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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Sep 25. 2024

육아휴직 30주 차 :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비결

아빠 육아 : 240819-240825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있을까. 있나보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친절하게 천기를 누설해 준다. 고도의 마케팅인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나는 특별히 무료로 알려주겠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좋은 걸 먹으면 된다. 단순히 비싼 음식을 말하는 건 아니다. 먹을 사람을 향한 연정이 들어간 양식(糧食)이어야 한다. 은근히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음식물 섭취는 무척이나 직접적인 행위다. 시청각 자극처럼 뇌에 필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일상적인 행동이라지만, 먹을 것을 먹는데엔 인색하지 않은 게 좋다.


 사실 그렇게 생각한 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인스턴트 음식과 술을 사랑하는 한 명의 아저씨였다(지금도 그 사랑엔 변함 없기에 그 것들을 늘 그리워한다). 싸고 빠른 자극만 찾았다. 도파민에도 가성비가 필요했었나 보다. 가장 쉽게 돈을 아낄 수 있는 게 식생활이었다. 다행히도 아이와 함께 생활을 하며 그 관념이 바뀔 수 있었다. 원플러스 원 행사 우유가 냉장고에서 사라졌다. 동물복지 계란의 개념을 배웠다. 다르긴 달랐다. 가장 드라마틱한 건 야채였다. 신선하고 건강한 채소는 손질할 때부터 기운이 달랐다. 에너지가 느껴졌다. 감사함을 담아 몸에 넣었다.


 이 생각들은 나날이 발전해서 급기야 나를 ‘봉금의 뜰’이라는 곳까지 다다르게 이르렀다. 동네 맛집 사장님이 쉬는 날마다 어떤 밭에 간다고 들었는데, 그 뒷모습이 무척 즐거워 보였다. 궁금하던 찰나에 그곳에서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양평에서 농부와 셰프가 작물을 기르는 곳, 땅에도 몸에도 건강한 먹거리를 연구하며 연대하는 현장이라고 했다. 안 갈 수가 없다. 나는 아이와 어린이집을 째기로 결정했다.


 밭을 구경하고, 옆의 마을회관에서 새참을 나누어 먹으며 북토크를 했다. 나는 아이와 구석에서 옥수수를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긴 시간 동안 소란을 참아준 딸에게 고마웠다. 수장이신 김현숙 농부님의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기억해 의존, 각색하여 써보면 이런 내용이었다.

Q. 친환경 농업의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A. 친환경 농업만 해서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동안 자연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담아서 농사를 지을 뿐이에요.


 비단 농사뿐일까. 세상에서 진짜 좋은 것들은 힘들고 어렵게 했을 때 얻어진다는 걸 체감하는 요즘이다. 쉽게 할 수 있는 게 많아진 시대라 더 값진 행동이 되어버렸다. 찾는 방법 역시 간단하다. 농부님 말에 답이 있다. 그냥 하면 된다. 힘든 것은 없다. 당연한 것만 있을 뿐이다. 이제는 조금 어렵더라도 좋은 걸 찾아 먹고자 한다. 아이를 아끼며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오래오래 잘 살고 싶다. 살면서 아이와 한끼라도 더 같이 먹고 싶다. 식탁에 둘러앉아 옳은 일을 당연하게 하고 있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누고 싶다.





240819(월) : 부쩍 말이 늘었다. 하원하고 집에 와서 아빠와 수다를 떨었다.

240820(화) : 어린이집을 쨌다. 미리 계획한 양평의 '봉금의 뜰'을 가기 위해서다. 경의중앙선을 타려 했지만 준비가 늦어져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갔다. 졸린데 차를 타니 오열을 할 수밖에. 아빠는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정작 행사에 가서는 여러 사람의 말도 잘 듣고(조금 떠들었지만) 박수도 열심히 쳤다.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호박이 실제로 열리는 것도 보고 깻잎도 맛보았다. 이게 밭이구나.

240821(수) :  오늘은 프로펠러 모자를 쓰고 갔다. 아침에 조금 울었다. 하원을 하고선 우산을 질질 끌고 갔다. 땅에 끌리는 소리가 좋았다. 아빠가 말리다가 포기했다.

240822(목) : 오늘은 울지 않고 등원했다. 하원을 하고선 집에서 에어컨 틀고 시원하게 지냈다. 시원한 옷을 입고 아빠와 침대에 누워 책을 잔뜩 읽고 잤다.

240823(금) : 하원을 하고 아빠와 해달별 물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놀았다. 어린이집 2세 반 언니들을 잔뜩 만났다. 간식도 얻어먹었다. 차를 가지고 온 엄마와 합류하여 집으로 왔다.

240824(토) : 아빠가 피곤해 보인다. 아마 어제 술을 많이 마셨나 보다. 엄마랑 '육종센'에 가서 선율이랑 놀고 왔다. 돌아오는 길에 미크커피에 갔다. 점심에는 아빠와 낮잠을 잤다. 저녁에는 아빠 회사친구가 놀러 왔다. 옷도 선물로 받았다. 아빠가 모처럼 즐거워 보였다.

240825(일) : 피곤한 엄마를 아침에 재우고 아빠와 아침산책을 갔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다 보니 엄마가 왔다. 밤에는 신연중으로 운동을 갔다. 신나게 놀다가 집정리를 마친 엄마가 와서 더 같이 놀고 집에 갔다. 아니 근데 그곳에 우산을 놓고 왔다!







익숙한 야채에겐 반가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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