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 프로젝트 연대기②] 부캐와 본캐의 상호작용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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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은 본업이 되고 어떤 일은 사이드 프로젝트가 될까? 사이드 프로젝트가 본업이 되기 위해서는 당장은 아니라도 장기적으로 그 일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7년간 사이드 프로젝트와 본업을 넘나 들면서 내린 나름의 결론이다.
퇴사 후 ‘마더티브’를 본업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할 때만 하더라도 이 지점을 고려 못했다. 우리만의 고유한 콘텐츠를 만들 자신은 충분한데, 이런 콘텐츠가 꼭 필요한 것도 분명한데 이게 과연... 돈이 될까? 사업으로 만들 수 있을까? 투자 계획서를 쓰고 BM을 고민하고 숫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토록 재밌던 사이드 프로젝트가 더는 마냥 즐겁지 않아 졌다.
즐거운 일이 돈이 되려면 기다림도 필요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당장 돈을 벌지 못해도 기다리는 시간 말이다. 퇴사 후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 한 달, 두 달 늘어나자 눈치 주는 사람도 없는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금은 창업에도 다양한 속도와 방식이 존재한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창업이라고 하면 모든 걸 갈아 넣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있었다. 집중 육아기에 있는 엄마 4명에게는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다. 우리에게는 일만큼이나 가족도 소중했다. 아무래도 사업 체질은 아닌 것 같다며 결국 창업을 접기로 했다.
마더티브를 다시 사이드 프로젝트로 전환해야겠다고 결심한 지 얼마 안 돼 나는 이직을 했다. 두 번째 회사는 성수동에 있는 산후 헬스케어 소셜벤처였다. 여기에 들어가게 된 과정이 흥미롭다.
브런치에 쓴 글이 브런치 카톡 채널로 배달된 적 있다.
아침에 브런치 알람을 켜놨다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려서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무섭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글을 두 번째 회사에 몸 담고 있던 직원이 우연히 보았고, 글 속에 등장하는 마더티브를 발견하게 된다(여러분 링크를 잘 활용하세요!).
아이가 아닌 엄마에 초점을 맞춘 마더티브의 콘텐츠가 자신들이 구상하고 있는 서비스와 결이 맞을 것 같다고, 처음에는 콘텐츠 제휴 제안으로 시작했다 입사 제안으로 이어졌다. 결론적으로는 사이드 프로젝트 덕분에 이직을 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회사인 소셜벤처에서 콘텐츠 에디터로 일하며 산후운동 앱인 ‘헤이마마’ 론칭 과정 전반에 참여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나의 사적인 질문과 욕구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다른 삶의 방식은 없을까’라는 다소 모호한 질문이었다면 아이를 낳고서는 그 질문이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킬 수 있을까’라는 좀 더 구체적이고 절실한 질문으로 바뀌었다.
마더티브가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본업으로 또 사이드 프로젝트가 되는 과정에서 질문의 결은 또다시 달라졌다.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며 일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창고살롱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인터뷰집을 만들게 됐다.
생각해 보면 계속 동료와 뭔가를 함께 했던 건 내가 가지고 있던 사적인 질문이 나만의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목소리를 내야 더 멀리, 더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동료가 있었기에 쉬이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또 하나. 동료가 있으면 쉽게 그만둘 수가 없다.
이렇게 글을 써놓고 보니 내가 엄청 적극적이고 사람들과 뭔가 함께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선택적 내향인인 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 콘텐츠를 오랫동안 만들어 왔기에 완벽주의 성향도 강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동료를 찾을 수 있었던 동력은 그렇게 해야 뭐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산 전, 사이드 프로젝트로 책을 만들 때는 사실 그리 힘들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이외의 시간은 모두 내 시간이었다. 아이를 낳고 회사를 다니면서부터는 시간과 에너지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이 상황에서 뭘 하나 싶다가도 계속 뭔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꿈틀댔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가벼워도 괜찮았다. 일단 딴짓으로 해보는 거니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투입하지 않아도 됐고 완벽하지 않아도 됐다. 육아로 고립된 상황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명목으로 동료들과 소통하고 뭔가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즐거웠다. 혼자라면 결코 떠올리지 못했을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고 서로의 아이디어에 호응하며 더 큰 그림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설렜다.
위커넥트와 사전 미팅을 하면서 창고살롱을 창업하기로 한 결정적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창고살롱 프로젝트는 나와 마더티브를 함께 해온 인성님 그리고 인성님의 '엄마를 위한 구글 캠퍼스' 동기인 혜영님 셋이서 성수동에서 커피타임을 하다 아이디어가 나왔다. 일하는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었지만 엄마들은 물리적으로 참석하기 어려웠다. 일하는 엄마, 다시 일하고 싶은 엄마를 위한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며 파바박 전류가 튀었다.
