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후기
[광고]00 카드와 00 스킨케어에서 준비한 피부 갈증 회복 EVENT!
이런 문자가 오면 한 번도 궁금해서 읽어본 적이 없었다.
터치해서 확인조차 하지 않아서 쌓여있는 새로운 imessage에 +1로 더해지곤 했는데 생활이 궁해지면서 공짜 욕심이 발동되었는지 호기심이 생겨서 응모를 해보는 요즘이다.
애초부터 신규 손님을 끌 계획이었던 것인지 정말로 선착순 안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벤트 응모 신청서를 쓰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응모에 당첨되었다면서 피부 관리 무료 체험을 받으러 오라는 안내 전화를 받고 며칠 전에 체험을 하고 왔다.
서울 도심의 꽤 유명한 호텔 건물에 있는 피부 관리 샵이었고 친한 친구들에게 이런 곳에 간다고 카톡방에 공유하니, 한 친구가 자기도 대학생 때 이벤트 당첨되었다고 해서 갔다가 화장품 안 사면 집에 못 가는 것처럼 강요해서 알바로 생활비를 충당했던 당시 가뜩이나 부족한 생활비를 털리고 왔다며 그런 것 아니냐고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데 그 정도라면 다행이었다. 아무리 화장품 구매 강요를 해도 결제할 비용이 없으니 결제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고 신변에 위험이 있는 일만 안 생기면 상관없었다.
들어가서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하고 피부 관리를 받았는데 오랜만에 피부 스케일링도 하고 림프 마사지도 받고 모공 케어와 팩 서비스를 받으니 시원하고 편안해서 움찔대며 졸기까지 했다.
이 분들도 유상 영업 활동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것인데 나같이 전혀 소비 계획 없는 사람들만 방문해서 지치면 어쩌지 걱정도 되었다.
마사지를 1시간가량 받고 나서 역시나 밀폐된 작은 상담실에 비몽사몽 한 나를 앉혀 두고 마사지가 어땠는지 평소 피부 고민이 있는지 몇 가지를 물어보고 무료 체험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월 정기 결제로 이런 서비스를 더 깊숙하고 세심하게 관리받고 있는데 무료 체험 한 사람에 한해서 할인이 들어가고 있고 어떤 신용 카드를 주로 쓰는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담당 매니저가 정규 회원 가입 결제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월 10만 원에 이런 케어를 받고 집에서 쓰는 화장품 세트도 받는다면 매우 비싼 돈은 아니다. 더 호화로운 피부 마사지 샵도 많으니까.
하지만 10만 원이라는 돈은 한 달에 치킨을 5번만 안 먹으면 생기는 돈이지만 지금 나는 치킨을 한 달에 한 번도 먹을까 말까 하며 매우 절약하고 있는 형편이라 나한테 이 정도는 투자하자 좋게 생각하더라도 쉽사리 쓸 수 없는 돈이다.
한 때는 나도 영업직으로 고객의 마음과 지갑을 열기 위해 다양한 멘트와 고객 심리를 고민하고 내 상품을 열렬히 판매하던 사람으로서 담당 매니저에게 정말 미안했다.
처음부터 상품을 구매할 계획과 여지가 아예 없는 상황에서 갔지만 질문에는 성실히 대답했고 담당 매니저의 설명에도 집중하며 반응해서 담당 매니저가 더욱 기대를 했는지 나의 거절 후 마무리 인사를 할 때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예전에 영업직으로 일 했을 때, 가장 힘 빠지던 고객 유형이 나 같은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정말 상품이 좋다고 하면서 결론은 나는 못한다는 의지가 굳건한 고객.
당시에는 그럼 처음부터 안 한다고 하지 목 아프게 왜 이야기를 다 하게 만들지라고 입을 삐죽거렸는데, 생각해 보면 이야기는 내 멋대로 한 것이지 고객이 이야기 좀 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야기를 하는 나에 대한 배려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 되어 준 것뿐이고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나이스! 이 사람은 계약하겠다.'라고 마음대로 판단하고 기대하다가 실망한 것은 나였다.
담당 매니저도 나를 보내면서 처음부터 안 한다고 확실히 말하지 왜 다 듣고 있냐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여기까지 와서 무료체험만 하고 가다니 짜다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오늘은 한 건도 못했네, 오늘은 몇 건 못 했네, 오늘 온 사람들은 무료체험만 하고 가네, 오늘 무료체험 노쇼가 많네 등등 하루의 개인적인 운을 원망하거나 나를 원망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눌린 머리 때문에 모자를 눌러쓰고 노곤노곤한 상태로 버스 앞 좌석에 타서 음악을 들으며 멍을 때렸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애정과 관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편인데 그 애정과 관심들을 그동안 무료로 받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는 인생의 접점이 없는 고객들의 마음은 잘 사고, 잘 도우고 있으면서 접점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마음과 도움을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고 사람들을 돕는다.
결국 혼자가 되고 싶어도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생.
무료 이벤트뿐만 아니라 무료로 마음과 관심을 받으면 그에 따른 반대급부를 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하루.
사람의 마음을 사고, 사람을 돕고 사는 많은 이들이 사람에게 너무 지치지 않기를 소망하는 밤.
피부 관리 무료 체험을 받고 오랜만에 피부결이 매끈해서 기분 좋은 오늘.
이런 삶이면 앞으로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