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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Jul 19. 2024

육아휴직 10주 차 :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아빠 육아 : 240401-240407



 “넘어지고 다치면서 크는 거야”



 생각해 보면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왜 쿨한 척을 했을까. 나는 쿨 몽둥이로 맞고 정신 차려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안심해도 되는 때라는 것이 있을까. 육아인의 운명으로 돌입한 이상 그럴 겨를은 여생에 없다고 보는 게 속 편하다. 하물며 내 인생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인데 자식은 오죽할까. 소위 MBTI의 J형 성격인 나로선 특히 유의해야 한다. 예상 밖의 상황에서 초연하고,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형국일수록 안도하면 안 된다. 오늘 아기가 다쳤다. 그럼에도 이 다짐을 기억하고 싶은 의지를 담아 울면서 써 내려가 본다.


 그동안 넘어진 적이 없진 않았다. 아이고 소리를 내며 아기에게 폴짝 뛰어갈 만큼 심각한 케이스도 있었다. 그러면 한동안 자책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고선 며칠이 지나간 후 잊어버리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망할 놈의 망각의 동물로 태어난 혜택이었다. 집 안의 위험요소들을 바로 치우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런 걸 종합해 보면 역시 모든 일이 벌어질 때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연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절대 우연일 수 없다. ‘우연하게’와 ‘우연치 않게’라는 전혀 다른 표현이지만 자세히 보면 의미가 같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사고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신촌 세브란스를 내가 가게 될 줄이야. 정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구강안면외과에서 소아치과로, 인턴과 레지던트 선생님들을 차례로 만나며 경위를 설명했다. 지칠 겨를이 없었다. 파업으로 인해 수면마취가 힘들다는 설명을 들었다. 좌절할 여유가 없었다. 낙상 방지를 위해 진료실 베드에 아기를 묶는 것에 동의하는 서류에 사인을 했다. 작디작은 아기의 입술에 부분마취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장면을 보았다. 발버둥 치는 아이를 보고 담당의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유튜브로 급하게 ‘바나나 차차’를 틀었고, ‘아빠 여기 옆에 있어’를 외쳐댔다.


 봉합 치료를 마친 아이를 안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진을 뺀 아이는 이내 품에서 잠들었다. 미안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온갖 후회가 몰려왔다. 좀 더 빨리 달려갔더라면, 아니 애초에 눈을 떼지 말았더라면, 차라리 부엌일을 조금 나중에 했더라면, 아예 일찍 준비해서 나갔더라면, 오히려 아침에 더 재웠더라면, 그것도 아니면 내가 전날 빨리 잤더라면, 수많은 가정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내 머릿속을 옥죄어 왔다. 수없이 나를 꾸짖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택시 뒷자리에 앉았다. 흥분을 찬찬히 가라앉혀 보았다. ‘의도한 대로 육아가 되지 않는다’라는 마음속 문장을 다시 살펴보았다. 잘못되었다. 전제 조건이 틀렸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살핌은 과업이 될 수 없다. 아이와 나라는 독립된 인격체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행동일 뿐이다. 다만 거대한 감정을 수반하기에 늘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무서운 바이어스를 사랑이라고 부른다. 앞으로 후회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쉬움이 없는 날을 영위할 수 있을까.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복잡한 머릿속과는 반대로 해맑게 피어나는 벚꽃들이 야속했다.





240401(월) : 아침에 아빠와 홍제천 산책을 하고 등원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첫 외출수업을 했다. 오후에는 셔틀버스를 타고 신촌에 가서 버스킹을 구경했다. 그리고 퇴근하는 엄마를 마중했다.

240402(화) : 아침에 침대 모서리에 아랫입술이 부딪혔다. 오지현소아과를 갔다가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갔다. 입술을 네 바늘이나 봉합했다.

240403(수) : 아빠와 홍제천 산책을 하고 등원했다. 오후에는 아빠와 연희동 데이트를 즐겼다. 데스툴에서 팝업전시를 보고 해브어밀에서 빵을 사 왔다.

240404(목) : 등원 전에는 아빠와 도서관, 하원 후에는 여의도에 가서 벚꽃을 즐겼다. IFC에서 엄마를 만나서 애플 스토어 구경하고 샤브샤브를 먹었다.

240405(금) : 어린이집에 다녀온 후 전주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났다. 같이 홍제천 산책을 했다.

240406(토) : 엄마아빠와 투표를 하고 아침 산책을 했다. 오후에는 홍제천 폭포마당 축제에 갔다. 홍연길 가게들을 거닐었다. (보틀라운지, 플라스틱팜, 또또, 시네마치킨, 바연희)

240407(일) : 아침에 홍제천 산책을 하고 오후에는 불광천으로 가서 엄마아빠와 벚꽃 구경을 했다.





앞으로는 절대 눈을 떼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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