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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꾸녕 Nov 02. 2024

겁 없이 저질렀던 일 카페 사장(4)

카페 사장이었던 기록: 고마웠다 종점카페

그렇게 후암동 종점에서 단골손님들의 커피 방앗간 역할을 톡톡히 하던 나의 첫 카페, 종점카페는 2017년 주변 새로운 카페들의 등장으로 하락세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다.

주변에 들어오는 카페 탓만 하기에는 나 스스로도 정성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2017년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함)

경쟁 상대들이 생기는 만큼 더욱 긴장하고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하는데 같은 자리에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커피숍이라는 업종은 좋은 가격과 좋은 맛 그리고 좋은 서비스, 이 세 가지를 기본으로 단단하게 다진 후에 사장이 하고 싶은 컨셉, 분위기, 이벤트 등을 입혀 특색 있는 장소로 만들어야 하는데 당시의 나는 좋은 맛과 좋은 가격은 딱히 머릿속에 없던 것 같다.

손님들이 왔을 때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장소로 기억될까, 단골손님들이랑 이벤트를 하고 싶은데 뭘 할까 등 이벤트 회사에서 고민할 법한 내용들을 기획하며 카페를 꾸려갔다.

결국 단골손님들은 종점카페처럼 재미있는 이벤트는 없지만 동네에 새로 생겨 신선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맛도 좋으면서 가격이 착한 새로운 카페들을 찾아 나서며 소위 말하는 손님 나눠먹기가 시작되었다.


 게다가 새로 생긴 카페들은 넓고 쾌적하기까지 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종점카페 건물은 처음에는 3평인데 3층까지 있다며 이색적인 장소로 유쾌하기까지 한 장소로 자리매김했지만, 점점 가파른 계단이 위험하고 굳이 불편하게 갈 필요에 대해 고민하는 비좁은 장소가 되어 갔다.

새로 생긴 카페의 컵을 들고 다니는 단골손님들을 멀찍이 발견할 때면 가슴이 아팠다. 억.


매출은 다이어트랑 비슷하다.

살이 찌는 건 금방인데 빼는 건 매우 힘든 일인 것처럼, 매출도 떨어지는 건 금방인데 다시 올라가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장사에 진심인 사장님들이 매일의 정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쉬지도 않고 긴장 속에서 예민함과 책임감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카페가 생겨도 여전히 종점카페를 응원해 주고 좋아해 주는 단골손님들도 많았다. 오픈하고 장사가 안되었을 때 내 모습과 점점 바빠지면서 활기를 찾았던 작은 가게의 모습을 쭉 함께 지켜봐 주었던 손님들, 회사에서 일하다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을 때 갈 곳이 없어 종점카페에 와서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리며 마을을 추스르다가 갔던 손님, 한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 입국해서 직업을 찾기까지 매일 아침에 11시에 와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가던 외국인 손님, 운영하는 레스토랑 출근길에 늘 들려 설탕 탄 에스프레소를 훅! 마시고 출근하던 손님, 전쟁을 치르고 후암동에서 계속 거주하며 날마다 종로를 다녀오시던 90세 할아버지 손님 등등등.


 어린아이의 성장은 언제나 사랑과 눈길을 받지만 어른의 성장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쪽이 많다. 그리고 다들 각자의 삶이 바쁘니까 응원해 주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후암동 종점카페에서 장사했던 몇 년의 시간은 손님들도 나도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관심을 주고받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모두 어른들이었지만 응원을 주고받았던 시간.

서로의 삶의 일부 성장 과정을 지켜봐 주었던 시간. (그래서 인스타 작별 게시글 올리며 엉엉 움ㅋㅋ)


간이 과세자에서 매출이 올라 일반 과세자로 전환되었던 2016년


 결국 2018년 종점카페는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다른 카페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아서 폐업을 하게 되었다!

가장 철이 없고 가장 즉흥적일 때 겁 없이 덜컥 시작했는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해 주고 다양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던 나의 후암동 종점카페. 

다시는 하지 못할 경험을 하게 해 주어서 너무너무 고마웠고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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