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9. 취향
SF. Science Fiction. 과학소설.
과학적 이론이나 기술에 기반을 둔 허구의 세계를 다루는 문학 장르입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 현재로서는 실현 불가능한 과학·기술·사회 체계를 상상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미래 사회를 탐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 ChatGPT
SF 장르를 좋아한다. SF 소설, SF 영화, SF 드라마 모두 좋아한다. 10년 간 가장 사랑했던 영화는 기억을 지우는 영화,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이터널 선샤인)였다. 그리고 최근에 가장 사랑하는 영화는 멀티버스를 소재로 한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로봇 기수의 재활기를 다룬,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이다. 가장 좋아하는 넷플릭스 시리즈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단편 모음, 「Black Mirror」(블랙미러)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이미 감상한 사람들이라면, 나의 취향에 대해서 감이 잡힐테지만, 감상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조금씩 줄거리를 적어본다. 좋아하는 작품 하나 당 글 하나를 할애해서 후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인데, 좋아하는 마음을 억누른채 줄거리만 소개한다.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 조엘은 여자친구 클레멘타인과 헤어졌다. 조엘은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클레멘타인의 직장에 찾아갔는데,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알아보지 못한다. 알고보니, 클레멘타인은 조엘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는 시술을 받았다. 그래서 조엘도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우려 한다. 조엘이 자는동안 조엘의 머릿속에서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들이 하나둘씩 지워지는데, 그 안에서 조엘은 클레멘타인과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린다.
「에에올」의 주인공, 에블린은 다정하기만한 남편 웨이먼드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와서 세탁방을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세금 신고를 하러 가던 중, 갑자기 웨이먼드의 눈빛이 카리스마있게 바뀌더니, 자신은 멀티버스에서 찾아온 웨이먼드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에블린만이 빌런으로부터 이 모든 멀티버스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며,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해서 멀티버스 점프를 하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이상한 행동들을 하며 에블린은 특수한 능력들을 얻게 되고, 충격적인 빌런을 맞이하게 되는데...
「천 개의 파랑」 주인공,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는 경마에서 최고 속도로 달리기 위해 고통스러워하는 투데이를 위해 낙마한다. 이후 콜리는 폐기처분 되고, 투데이는 안락사 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로봇에 관심이 많던 연재가 콜리를 만나 콜리를 수리하고, 하반신이 마비된 은헤는 투데이에게 관심을 보인다. 연재와 은혜, 그리고 콜리는 마지막으로 투데이와 함께 달리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블랙 미러」에는 여러 단편이 있는데, 하나의 단편만 소개하고자 한다. 시즌7 1화, 보통 사람들.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던 부부. 어느 날, 부인이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쓰러진다. 리버마인드라는 최신 기술로 이 뇌 손상을 치료할 수 있어, 남편은 리버마인드를 아내에게 적용한다. 리버마인드는 환자의 손상된 뇌를 서버에 백업하고, 환자의 뇌 손상 부분은 서버의 데이터를 받아오는 수신기로 대체하는 기술이다. 즉, 환자는 본인의 뇌를 구독하는 비용을 매달 회사에 지불해야 한다. 이런 세계관에서 이 부부는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SF는 머지 않은 미래에 실현될 수도 있는 기술이나, 우리 현재의 삶에 닿아있는 기술을 다룬다.「이터널 선샤인」의 기술은 머리에 헬멧을 씌우는 정도이고, 「블랙 미러」의 기술들은 한 번 쯤 과학 뉴스에서 본 기술들이다. 「에에올」과 「천 개의 파랑」은 다분히 현대적인 가정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현실 세계와 친화적인 SF의 세계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세계관의 인물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손 닿을 수 없이 너무 멀리 떨어진 세계관의 인물들은 그 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해리포터같은 판타지 세계관, 우주를 무대로 하는 스타워즈 세계관의 인물도 현실 세계의 인물들처럼 외롭고, 불안하고, 사랑할텐데. 뭐랄까 그 세계관이 너무 익숙치 않고, 현실감이 없다보니까 그 세계관 속 인물들은 그냥 게임 NPC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우주를 무대로 하는 SF는 좋아하지 않을 뿐 더러, 기피하는 쪽에 가깝다. 그러니까 스타워즈, 닥터후, 듄, 인터스텔라 등등 일반 사람들의 머릿 속에 딱 떠오르는 스페이스 오페라 SF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다 감상하기는 했다... ㅋㅋㅋㅋ)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삼은 21세기 현대 사회라는 세계관에서 살아가고 있다. 2019년에 출간된 장류진 작가의「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소설을 예시로 들어보자. "우리동네마켓", 즉 "우동마켓"이라는 중고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IT회사 직원, 안나가 주인공이다. 