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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얀 Oct 14. 2024

한강의 기적은 출판사의 승리가 아니다


지난 10일,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이라는, 편집자로서, 아니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더 넘어서 아시아 여성으로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트위터, 인스타그램에는 그 이야기로만 가득했고 알라딘 홈페이지가 마비가 되었으며(이상하게 교보문고 UI보다 알라딘 UI가 편해서 온라인 서점은 알라딘만 이용하게 된다) 다음날엔 반나절 만에 13만 부가 팔렸다는 뉴스가 메인화면을 점령했다. 인쇄소는 싱글벙글하면서 특근을 하고 있으며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줄을 서서 책을 구매하게 되었고, 교보문고는 한강 작가님의 초기 작품을 창고에서 꺼내오다 못해(누렇게 변해있다) 아버님 작품까지 진열하며 한강의 기적에 몸을 맡겼다.


…는, 세간의 소식이다.

사람들은 K-문학의 열풍이 불어올 것이며 다시 독서가 유행을 탈 것이라는 전망을 바라보고 있으며 죽어있던 출판계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내 일상은 별로 변한 게 없을까.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뭔가 심드렁하다. 물론 이 말은 감동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한강 작가님이 수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민음사 유튜브 생방송에서 노벨상 수상자 호명을 하는 순간을 보았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다 못해 뭔가 엄청난 것이 가슴을 때려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렸던 것은 분명히 부정할 수 없다. 아시아 여성으로서 최초의 수상작이라니. 이 문장만 보고 가슴 떨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건 정말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가 아니다.(내가 그 출판사들을 다니고 있었으면 이 시간에 이 글을 쓰고 있겠는가.)

오늘 아침에 인쇄소 담당자님과 카톡을 하다가 슬픈 이야기도 들었다. "혹시 거기는 한강 작가님과 연관된 게 하나도 없는 건가요?" "저희도 부러워서 손가락만 빨고 있어요. 과장님은요?" "저희는 조용해요…"


출판계의 부흥이라며? 그런데 정작 한강 작가님의 작품으로 인해 신간들이 묻히고 있고 베스트셀러는 원래도 잘 나가는 한강 작가님의 작품으로 줄을 서고 있다. 이건 마치 BTS나 블랙핑크 같은 탑급 가수들이 컴백을 할 때 작은 소속사 신인 그룹이 데뷔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창비, 문동은 원래도 체급이 맞지 않는데 작은 출판사'따리'가 몸통 박치기를 한다고 상처 하나 날 수 있겠나.


그래서 며칠 전부터 되게 싱숭생숭했다.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과연 질투인 것인가, 하고.

아니, 나는 감동도 받았고 나도 한강 작가님 책을 구매했고(무이자 할부로!) 연일 이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인데, 왜 이 불편한 감정은 뭘까?

같은 업계에 있는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책이 반나절 만에 13만 부가 팔리고 연일 한강 작가의 이름으로 포털 사이트가 도배되어 있다는 사실은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부러울 만하다고 한다. 근데 그 친구가 몸담은 회사의 분야는 문학, 인문학 쪽은 더더욱 아닐 뿐더러 일반교양서적도 아닌지라 전혀 관계 없어 그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명언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게 한강 작가의 승리라고 보지, 출판사들의 승리라고 보진 않아서."


옛날에 이세돌 기사님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이겼을 때 돌았던 짤이 있다



원래 발언은 "내가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이 아니다"



그래, 생각해보면, 이건 한강 개인의 승리이지 출판사의 승리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그저 한강 작가님의 승리에 "꿀을 빨고" 있을 뿐. 거기에 독서라는 트렌드가 분다면 다 죽어간다는 출판업계에 일말의 도움이라도 되는 것이고, 창비나 문동은 거기에 대박을 맞은 것뿐. 그들이 잘한 점이 있다면 '한강 작가를 믿고 그의 책을 내준 것'뿐이지 않을까.


한강 작가님의 책을 낸 곳이 작은 출판사였다면 좀더 아름다운 모습이었을까? 한강 작가님의 작품을 작업하는 인쇄소가 작은 곳이라서 타 인쇄소에 물량을 나눠 작업을 하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웃을 수 있었을까? 

사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있다면(미래가 보이지 않는 데는 사실 대표님의 성향이 크다), 만약 한강 작가님의 작품을 우리 회사에서 냈더라면 이를 회사의 승리로 봤을 것이다. 밀도 있고 세심한 깊이의 작품을 쓴 작가님의 공이 아닌, 그런 작가를 발굴해 낸 대표 자신의 승리로 느끼지 않았을까? 물론 이 모든 것은 우리 회사 한정이지, 다른 회사도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출판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작가의 아름다운 책은 언젠가 빛을 발하리라 생각한다. 이건 정말 확신한다.


여하튼 말이 길어졌지만, 이 승리는 출판사의 승리가 아니다. 한강 개인의 승리일 뿐.

이 글은 여전히 변함없는 나의 일상에 대한 허심탄회고찰일 뿐, 출판계에 대한 어떤 비난도 비판도 아니다. 그냥, 우리는 한강 작가님의 승리에 박수를 쳐주면 된다. 그리고 내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열심히만 하면 안되고 잘 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황석희 작가님의 말을 빌리고 싶다. 

"애초에 노력 없는 재능은 없다."(《번역:황석희》, 황석희,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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