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도전: 의지하는 삶과 삶의 의지
캠핑 용품들을 하나씩 구매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을 때,
의식주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衣 옷 의
보온, 보호
食 먹을 식
물, 불, 식재료, 냄비 및 후라이팬, 테이블, 식기, 냉장고
住 집 주
텐트, 바닥 매트, 이불, 빛, 휴식, 안전
이렇게 분류를 하니 머릿속이 조금 정리가 되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준비해서 갈 수는 없고 한 번 가보고 구매하고, 가보고 구매하고를 반복해야 한다는 주변 캠퍼들의 조언에 따라 큼지막한 것들만 1차적으로 구매하고 아직 구매하지 않은 자잘한 것들은 친구에게 빌려 쓰고 한 번 다녀온 뒤 추가로 구매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지금 준비된 것들이 텐트, 자충매트(이너 텐트 안에 까는 두툼한 매트), 버너, 캠핑의자, 막 쓰는 이불.
일반적으로 숙소가 있는 여행을 가면 씻고, 갈아입을 옷가지만 챙기면 되는데 이 캠핑이란 녀석은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평소에 누리는 별 것 아닌 모든 것에 대해 한 번씩 생각을 해보면서 고마운 마음까지 들게 하는 능력을 가진 레저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구옥이지만 비를 막아주는 벽과 지붕이 있는 투룸.
일 년에 한두 벌밖에 안 사지만 나를 보호해 주는 옷가지들.
콸콸 나오는 물.
켜면 나오는 불.
불필요한 것 없이 재고 관리가 되고 있는 나만의 냉장/냉동고.
허리가 아프지 않은 에이스 침대.
안전한 도어락.
등등.
별생각 없었는데 나가서 자연 속에 임시 집을 직접 지어서 몇 밤 잘 생각을 하니 우리가 별 것 아닌 모든 것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감사함이 가득 찼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올해 2월 이사를 했다.
형편이 좋지 않아서 적은 보증금으로 중형견을 키울 수 있는 집을 찾다 보니 오래된 구옥들밖에 없었고 그중에 가장 내부가 깨끗하고 방이 두 개이면서 가끔 컹컹! 개가 짖어도 남들한테 피해가 작은 집을 택한 것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이다.
내부는 깨끗하고 포근했지만 건물이 너무 오래되어서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부터 나의 집 현관까지 가는 길이 을씨년스럽다.
여름이 되니까 더했다. 삐그덕 대는 철 대문을 열고 나의 집까지 걸어가서 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유난히 길었던 장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끼가 거뭇하고 초록하게 피어나고 곱등이나 바퀴벌레들이 종종 눈에 보이기도 했다.
우리 집은 1층으로 되어 있지만 계단을 10개 정도 올라가서 실제로는 1.5층정도 되고 우리 집 밑에 층은 특이하게 지면에서 계단을 4~5개 내려가는 반지하 아닌 1층인데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다.
나는 이끼에 보이는 벌레들을 볼 때마다 할머니 집으로 들어갈까 봐 여름 내내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할머니 집만 걱정할 것이 아닌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장판이나 도배는 주기적으로 임대인이 하셔서 깨끗한데 빨간 벽돌로 지어진 몇 십 년 된 건물이다 보니 집에 틈이 많았다.
이 집에서 처음 보낸 6월~9월까지의 여름... 떠 있는 장판 사이 공간과 벽면 몰딩 사이 빈틈 등으로 바퀴벌레나 다리 많은 지네가 기어 나와서 기겁하며 테이프와 실리콘등을 사 와서 모든 구멍을 다 막아버리는 작업을 했는데 하루는 술에 취해서 귀가한 날 벽에 벌레를 보고 나도 모르게 용기와 파괴력 같은 것이 생겨 양말 신은 발로 밟아 죽여 버렸다.
처음엔 바퀴벌레를 보고 고무장갑 끼고 전쟁 치르듯이 잡았는데 이제는 담력이 좀 생겼나 보다.
(당근마켓에 벌레 잡아주시면 2만 원 드립니다라고 올라온 글에 지원해봐야 하나!)
심지어는 어쩌다 바퀴벌레가 또 나오면 '아 내가 찾지 못한 틈새가 또 있나 보네..가만 보자보자..' 하면서 가만히 벌레를 노려보고 그 벌레 녀석이 다시 돌아가는 곳을 눈으로 좇아 구멍을 찾은 뒤 막아버리는 여유까지 생겼다.
명절에 고향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었는데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우리 몫의 일들은 과거의 우리가 했던 경험들이 만들어준 모습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미래의 나에게 또 어떤 몫을 주기 위해서는 현재에 많은 경험을 쌓고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삶의 의지를 가지고. (벌레 잡는 경험도 미래의 나를 위한 일에 포함해야 할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계획에 없던 캠핑 도전, 계획에 없던 가난한 상태로의 이사, 계획에 없던 사회 복지 관련 직업, 계획에 없던 오래된 수동 경차 구매, 계획에 없던 공인중개사 공부 포기 등등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나의 계획에는 없던 일이지만 미래의 나는 또 2024년의 나를 떠올리며 '24년에 계획되지 않은 일들 속에서 그렇게 버티고 살았기 때문에 이런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며 이런 일이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일! 삶의 의지를 충전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