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도 밥처럼

1화-거울 속 그녀가 말해 준 것

by 홍주빛

거울 속 주름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이제는 그만, 내려놓아도 될 시간이야.”

정년을 앞둔 영양사가 한 그릇의 밥처럼 삶을 정리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직, 정년이 낯설어요.
매일 아침 익숙하게 찾아가던 일터, 수없이 지었던 밥들, 동료들과 웃고 나눴던 이야기들.
그 모든 일상이 아직도 너무 선명한데, ‘이제 그만’이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이 글은 제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거울 속 주름과 마주한 어느 아침부터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담담히 떠나보내면서도, 다음 마당을 향해 따뜻하게 준비해 가는 저만의 방식이기도 하지요.

퇴직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의 이름이 되기를 바라며.


아직 정년퇴직이 실감 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고, 하루하루는 여느 때처럼 분주하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화장실 거울을 보다가 멈춰 섰다.
희미하게 하나둘 새겨진 이마의 주름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이제는 그만 내려놓아도 될 시간이야.”

거울 속의 그녀는, 내게 정년의 의미를 먼저 깨우쳐 주고 있었다.


요즘 들어 업무 속도가 조금 느려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의 밀도는 더 높아졌다.
엄마들과 점심을 먹고 나누는 대화 속에서 마음을 다시 추슬러본다.

“어제는 OOO선생님께서 아이들한테 강 선생님 퇴직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에이~ 정년 연장이 될 수도 있는데 벌써 정년이라니요~”

큰엄마의 위로 섞인 말에 살짝 웃었지만,
어쩌면 내 마음은 이미 천천히 짐을 싸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년 연장이 사회적 이슈로 오르내리고 있고,
연금 개혁 이야기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분위기 속에서
8월 말까지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막상 4개월 뒤,
정들고 익숙한 사람들과 작별하고
아침마다 출근하던 이곳에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불안하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되겠지.

요즘엔 퇴근 후 책을 더 읽고,
다음 마당이 어디일지 조심스레 찾아보고 있다.


나는 가끔,
정년퇴직을 바라게 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OOO 선생님은 두 번이나 물으셨다.

“강 선생님, 벌써 정년퇴직이에요? 너무 젊지 않아요?”
“퇴직 후엔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궁금해서 묻는다기보다는,
관심과 격려, 그 중간쯤에서 건네는 말.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사실 나는,
영양사는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대학에서 전공은 했지만 다른 일을 하며 살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어문 교사로 3년 가까이 학습지 수업을 했다.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던 나에겐 꽤 잘 맞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방과 후 수업의 붐이 일었고,
학습지 교사는 밀려나 오후 4시 이후에야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겨울엔 차 안에서 대기하다 손이 꽁꽁 얼고,
시골 산길을 운전하다 고라니가 튀어나올까 두근거리기도 했다.

그 무렵, 누군가가 말했다.
“장롱 속 영양사 면허증, 꺼내 써봐요.”


마침 동생 소개로 집에서 40~50분 거리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영양사를 찾는다는 말을 들었고,
하고 있는 일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주 2~3회 식단을 짜주는 조건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인수인계가 미뤄지며, 결국 그 일은 흐지부지되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기회가 스쳐가자,
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이 지역에도, 어딘가 너를 기다리는 곳이 있을 거야. 찾아봐.”


그 말처럼,
운명처럼 ○○요양병원의 채용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동네에 이런 병원이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면접을 보고,
드디어 장롱 속 면허증을 햇빛 아래 꺼내 들게 됐다.

○○요양병원은 일반 병원과는 조금 달랐다.
폐쇄병동이지만, 식사는 가능하면 식당에서 따뜻하게 나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환자들은 간병 선생님이 식판을 날랐다.
나는 매주 식단을 준비하며 병동 게시판을 돌았다.

“자장면은 언제 해주나요?”
“그때 그 생선구이, 참 맛있었어요.”
“죽 말고 밥 먹고 싶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
그리고 아무 탈 없이 다짐식을 드셨을 때,
나는 참 다행이고 감사했다.


몇몇 환자들은 프로그램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하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셨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제발, 오늘의 밥이 이분들을 조금이라도 회복시켜 주기를.”
“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이제 나는,
거울 속의 주름을 더는 부인하지 않는다.

시간은 어느새 나를 데려와 여기까지 데려다 놓았고,
나는 이 자리에서 수많은 밥을 짓고,
수많은 사람을 먹여왔다.

그리고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한 따뜻한 밥 한 끼를 준비해야 할 시간인지도 모른다.


[남은 시간도, 밥처럼]

조용히 끓이고, 정성껏 덜어내고, 따뜻하게 나눌 수 있다면
퇴직이라는 말도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며 저 자신에게 자꾸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맞이하고 있을까.”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면서도,
한 편으론 다가올 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은 낯설지만,
어쩌면 저는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밥을 짓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이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남은 시간도, 밥처럼’
천천히 끓이고, 정성껏 덜어내고, 따뜻하게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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