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도 줄고 다들 잘 배워서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해 문제다. 이민자라도 데려와서 메꾸자”
이민 정책을 두고 저런 말부터 대뜸 하는 나라라면 어떤가? 같이 잘살아 보자는 마음은 안 보이고, 너를 데려다 써먹겠다는 심보만 보인다. 저런 곳에서 이민자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한국이 이민자들을 받자며 하는 말이 저런 식이다.
반면 캐나다는 이민자를 대환영하고 적극적으로 돕는 나라다. 이미 인구의 1/4이 이민자이다.
캐나다의 땅덩이는 러시아 다음으로 커서 대한민국의 약 100배쯤 된다. 하지만 인구수는 아직 4,000만 명으로 한국보다 적다. 저출산 고령화 국가이고, 석유 등 자원이 풍부한 부자 선진국이지만 노동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적극적인 이민자 유치 정책을 펴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냥 부품처럼 써먹겠다는 심보가 아니라 와서 좋은 거 누리며 같이 잘살아 보자, 돕겠다는 식이다.
캐나다는 이민자의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과 지원이 세계에서 아주 잘 갖춰진 나라 중 하나다.
이민 후 지난 5년간 피부에 와닿게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단체는 ‘이민자센터’다. 주로 이민자를 돕는 비영리단체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지역 대학, YMCA, 각종 문화시설들이 주는 여러 이민자 혜택도 대부분 이 단체 프로그램과 연계되어 있다.
각 주(province)마다 이런 센터의 이름은 다 다르다. PEI(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주의 이민자센터는 IRSA(Immigrant & Refugee Services Association)이다. 이민 간 바로 다음 날 방문해서 회원 등록을 했다.
그랬더니 일주일에도 몇 통씩 이메일로 ‘이거 도와줄게, 저거 도와줄게’를 날린다. 부담스러웠다. 너무 친절하니 사기 단체는 아닐지도 걱정됐다.(당연히 아님) ‘오우 왜 이래, 난 도움받는 거에 익숙치가 않다고...’
하지만 난 뭘 잘 모르는 이방인, 캐나다살이 초보, 도움받는 걸 꺼려서는 안 되는 처지다. 누군가 날 도와주는 인생? 이런 기대 없이 살아온 지 4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다.
‘그래, 어디 한번 맘껏 도와보시지-’
거기서 부가세 환급통장과 의료 카드도 만들고 패밀리 닥터를 기다리는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무료 영어 수업도 기간 제한 없이 받을 수 있어서 지금껏 잘 이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가 지역 대학과 연계해서 이민자의 정착을 위한 무료 영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저녁에만 수업을 들을 수도 있고,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학교 다니듯이 공부할 수도 있다. 코로나 기간에는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다.
이 외에도 취업을 돕는 프로그램과 취미생활을 돕는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PEI 주는 조용하고 평화롭게 지내려는 은퇴자 이민이 많은 곳이다. 그렇다 보니 이민자센터 프로그램도 이에 맞춰서 취업보다는 취미반 활동이 대부분이다. 대도시는 취업 프로그램을 더 활발하게 운영한다.
이민 직후 영어나 배우며 한동안 쉴 생각이던 나에겐 취미반 많은 곳이 딱 좋았다. 무료로 각종 댄스, 그림, 요가, 줌바, 노래, 산책, 캠핑, 수영, 낚시 등등 다양한 활동을 실컷 했다. 오전에는 세시 간쯤 영어반 공부를 하고 좀 쉬다가 오후에는 취미반 두세 곳쯤 다니다 보면 하루가 그냥 갔다. 쉬고 놀기에도 바쁘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더구나 이 모든 게 공짜다, 공짜! 아직 머리는 벗겨지지 않았다.
이민자센터의 취미반은 아마추어 활동이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전문적인 활동도 한다. 나는 이민자센터의 전문 미술팀에 들어가 지역에 벽화 그리는 봉사를 다녔다. 그 덕에 무려 지역 전시회에 내 그림을 거는 기회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민자센터에서는 국가나 지역적 행사에 대해서도 알림을 주고 안내를 한다. 4월 세금신고 달에는 캐나다 세금 제도 및 신고방법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코로나 기간에는 혼란에 빠지지 않게 정신건강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당시 코로나 환자를 죄인 취급하는 듯한 한국 뉴스나 댓글들과는 대조적으로, ‘멘탈 헬스’를 강조하며 모두 보듬는 캐나다 분위기에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등 명절에는 캐나다 가정에 초대해서 식사를 같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다. PEI 주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이민자센터에 모여서 무료 저녁을 먹으며 친목을 다지는 행사도 있었다.
이민자가 이렇게 도움받으며 살 수 있는 나라라니, 그저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이민자끼리 친구가 되는 경우도 괜찮았지만, 무엇보다 자원봉사를 하는 캐나다인 친구들을 만난 게 큰 도움이 됐다.
지역을 잘 알면서 올바른 생각을 가진 현지인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는 기회다. 이것저것 모르는 일이 생길 때마다 현지인 봉사자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새 나라, 새 동네에서 새 언어 쓰며 잔뜩 쫄아 시작하는 이민자에겐 참으로 든든한 빽이지 않은가!
이런 프로그램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 이민자도 꽤 많다. 영어도 마스터하고 취업도 이미 한 상태라서 이런 센터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이런 정보를 잘 알아보지 않아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반면 내 경우처럼 여기서 정보도 얻고, 친구도 사귀고, 내 돈 안 들이고 공부하고 취미생활까지 실컷 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컷 돕겠다는데 받아보자. 적극 추천이다. 아직 머리는 벗겨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