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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family Sep 09. 2021

OO니까 사람이다

OO한 모든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님의  ‘수선화에게’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시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옳거니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외로움을 느낍니다. 제가 즐겨보는 유튜버 중에 ‘권감각’님이라고 있는데 표정 자체에 웃음기를 감추고 있을 만큼 매우 명랑한 성격일 듯하신데, 그분조차 결혼해도 가끔은 외롭다고 고백하시더군요. 사람은 군중 속에서도 외로울 수 있으며,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조차 외로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태 속에서 탯줄을 끊고 나오면서부터 우리는 혼자라는 외로움을 안고 사는 존재인지 모릅니다. 흙이라는 본연의 태 속으로 돌아갈 때까지 말이죠.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주위에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활발한 성격인 분들은 더 그럴 테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분들도 사람들과 최소한의 교류가 안 되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모두가 그런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은 산책과 같이 열린 공간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온택트를 통해 지인들과 통화를 하며 혼자라는 느낌을 떨쳐버리세요”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하지만, 쉽사리 떨쳐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외로우니까 사람이듯, 우울하니까 사람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꼭 이겨내려 하지 말고 그냥 우리가 인간이기에 우울하구나 생각하는 게 어떨까 하고요.  


언제부턴가 포털사이트를 장식하는 기사들은 하나같이 자극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된 원인이 정치가 통합되지 못해서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고, 부동산 폭등에 따른 상실감, 세대 간 갈등, 남녀 간 갈등, 코로나19 지속으로 인한 우울감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극적인 기사들보다 더 것은 기사들에 딸린 댓글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상적이지 않은 일부 사람들이 댓글을 달고 있다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댓글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편 가르기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문득 사람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명제는 누가 만든 것일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외로우니까 사람이듯, 비이성적이니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개, 돼지 같은 군중이라 비하하지만, 비이성적인 것은 개, 돼지가 아닌 사람인지 모릅니다.


 OO니까 사람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주는 편안함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라고 생각하는 묻는다면 저는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남들과 다른 모습이 아니기를 다수 속에 속하기를 바라 왔고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능력이 조금 부족한 사람도, 외모가 조금 덜 매력적인 사람도, 그 무엇이 되었건 조금 다른 사람들을 우리는 다르다고 표현하면서 마음속에서는 “틀리다”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곤 하지요. 과거 성장시대, 밥 벌어먹기 힘들던 시대에는 우울증이 뭔지도 몰랐고 우울하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 한다며 뒤통수 맞았다고.  

 

결국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생기는 어떤 감정조차 이겨내야 할 대상,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도록 강요된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서 지쳐가고 서로에게 상처 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요.


상대의 다른 면을 보고 OO니까 사람이라는 말을 서로에게 건네, 서로를 보듬어주고 이해해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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