셋 다 직장에 다니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상황. 몇 번의 커피 타임이 이어졌고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해 보기로 했다. 기획안까지 다 짰건만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만남이 어려워졌다.
그럼 그냥 온라인에서 해볼까?
엄마들이니까 애들 재우고 밤 10시에 해볼까?
아무도 안 오면 우리 셋이서 이야기하지 뭐.
시작은 가벼웠다. 프리시즌은 처음에는 무료였다가 그다음에는 우리 수고비도 있으니까 회당 5000원이라도 받을까? 8000원? 9000원? 하다가 1만 원을 받았다. 가격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한 멤버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1만 원 이어도 2만 원 이어도 아니 그보다 더 비싸도 이렇게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퀄리티 높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참여하겠다고. 이런 프로그램 계속 만들어 달라고. 창고살롱 프리시즌뿐 아니라 시즌1, 시즌2 모두 함께 하고 있는 수지님이 한 이야기였다.
무료 프로그램을 유료로 전환해 본 경험은 창업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줬다. 창고살롱 시즌2 멤버십은 3개월에 33만 원. 멤버가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는 오픈 세션은 1회당 2만 5천 원을 받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얼마 안 되는 금액일 수 있고 누군가는 온라인 세션이 뭐가 이렇게 비싸냐고 할 수도 있지만 프리시즌과 시즌1, 시즌2를 끝내고 시즌3을 준비하는 지금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창고살롱에서 만드는 온라인 프로그램은 그 정도 아니 그 이상을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프로그램이라고(시즌3 가격은 아직 안 정해졌다).
본업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쌓아 온 시간과 경험, 각자 다른 맥락과 장점을 가진 동료들 그리고 창고살롱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멤버들이 있기에 비사업 체질인 나는 창업을 결심할 수 있었다. 창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창고살롱의 타겟층은 '지속가능하게 일하고 싶은 엄마'에서 '지속가능한 일과 삶을 고민하는 여성'으로 바뀌었다.
위커넥트 온라인 컨퍼런스 당시 사이드 프로젝트의 유료 전환 시점을 언제로 잡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는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밌지 않다면 본업 이외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데 사이드 프로젝트를 오래 하다 보면 재미만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온다. 이거 그냥 자기 만족 혹은 재능 기부 아닐까 답답해지는 순간.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그럴 때가 자주 찾아온다. 나는 열심히 만들었는데 이거 나만 보고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순간 말이다.
그럴 때는 역시나 사이드 프로젝트니까, 가볍게 시도와 실험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돈을 받아 보고 안 되면 홍보 방식을 바꿔볼 수도 있고. 꼭 돈이 아니어도 좀 더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받아 볼 수도 있다.
마더티브가 포포포 매거진과 함께 만든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는 핸드북과 확장판 인터뷰집 2권이 있는데 핸드북은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해서 무료로 배포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청을 받았는데 무려 1000권이 하루 만에 동이 났다. 아니.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단 말이야? 깜짝 놀랐다. 절절한 신청 사연을 읽다 보니 구체적인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때 생각했다. 독자들이 스스로 손을 들지 않는다면 손을 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다고. 무료 독자가 유료 독자로 전환되는 건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현재 나는 공동창업자들과 함께 W Plant라는 조직을 만들어 창고살롱과 마더티브를 운영하고 있다. 콘텐츠를 제작하고 워크숍, 강연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한다.
부캐가 본캐가 되니까 어떻냐고? 얼마 전 심각한 번아웃을 경험하면서 알게 됐다. 아, 그동안 사이드 프로젝트가 내게는 숨구멍 역할을 해줬구나. 일과 육아라는 본업에서 풀리지 않는 갈증이 있을 때 사이드 프로젝트는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나만의 방 같은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쉬면서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면 다시 본업에 몰입할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사부작사부작 나만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찾으려 하고 있다(동료, 아이디어 대환영. hong698@gmail.com)
끝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일단은 가볍게 해봤으면 한다. 아래 사진은 내가 전 직장 동료이자 마더티브 창간 동료 주영님에게 교환일기를 쓰자고 제안하면서 보낸 카톡이다. 일요일 오전 10시. 조금 무섭지만... 기획은 가볍고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서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아님 마는 거고.
또 한 가지. 사이드 프로젝트가 재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욕구와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요즘 사이드 프로젝트가 유행하니 나도 부캐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사이드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이다. ‘나도 해야 할 것만 같아서'가 아니라 ‘이걸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좋겠다.
애정하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대사를 인용하려 한다.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저 사는 게 진짜 뭔지 궁금해졌어요." 극 중 찬실이처럼 내가 뭘 원하는지 깊이깊이 고민해 볼 것. 단, 시작은 가볍게. 아. 너무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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