안나는 수많은 새 제품을 정가의 90% 가격으로 판매하는 유저, 거북이알이 마음에 걸린다. 안나는 거북이알을 만나 어째서 이토록 많은 중고거래를 진행하는지 물어본다. 알고보니, 거북이알의 사장이 월급을 회사 포인트로 지급하고 있었고, 거북이알은 현금을 얻기 위해서 회사포인트로 구매한 제품들을 우동마켓에서 교환하고 있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대략 이런 스토리이다. 이 소설은 21세기 한국이라는 세계관에서는 너무 당연한 기술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동마켓"이라는 어플의 보급, 아니 그보다 더 앞서 전국민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 회사 포인트로 물품을 구매하는 온라인 페이 시스템, 등등 사실 21세기 현대 사회도 수많은 기술들로 구성되어있다. 다만 우리는 그게 너무 당연할 뿐인 것이다. 스마트폰과 온라인페이 시스템이 지금처럼 보급화되지 않은 15년 전, 2004년에 이 책이 출간되었다면, 이 책은 현대 리얼리즘 소설이 아닌, 근미래 SF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SF도 마찬가지다. SF에서 과학과 기술은 그 세계관과 배경을 형성하는 데에만 필요할 뿐이다. 다만, 우리가 그 기술을 들어본 적 없고,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그 기술에 대해서 설명하는, 즉 세계관과 배경을 이해시키는 지면이 조금 필요하다. 아까 예시로 들었던 2004년의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이해시키려면 당연히 스마트폰에 대한 설명이 조금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또 다른 예시로는, 외국인이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알고난 이후에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 그 먹먹함이 배가 될 것이다. 음... 사실,「소년이 온다」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잘 알지 못하고 읽어도 먹먹하다. 이 소설의 배경에 군사적 탄압이 있었겠다는 유추를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군사탄압 그 자체보다도, 각 인물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그리고 기억하는 그 일로 인한 개인적 고통과 내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즉, 어떤 작품에서 세계관이나 배경 설명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결국 소설은 인물의 내면 감정 변화와 인물들 사이의 관계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SF 얘기를 하다가 한강까지 넘어와버렸는데,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SF에서 과학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SF도 기본적으로는 소설이기 때문에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SF도 일반 소설처럼 대한다면, 그럼 굳이 SF를 좋아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SF는 우리에게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세계관을 설정한다. 모든 아기들이 국가 관리 시스템 하에서 태어난다거나(올더스 헉슬리 - 멋진 신세계),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입으로 언어를 내뱉을 수 없다거나 (김보영 - 다섯번째 감각), 모든 사람들이 온라인 장례 시스템을 이용한다거나, (김초엽 - 관내분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또 다른 평행세계의 나를 만난다는(스파이더맨 유니버스) 등의 세계관 말이다. SF 세계관은 내가 다수자여서 그닥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부분을 꼬집어 줄 수 있다. 반대로 내가 소수자인 경우에도, 내가 다수자가 된다면 당연하게 바뀌는 부분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SF는 기존 사회적 관계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현실과는 똑같은 관계지만, 새로운 시각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다룬다. SF는 우리가 당연하게 사고하고, 접근했던 일상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출산의 고통과 돌봄의 노동이 인간으로 하여금 부모 자식간의 사랑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 과연 당연한 것일까? 인간은 서로 입과 귀를 사용하여 음성 대화를 하며, 이 대화의 많은 부분은 대화의 정보보다도 음성 정보에 많이 의존한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음성 대화를 할 수 없는 세계에서의 내 진심의 전달이 가능할까? 내가 느낀 고통은 나 밖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 때, 정말 나와 동일한 아픔을 느낀 또 다른 객체가 움직인다면, 나는 그 객체에게서 깊은 공감을 느낄까? 또는 정반대의 도피감을 느낄까? 우리가 여러 질문들에 대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소설이고, 그 상상력에 과학과 기술로 날개를 덧붙여 주는 장르가 SF 이다.
추가적으로 추천하는 SF들을 꼽자면...
김초엽 - 지구 끝의 온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은 이제는 너무 유명한 작가지만, 유명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김보영 - 다섯번째 감각
최이아 - 제니의 역
앤디 위어 - 프로젝트 헤일메리
조지 오웰 - 1984
앞으로 감상하고 싶은 SF는...
켄리우 - 종이 동물원
레이 브래드버리 - 화씨 451
천선란 - 모우어
청예 - 라스트 젤리 샷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블레이드 러너
등등... SF 추천 받습니다.
덧.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은 정말 완벽한 소설이다. 23년에 「총, 균, 쇠」를 읽어버려서 23년의 책은 「총, 균, 쇠」가 되어버렸지만, 「천 개의 파랑」은 정말 완벽한 내 취향의 소설이다. 「천 개의 파랑」에 흠이 하나 있다면, 천선란의 기대치를 너무 높여버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