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9일을 추억하며)
방콕녀 = 집에 콕 박혀있는 여자사람이란 뜻으로 움직이길 싫어한다는 말과 비슷하다. 물론 방콕하면서도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러니 산? 어쩌다 (마지못해) 친구들과 했던 등산이 전부다. 그것도 오래전에. 친구들과 제주여행을 가기로 했더니 친구들 중 하나가 나더러 그런다.
“한라산 갈래?”
난… 그러겠다고 했다. 사실 마음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교과서에 나오는 대한민국 최고봉 한라산, 한 번쯤은 올라야 하지 않겠나’.
제주로 출발하기 전에 이 바보 같은 방콕녀는 등산화를 가져가야 하나를 고민했다. 아니, 동네 뒷산도 아니고 무려 한라산인데 등산화를 안 신고 오를 생각을 하다니. 이 멍충이는 부피가 큰 등산화를 빼서 다른 뭔가를 캐리어에 채워 넣으려는 심산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챙겨 넣었는데 이 등산화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래전에 친구들과 가끔 등산을 갈 때 산 걸로 등산양말을 신으면 꽉 끼는, 그러니까 너무 꽉 맞는 등산화였다. 등산화는 좀 넉넉한 사이즈로 사야하는데 그걸 몰랐던거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근사한 놈으로다가 한 켤레를 구입할 순 없잖은가. 등산화를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해라고, 이러고 있는 방콕녀다.
늦게 가면 입산이 통제된다는 말을 듣고 새벽같이 일어난 한라산을 오르는 당일, 친구와 나는 야무지게 3분 카레를 데워 밥을 비벼 먹었다. 펜션 사장님께서 감사하게도 한라산 입구까지 데려다주신다 하여 아침 7신가? 우리들은 차에 올라탔다.
친구는 '관음사 코스'로 가자 했다. 그쪽이 더 경사지긴 한데 이왕 오르는 거 빡시게 올랐다 여유롭게 내려오자 했다. 나는 여전히 ‘어떻게든 되겠지’였다.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펜션 사장님께 ‘관음사로 가주세요’했다. 사장님은 내비에 ‘관음사’를 찍고 가셨다. 우리 모두는 한라산 입구가 ‘관음사’에 있는 줄 알았다. 이름이 관음사 코스니까.
안개가 자욱한 관음사 앞. 사장님은 우릴 내려주시고 유유히 사라지셨다. 근데 뭔가 이상한 거다. 한라산에 오르려는 사람이 보여야 하는데 우리만 달랑 있는 거 있지.
사람들이 요즘은 한라산에 안 오르나?
주위를 둘러보자니 길이 하나 보인다. 저긴가? 가볼까?
그런데 가도 가도 입구스러운 게 안 보인다. 여기 맞냐? 이상하지 않냐?
지도 앱을 켜고 보니 ‘입구’라는 말은 하나도 보이질 않고 그저 ‘관음사’만 보인다. 여기가 아닌 게 벼. 우리는 한참을 가던 길에서 U턴을 했다. 적어도 9시 전엔 오르기 시작해야 한다는 데 이러다 못 가는 거 아냐?
우리는 관음사로 들어갔다. 절 안에 입구가 있을까?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도 하나 없다. 한라산을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까먹고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안개 낀 관음사는 정말 멋졌다. 나중에 다시 올 것을 다짐했지만 아직도 못 가고 있다. 새벽에 가야 멋있을 것 같은데 그 새벽에 여길 간다는 게 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말이다.
다행히 한 건물에 사람이 있었다. 친구는 냅다 뛰어 그분에게 가서 물어보고 왔다.
“여기가 아니래. 관음사 야영장 쪽으로 가야 한다네.”
아… 거긴 또 어딘가. 펜션 사장님의 차는 이미 떠났고, 여기서 거기까지 어떻게 가야 한단 말인가? 지도 앱을 켜고 살펴보니 약 1.2km 정도만 걸어가면 됐다. 다행이다, 어서 가자.
1.2km를 걷는 길은 즐거웠다. 아직은 힘이 넘칠 때라 이런저런 농담 따먹기를 하며 곧 오를 한라산을 기대하며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