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관찰이었습니다.
초여름 어느 날, 느티나무 아래를 걷다 문득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거꾸로 물구나무를 선 듯한 느티나무 기둥 위,
한 마리 달팽이가 고요히 앉아 있었지요.
그 굵고 단단한 기둥은 마치 여인의 허벅지처럼 보였고,
그 위에 조용히 머문 달팽이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작은 어른 같았습니다.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날 그 순간—그 조용한 풍경이
제 마음엔 다정한 이야기로 번져왔습니다.
이 시는 그 느낌을 고요히 기록해 둔,
자연이 들려준 속삭임의 한 페이지입니다
홍주빛
물구나무 선
여인의 한쪽 다리 위,
말 없는
달팽이 한 마리.
초여름 한낮의 낮잠 자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투명한 모자 뒤집어쓴 채,
온 세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고요히 그 자리에 앉아 있어.
간지럽다, 귀찮다 말없이
푸른 옷 그늘 내어주는
너그러운 느티나무 여인.
“물구나무서기 힘들지 않아요?”
그 마음 알아주는
달팽이 맘이 예뻐서
귀찮다 마다하지 않고
한쪽 다리 내주었지.
마음껏 쉬다 가렴.
가끔 초록 바람 만들어
다정하게 감싸줄게.
숲 속의 산새들도
지나가며 노래하고,
달팽이의 속삭임—
느티나무도 들었지요.
나뭇기둥에서 쉬고 있는 달팽이 한 마리가 제게 다정한 풍경으로 다가왔고,
느티나무는 그 달팽이를 품어주는 여인처럼 보였습니다.
자연 속의 침묵도, 때로는 깊은 대화를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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