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고른 그 메뉴

돼지껍데기볶음 — 엄마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사랑

by 홍주빛

아이들이 고른 낯선 메뉴, 돼지껍데기볶음.

그 한 접시를 위해 우리는 작업대에 서서

면도기로 껍데기를 다듬었습니다.

아이들의 식판 위에 오르기까지,

그 한 접시는 사랑이었습니다.



한 장 한 장, 껍데기를 밀며
우리는 아이들의 한 끼를 준비했다.


겨울이 깊어가던 12월 말,
우리 학교 식단표에 평소와는 다른 메뉴 하나가 올랐다.

‘돼지껍데기볶음.’

2학기 말, 학생들이 적어낸 희망 메뉴들 가운데
가능한 것을 골라 식단에 반영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띈 단어가 바로 ‘돼지껍데기볶음’이었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니 식단에는 넣었지만,
막상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조리보다 어려웠던 건, 믿을 수 있는 껍데기를 구하는 일이었다.
냉장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위생적이고 맛있는 껍데기를 구할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큰엄마의 추천으로 ‘홍주미트’라는 대형 육가공 업체를 찾아갔다.
20분 넘게 차를 몰아 어렵지 않게 도착했지만,
돌아오는 길은 복잡했다.

논길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다 겨우 학교로 돌아왔지만,
정작 홍주미트에는 껍데기가 없었다.

단골 마트에도, 동네 정육점에도 전화로 수소문했지만
돌아온 건 모두 ‘없다’는 말뿐이었다.


그러다 천우신조처럼
수입육을 취급하는 정육점에서
얼어붙은 한돈 껍데기 5kg을 찾아냈을 때,
조금은 승리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돼지껍데기볶음 만들기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막내 엄마가 삶은 껍데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던 중,
제모가 덜 된 부분과 젖꼭지가 보인다며 나를 불렀다.

급한 마음에 감자칼로 긁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정육점에 문의했더니,
“토치로 지지거나 면도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토치는 없었고,
나는 곧장 농협 마트로 달려가 ‘4중 날 면도기’를 사 왔다.


그날 오후, 막내 엄마와 나는
조용히 작업대에 나란히 서서
손에 면도기를 들었다.

하얗고 미끈한 껍데기를
한 장 한 장, 정성껏 다듬었다.


날카로운 면도날이 스치는 소리.
숨죽이며 털을 제거하는 손길.
아이들이 먹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도 더 조심스러워졌다.

5kg을 다 다듬는 데 40분쯤 걸렸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칼로는 껍데기가 잘 잘리지 않아
둘째 엄마가 가세해 가위로 한 조각씩 잘랐다.


돼지껍데기볶음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요리였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완성한 볶음은
마침내 아이들의 식판 위에 올랐다.


좋아하는 아이들은 두세 번씩 가져다 먹었고,
처음 먹어보는 아이들은 신기해하거나
약간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


평소보다 17명이 저녁을 거른 건 아쉬웠지만,
남은 건 한 줌도 채 되지 않았다.

특히 성재는 반찬통을 들고 와
남은 걸 담아가겠다고 해,
말리긴 했지만 그 마음이 어찌나 예쁘던지.


단순한 요청으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돼지껍데기볶음 한 접시 안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손길, 그리고 사랑이 담겨 있었던가.

식재료 값은 비싸지 않았지만,
그 과정과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마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이 모든 수고가,
단 한 입의 “맛있어요”로
충분히 보상받았다는 것을.


올해가 가기 전,
우리는 또 한 번 껍데기를 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도 다시 바라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피부가 탱탱하고,
마음이 건강하고,
삶이 늘 행복하기를.


수고했다, 나도.
그리고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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