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민들레의 사랑

― 기린에게 말을 걸지 못한 어느 날의 기억

by 홍주빛

대학 시절,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왔을 법한

묘한 설렘과 지나간 찰나에 대해 떠올렸습니다.

기린은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먼 존재,

누군가에게는 한순간의 빛이기도 합니다.

이 시는 결국 말을 건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마음속에 조용히 피었다 지는 감정의 기록입니다.

이름 없는 작은 꽃들처럼, 사랑도 그리움도 조용히 피어나지요.



시골 시외버스 안,

꽉 찬 승객들 사이

유난히 훤한,

기린 같은 청년 하나.


행운일까, 운명일까?

수줍은 민들레

말 걸 용기 없어

홀씨 하나 흩뿌리듯

리플릿을 건넨다.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기린은 목이 마른 걸까?

심심한 리플릿을

가볍게 받아 든다.

비가 오려나,

오아시스를 발견하려나?


그날 이후,

강의실은 기린의 출현으로

들썩들썩.


수줍은 백합송이

맨숭맨숭 인사하네.

“무슨 일이야? 낯선 기린이?”

민들레, 백합, 개나리

소곤소곤,

각자 마음이 싱숭생숭.


그런가 봐.

그런 걸까?

아니, 분명 그랬겠지.


기린은 매일 꽃밭을 찾아와

아무 말 없이

바람처럼 사라진다.


따뜻한 말 한마디,

상냥한 안내가 필요한 걸까?

이유 없는 출현에

멀찌감치 지켜보다

지나가는 바람 되어

또 사라진다.


관심이었을까?

끌림이었을까?

말을 건 걸까?


은하계 밖 세계를 모르는

민들레는

수년 후 도시 한복판에서

그 기린을 다시 만난다.


잠깐의 인사로

아쉽게 헤어진 뒤,

혼잣말처럼 되뇐다.


물어볼걸.

사연을 들을 걸.

그날들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그 말 없는 나날 속,

기린의 정체는

정말 풋풋한 사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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