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퇴사14]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일주일 넘게 아이는 열이 오르다 내리다를 반복했다. 초여름, 에어컨 바람 때문인지 열감기가 유행이었고 해열제를 먹으면 금세 괜찮아지길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이는 열이 오를 때를 제외하고는 잘 먹고 잘 놀았다.
저녁 회식이 어려운 나 때문에 우리 팀 회식은 주로 오후 시간에 진행됐다. 한두 시간 정도 맛있는 음식 먹으며 팀 회의를 하고 아이템을 고민했다. 수제 버거에 맥주를 곁들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열이 나서 계속 축 처져 있는데 엄마를 많이 찾는단다. 선생님 목소리를 들으니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서둘러 택시를 잡아탔다. 차는 막히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애가 아픈데 나는 맥주나 마시고 있었다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동네 병원에 들렀고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음 날, (또) 급히 휴가를 내고 아이를 데리고 집에 있었다. 열이 오르자 몹시 괴로워하던 아이는 먹은 걸 다 게워냈다. 태어나서 구토를 한 건 처음이었다. 회사에 있는 남편을 불러 응급실에 갔다. 혼자 응급실에 갈 자신이 없었다. 응급실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는 내 옷과 차 시트가 다 젖을 정도로 속을 비워냈다.
고열과 구토. 병원에서는 뇌수막염이 의심된다며 검사를 해보겠냐고 물었다. 오후 3시쯤 병원에 도착해 입원실에 들어간 시간은 다음 날 새벽 3시.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이라고 했다. 감기와 비슷한 거라고. 사흘간 입원했고, 아이는 예상보다 빨리 퇴원했다.
병실에서의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자 어린이집 방학이 시작됐다. 예정된 휴가였지만 갑작스러운 입원이 겹쳐 장기간 휴가가 됐다. 회사 업무에는 (또) 차질이 생겼다.
그해 나는 회사에서 공정보도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었다. 그즈음 선후배 동료로 구성된 공정보도위원들과 6월 지방선거 보도에 대한 편집위원회를 공들여 준비했다. 결국 나는 그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직장맘으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일이 힘들 때가 아니었다. 내 의지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내가 무책임하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을 때. 그런 순간을 견디기 어려웠다.
아이의 입원과 방학 이후, 나는 오랫동안 아팠다. 한 달 넘게 어지럼증과 장염이 반복됐다. 계속 몸이 고꾸라졌고 탈 났다. 피검사도 해보고 초음파 검사도 해봤지만 몸에는 이상이 없었다. 의사는 일단 쉬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하라고.
하지만 일하고 육아하는 것만으로도 몸에는 무리가 왔다. 3년 정도 쓴 아이폰 배터리처럼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상태. 문제는 회사를 다니면서는 저전력 모드를 설정할 수도 100% 충전할 수도 없다는 것.
그렇게 힘든데도 마더티브를 놓을 수는 없었다. <꼬마버스 타요>를 주제로 두 번째 영상을 촬영했다. 영상 편집을 맡은 동기의 딸은 그해 여름 두 번이나 수족구 판정을 받았고 농가진까지 걸렸다. 또 다른 멤버의 아이들도 후두염, 장염 등 여름 전염병에 걸렸다. ‘이래도? 이래도?’ 온 세상이 우리를 방해하는 것 같았다.
회사와 육아 그리고 마더티브라는 딴짓까지. 시간도 체력도 한계가 왔다. 더 이상 모든 걸 쥐고 있을 수 없었다. 한 가지는 포기해야 했다. 퇴사냐, 휴직이냐. 단축근무를 신청할까.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에게 SOS를 보내야 할까. 시터를 알아볼까. 머릿속에서는 매일 전쟁이 일어났다. 가끔씩은 가슴이 터질 듯 불이 났다.
나만 어떻게든 참으면 될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한 걸까.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다. 이 와중에 남편은 매일같이 야근했고 주말에도 출근했다. 정작 그만둬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 같은데. 억울하고 분했다.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생애 가장 힘겨웠던 여름이었다.
“여름이면 시간은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그런 날들을 보내고 나면 한 살 한 살 들어차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그저 닳아 없어지기만 할 것 같았다.” <경애의 마음> p.597(e북)
하루하루 결정을 유예하고 있던 어느 날. 내가 종사하고 있는 미디어 업계 동향을 알 수 있는 한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됐다. 그곳에서 나는 갈라파고스 섬에 사는 생명체가 된 것 같았다. 자신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세상은 정말 많이 변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다양한 혁신이 일어나고 있었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와 무관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 나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나도 저렇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직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저들처럼 밤낮없이 나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하는 일을, 지금 나는 할 수가 없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다. 내게는 엄마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니까. 이 또한 지금밖에 못하는 일이니까.
어쩌면 지금 회사에서 어떻게든 버티는 게 일과 육아를 둘 다 잡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아이 때문에 늘 변수도 많고 자신을 올인할 수도 없는 직원을 받아줄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업계 동향이고 갈라파고스고 나발이고. 멸종하기 직전까지 어떻게든 버티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말했다. 회사 밖으로 나가는 순간 너는 쓸모없는 사람이 될 거라고. 아이 말고는 아무도 너를 찾지 않을 거라고. 나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다. 그런데 두려움이 커질수록 가슴 한구석에서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내가 새로운 전형을 만들 수는 없을까. 내가 새로운 롤모델이 될 수는 없을까.
그래야 나중에 후배들에게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엄마도 회사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회사에 너무 목매지 말라고, 겁먹지 말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라고.
그렇게 발자국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새로운 길이 되지 않을까. 내가 발자국을 하나 찍을 수 있다면.
“그건 오늘만 견디는 데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수는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고 오늘이 있으면 당연히 내일이 있고 내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해결이 되든 되지 않든 마음을 쓰다가 하루를 닫는 사람이고 싶었다.” <경애의 마음> p.846-847(e북)
더 이상 오늘만 견디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내일을 생각하며 살고 싶었다. 이제는 정말로 결정을 내릴 때가 됐다.
[엄마의 퇴사 15]
[엄마의 퇴사] 기자 9년차, 엄마 3년차. 직장맘으로 사는 일상은 매일이 장애물 넘기다. 죽도록 노력하는데 회사에도 아이에게도 늘 미안하기만 하다. 엄마에게 일과 육아 중 하나만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시대. 일도 육아도 적당히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었던 어느 엄마의 퇴사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