힘든 수준의 고문이었다. 다주택자나 재테크를 떠나 생활을 위협하는 상황들만으로도 이사는 더욱 절실해졌지만 당연히 같은 이유로 매매든 전세든 1502호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집념의 이과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최후의 수단인 월세를 꺼내 들었다. 


'월세? 월세라고!!!' 


전세를 월세로 전환해 시장에 내놓는다고 해도 1502호 앞에 예정된 소음과 먼지를 막을 길은 없었다.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월세를 주면 이사 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치원 신입생 모집기간인 11월 초에 1502호는 월세로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세상에! 결국 내가 이사를 가긴 가는구나, 이 집념의 이과남자 같으니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나는 너무나 허탈한 마음이 되었다. 소음과 먼지에선 탈출했지만, 우리는 다주택자 되기에 보기 좋게 실패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와는 한발 더 멀어진 기분이었고, 그렇다면 이사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명분이 없어 답답해지던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없으니까 상황을 바꾸는 거야"라고. 남편은 상황이 바뀌면 변할 수 있다고 했다. 도대체 뭐가 변한다는 건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수많은 물음표와 함께 그렇게 서울에서 더 멀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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