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다.
엉망징창이다. 지갑을 잃어버렸다. 태어나 지금까지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신분증도 운전면허증도. 심지어 카드들도 분실 신청을 해봤던 적이 없다. 여행지에서 조차 잃어버리지 않던 지갑을 잃어버리다니! 스스로 느끼기에 최근 나의 정신 상태는 '최악'이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은행을 갈 겸 나섰던 산책길에서의 분실이라니. 다행히 현금은 가방에 잘 넣어놨기에 큰 피해는 막았지만 너무 놀랐는지 새벽에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겨우 출근한 회사에서는 정신없이 일을 했지만 실수를 했다. 놓치면 안 되는 부분을 놓쳐 스스로에게도 너무 놀라고 전화가 울리면 실수에 대한 설명을 하느라 긴장 상태이다. 퇴근하며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던 중 갑자기 뇌가 멈추는 느낌과 함께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잡는 바람에 몸이 날아갔다. 자전거를 타고 이렇게 크게 사고가 났던 적은 처음이다. 사고가 나며 블루투스 이어폰을 잃어버렸다.
정말 엉망진창이다. 최근 나사가 하나 빠져있는 정신에 자책하고, 한숨을 쉴 뿐이다. 정리되지 않은 무수한 생각들, 신경 쓰이는 것들, 해야 할 일들.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지만 가끔 종종 뇌가 멈춰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정말 왜 이러지? 이젠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요새 왜 이러지?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기는 거지? 삼재가 끝났다고 하지 않았나? 뭐가 문제가 있나? 한참을 치고 오르는 짜증에 훌쩍거리며 집을 향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잃어버렸다고, 안 쓰는 이어폰 아직도 있냐고 동생에게 물어보다가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가 났고, 회사에서도 실수하고, 지갑도 잃어버리고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다고 짜증이 난다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울먹이며 하소연했다.
'다 그런 때가 있다고 했다.'
누구나 살면서 지갑 한 번 잃어버릴 수 있는 거라고, 회사에서 누가 실수를 한 번도 안 하냐고,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질 수 있고, 다칠 수 있다고. 그것들이 너무 한꺼번에 일어나서 짜증 나고, 나만 멈춰있는 것 같고,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런 때가 있는 거라고 쉬면 된다고 했다.
그렇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고, 나도 겪어왔던 일이지만 최근 계속 연속되면서 느끼는 우울함.
친구들에게도 내 힘듦을 너무 토해내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다. 본인들도 피곤할 텐데 이렇게 위로해주고 있는 그들을 보니 고맙고 미안하다. 친한 회사 동료도 최근 내 상태가 너무 걱정이 되었는지 미처 챙기지 못하는 일들을 옆에서 계속 같이 챙겨주고 있다. 바보같이 코끝이 찡해온다.
2019년은 어느새 10월이 다가오고 있다. 지인들은 늘 무언가를 바쁘게 끊임없이 한다고 하지만 나는 도대체 올해 뭘 했는지 모르겠다. 덧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 정신줄을 잡아야 하는데.. 정신줄을 잡고 있어도 눈 깜짝할 사이에 2019년이 끝나 있을 텐데. 걱정이 앞선다.
추석이 지나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런지 대청소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동생에게 10월 중에 하루를 잡아 정말 대청소를 하자고 했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고,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버리며 좀 정리를 하다 보면 내 잡다한 생각이 날아갈까 싶었지만 사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없다. 번아웃 증후군. 에너지가 방전된 것 같다. 무기력해지고 있다.
훌쩍거리면서 삐걱대는 자전거를 타며 집을 갔다.
삐걱거리는 자전거 소리가 지금 내 인생 같아서 퍽 슬펐다. 어제 다친 상처들이 아프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멍하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뿐.
이번 주말에는 낮에 광합성을 좀 해야겠다. 최대한 많이. 햇빛을 맞으며 멍 때려야지. 다시 마음에 온기를 채워 넣어야지. 다시 채워 넣어 주변에 온기를 나눠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