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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si Apr 22. 2016

사랑하는 아빠

우리는 살아가고 있어

사랑하는 아빠, 이제는 태원이랑 아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나 봐. 서로의 감정이 젖어, 쉽게 찢어질까 했던 마음이 이제는 어느 정도 말라버린 건가 싶네. 역시나 결국엔 살아가고 있어.
 태원이가 물어,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거냐고. 나는 아직 대답하지 못했어. 우리의 이야기가 영화일 수 있는지 고민해본 적이 없거든. 이제야 겨우 마른 마음이 또 젖을까 봐.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서로의 작은 조각들을 맞춰봤어. 아주 오랜만에 아빠의 단어들을 우리 마음 위에. 우리는 작은 이야기들을 서로의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네. 대화는 그리 길지 못했지만, 태원이와 나는 서로의 말보다 그사이에 침묵의 의미를 더 깊게 나누었어. (침묵과 짧은 대화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가 아니라 습한 감정을 원치 않아서인 거 알지?) 음절과 음절 사이에 잠시 머뭇거리던 태원이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다짐했던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아. '스스로에 대한 연민은 그만하자.'라고 다짐했거든. 바로 오늘. 무의미하게 천장을 보며 내 앞에서 눈물을 삼키는. 그리고 대화를 이어가는 그 모습에 마음이 찢어져. 그리고 생각해. 나는 불쌍하다. 나는 불쌍하다.
  아빠의 병을 털어내기 위해 무리해서 이사 온 이곳은 우리에게 너무 넓어. 할머니와 태원이 그리고 내가 주말마다 내려와 공간을 채우지만. 이 공간은 너무. 넓어. 저번 주말에는 혼자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밥을 먹다가 가볍게 눈을 감았어. 이 커다란 공간 안에 울려 퍼지는 음이 고작 내 숟가락질뿐이어서 말라 비틀어진 반찬 위에 저릿저릿한 감정을 올려놓았어.

 사랑하는 아빠. 내가 더욱 선해지길 바라고 하늘과 바람과 별에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아버지, 당신의 모습을 내게서 찾기 원해서야. 아빠가 그랬으니까. 내가 그렇게 살기 원해. 힘을 줘.

우리의 침묵은
그 해, 푸른 나뭇잎을 가져와요
날씨가 좋다며
살며시 눈을 감으시던
그 음성을 가져와요.
코 끝에
그 날의 향기가 날 듯하면
나도 눈을 감습니다.
나도 눈을 감으니
낮게 이야기해줘요.
오늘도 사랑합니다

2014년 4월 26일 태원이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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