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도 올 것이 왔다
월요일 오전, 후배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후배네 가족은 전날 우리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후배는 아이가 새벽에 갑자기 열이 나 아침에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했는데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했다. 어제 함께 놀았던 날날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무겁다고.
후배에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괜찮다고 했다. 아이가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가정 보육하느라 고생이 많겠다고. 통화를 마치고 곧장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아이는 아침에 자가검진키트로 검사를 하고 등원한 상황이었다. 음성이 나오기는 했지만 잠복기가 있을 수 있으니 바로 아이를 데리고 오기로 했다.
후배 부부와는 거의 1년 만에 만났다. 봐야지 봐야지 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하필, 싶었다가 어차피 언젠가는 겪을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동안 운 좋게 잘 피해왔던 거라고. 이미 어린이집에도, 주변에도 확진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집에 와서 아이와 차돌박이를 구워 먹고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전날 시켜 먹었던 전 모둠 박스가 훌륭한 캔버스가 됐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림 그리기에만 몰입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때만 해도 아이가 너무 멀쩡해서 어쩌면 코로나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순진한 기대를 했다.
아빠가 집에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아이는 저녁부터 갑자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관건은 밤이었다. 아이는 밤새 열이 38도 중반까지 올랐다 해열제를 먹으면 떨어졌다를 반복했다. 마른기침도 계속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남편, 아이와 소아과를 찾았다.
아이보다 먼저 신속항원검사를 하는데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따끔했다. 드디어 아이 차례. 아이는 겁에 잔뜩 질렸다. 치과 갔을 때처럼 온몸에 힘을 주고 울부짖으며 극렬하게 저항했다. 어른 셋이 아이를 붙잡고 겨우 검사를 끝냈는데 간호사가 키트를 떨어뜨렸다. 어떻게 한 검사인데,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아이는 도망가면서 울고 불고 간호사는 죄송하다 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간호사는 이미 멘탈이 산산이 부서진 것 같았다. 하긴 하루에 확진자만 수십 만 명이 나오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들까. 다시 아이를 어르고 달래 한 번 더 검사를 했다. 나와 남편은 음성, 아이는 예상대로 양성이 나왔다. 아이 다음으로 검사를 했던, 아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아이들도 줄줄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올 것이 왔다.
사실 아이가 양성 판정을 받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어린이집에 미칠 영향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갑자기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얼마나 막막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단체 카톡방에 상황을 전했다.
아이는 월요일 아침에 등원해서 놀이터 나들이를 갔다가 점심을 먹지 않고 하원했다. 마스크를 벗지는 않았지만 함께 오전 시간을 보냈던 같은 층 아이들에게 이른 하원 조치가 내려졌다. 지침이 바뀐 덕분에 어린이집 일시 폐쇄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급히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누군가, 아이를 바로 데리러 갈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누군가의 얼굴이 그려졌다.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빨리 오지 않는 걸까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도. 그 누군가는 언제의 나와 남편 그리고 날날이였다.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지만 그럼에도 죄송하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코로나에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사람은 없다. 코로나에 걸리려 노력하는 사람도 없다. 지금 내가 너무 미안해하면 이후에 코로나에 걸리게 될 누군가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코로나가 걸린 것이 미안한 문화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면 했다.
다행히 지금 다니고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이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미안해 말라고, 아이가 너무 아프거나 힘들지 않게 이 시기를 넘겼으면 좋겠다고, 엄마 아빠도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됐다는 생각, 우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게 됐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같은 방 아마(공동육아에서 아빠+엄마를 합쳐서 부르는 말)에게 따로 카톡이 왔다.
“땡땡(어린이집에서 쓰는 내 별명), 민폐라고 생각하지 말고 요양에 힘쓰세요.”
열이 오르내리기는 해도 집에서 잘 노는 7살 아이를 보면서 처음 아이가 열이 39도까지 올랐던 날이 떠올랐다. 오한으로 바들바들 떠는 작은 아이를 붙들고 어찌할 바를 몰라 엉엉 울었던 날. 수족구, 폐렴, 독감, 뇌수막염까지. 아이들이 걸릴 수 있는 전염병이 그렇게 많은 줄 아이를 낳기 전에는 꿈에도 몰랐다(그때는 코로나라는 역병이 창궐하리라는 것도 전혀 몰랐다).
육아를 하면서 아이가 아픈 순간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다. 그때마다 아이 때문에 민폐 끼치는 사람이 될까 전전긍긍했다. 특히 일터에서 그랬다. 동료에게 급하게 업무를 부탁하거나 예정된 일정을 미루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이마에 ‘민폐' 두 글자가 새겨진 것 같았다. 엄마로서도, 동료로서도 1인분의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민폐를 끼치기 싫은 마음은 사실 이타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안한 사람의 자리에 내가 놓이는 것이 싫었다. 책 잡히고 싶지 않았고, 싫은 소리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완벽한 사람,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하고 취약한 존재인 아이를 키우면서 민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했다. 사회에서는 엄마가 아이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엄마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점점 알게 됐다. 가깝게는 가족부터 비슷한 시기 아이를 낳고 키운 지인, 함께 일한 동료, 공동육아를 함께 하고 있는 아마과 교사, 소아과 의사와 간호사,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이웃, 자주 가는 편의점 점원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도움을 받으며 아이도 나도 자랐다.
여전히 나는 민폐를 끼치는 것이 두렵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이 있다. 미안한 마음보다는 고마운 마음을 가지려 한다는 것.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돌려주려 노력한다는 것.
얼마 전, 같은 방 친구네 가족이 코로나에 확진됐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남편이) 만든 갈비찜을 친구네 집 앞에 배달했다. 아이는 친구를 위해 그림 선물을 준비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베란다에 나와서 손을 흔드는 친구와 인사를 나누는데 마음이 찡했다. 동시에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쓰기 전, 띵동 하고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 보니 부대찌개와 짜장밥 소스, 토마토 조림이 배달돼 있었다. 같은 방 아마가 놓고간 선물이었다. 식탁에는 어제 또 다른 아마에게 선물 받은 노란색 꽃이 올라와 있다.
오늘도 어린이집에는 또 다른 확진 가정이 나타났다. 카톡으로 위로의 메시지와 선물을 보냈다.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 취약해질 수 있는 존재이며 서로 연결돼 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코로나 덕분에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