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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꾸녕 Jul 29. 2024

아무 혼잣말

몸속의 여드름들_위장대장내시경_자궁내막검사

 작년에 건강 검진을 하다가 위와 장에서 폴립들이 7개 이상 다수 발견되었다.

검사 도중 폴립은 무사히 제거를 했지만 나쁜 폴립인지 좋은 폴립? 인지 정밀 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약 일주일은 미간에 주름이 펴지지 않은 채 '이제부터 술도 끊고 진짜 건강에 집착하면서 살아야지' 결심하며 심각하게 보냈었지.

그런데 사람 마음이 정말 연약하고 간사해서 그것이 악성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고 몸이 또 멀쩡한 것을 느끼는 순간 평소와 다름이 없이 술을 가까이하고 수면의 질도 신경 쓰지 않고 똑같이 생활했다.


올 겨울에는 마음과 신경을 쓸 일이 많아서 그랬는지 심장 쪽 가슴 피부에 징그러운 수포성 피부염증이 한 달 이상 호전되지 않고 다닥다닥 나다가 겨우 증상이 멈추고 보기 싫은 흉터가 가슴에 남았고,  봄에는 어떤 해충도 나를 물지 않았는데 피부가 갑자기 따갑고 간지러워서 긁으면 모기에게 사냥당한 듯한 자국이 남는 증상이 나타났다.



  또 약 세 달 전부터는 월경 기간이 아닌데도 부정 출혈이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점점 출혈이 증가하는 느낌이 들어서 산부인과에 들러 자궁 경부 검사를 했다. 경부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해서 또 출혈이 나오면 수면 마취를 하고 자궁 속을 들여다보는 내막 검사로 자궁 소파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결국 출혈이 계속되어서 7월에  용기를 내어 산부인과를 재방문해 자궁 소파술을 받았다.


병원에는 웬만해서는 잘 가지 않는 편이라 연말 정산 때 의료비 지출이 10만 원도 채 안 되는 해도 있었는데 올해는 정말이지 병원을 미용실보다 많이 갔다 왔네.


 작년 건강검진 때 내시경을 생전 처음 하는 탓에 두려움이 컸었는데 경험자들이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나 있다고 해서 의사 선생님에게 나를 맡기기로 하고 검사실로 들어갔었다.

그런데 검사를 진행하다가 중간에 수면 마취가 깨서 검사하시는 분들 "어? 깼다, 깼다" 이러면서 "주사 더 들어갑니다~" 이런 대화까지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는데 검사 끝날 때쯤 내가 또 깨버려서 똥꼬와 입에 뭐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을 엉겁결에 몽땅 느낄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똥꼬는 아무렇지 않았다.

귀가하기 전에 잠을 깨는 회복실로 옮겨지면서 이미 잠이 다 깨서 기계들 구경하며 누워있는데 담당 의사 선생님이 오시더니 목으로 넘어가는 쪽에 뭐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걸 못 떼었다면서 한 번만 더 하자고 했고, 나는 다시 내시경실에 잠이 깬 상태로 들어가 "우게ㅜ우구웩웅궤" 하며 결국 비수면 상태로 괴로운 위 내시경을 한 번 더 하고야 말았다. 구역질을 하면서 이럴 거면 왜 돈 추가해서 수면을 했을까 생각했었지..


 7월에 자궁 내막 검사를 받으러 가서 의사 선생님께 혹시 몰라 수면 마취하다가 깬 경험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참고해서 진행하겠다고 하셨고, 굴욕 침대에 누워서 밝은 수술실 불빛을 보며 하나둘ㅅ... 세다가 잠이 들었는데 밑이 뚫린 듯한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고 내가 잠에서 깨며 통증에 많이 움직이려 했는지 " 선생님들이 쫌만 더 끝났어 괜찮아 쫌만 쫌만"을 계속 외치고 계셨다.

알고 보니 거의 끝날 때쯤 이미 마취가 깨는 중에 선생님들은 고통으로 인해 움직이는 나에게 계속 외치고 있었고 완전히 깨고 나서 그 목소리들이 또렷하게 들렸던 것이었다.

시술 전에 수면 마취가 중간에 깬 적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약을 투여했는데도 또 깼다면서 의사 선생님이 술을 잘 마시는지 운동을 얼마나 하는지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웃는 얼굴로 물어보셨는데 자궁까지 기계가 들어가서 내벽을 긁어내고 난 뒤에 고통은 극심한 생리통과 같아서 함께 웃어 드리지 못했지.


얼굴에 나는 여드름은 시원하게 짜고 살펴보면 되는데 몸속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니 정말 두려울 일이다.

일주일에 5번 이상 운동을 하면서 적당한 영양제를 챙겨 먹고, 고등학생 때의 체중을 38살 지금까지 똑같이 유지하거나 근육량으로만 몸무게를 조금씩 늘려가며 유지하는 루틴이 꾸준한데도 아플 때는 아프다.

건강 앞에서는 늘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운동은 밥 먹고 양치를 하는 것처럼 건강한 삶을 지향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 운동을 한다고 해서 병이 들지 않는다거나 무조건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니다.  건강 하나는 정말 타고났다니까? 하는 오만함은 절대 가져서는 안 된다.

'요즘은 집에 바퀴벌레가 없네?' 하는 순간 바퀴벌레가 갑자기 나타나는 나만의 재수 털리는 법칙이 있어서 바퀴벌레가 요즘 보이지 않아도 '오~ 요즘은 없네?' 하지 않고 '이 새끼들 어디서 나올라고 숨어 있나. 나오기만 해 봐.' 하며 괜히 더 벼르는 자세를 갖춘다.

그러니까 마음 놓고 오만에 떠는 것이 아니라 경계 태세를 갖추고 대비한다는 것이지.


 넋 놓고 있을 때는 멍 때리고 평온하게 지내다가.

바퀴벌레던 몸속에 나는 여드름 폴립들이던, 살아가면서 생기는 사사건건 한 일들이던 그것들이 눈앞에 딱! 닥쳤을 때 비로소 경계 태세를 갖추어 무엇이던 헤쳐나가는 40대가 되기를 지금부터 연습을 하려 한다.

그러니까 너무 미리 경계 태세를 갖추어 봤자 어차피 일들은 발생할 예정이기 때문에 나의 너무 빠른 준비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지.

차라리 평온해지는 연습을 하면서 나에게 회복의 여유를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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