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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훈희 Jul 26. 2021

치킨을 사오시는 아버지의 마음

치킨 - 어른이 되면 보이는 것들 중

늦은 밤, 아빠가 치킨을 사오셨다.


역시나 술을 거나하게 드신 날이었다.     

아빠의 손에 들려진 치킨의 냄새는

늦은 시간 땀과 술로 범벅된 구두 속의

발냄새를 잊게 할 만큼 고소했다.     


엄마는 밤 열두시에 들어오는 것도 모자라서

치킨까지 사와서 애들을 아주 돼지로 만들어버릴 작정이냐며 소리치셨다.

     

아빠는 만취 상태로 고개를 푹 떨군 채

양말을 만지작 거리시며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계셨고

형과 나는 자다 깨서는 경쟁 하듯이 허겁지겁 치킨을 먹었다.     


그 시절 엄마의 우려와는 약간 다르게 아주 돼지까지는 아니고

시간이 갈 수록 조금 과한 돼지 정도가 되어갔지만     

나는 아빠가 회사에서 회식을 하는 날이면

오늘도 치킨이 오겠거니 생각하며

졸린 눈을 비비며 밤 열두시까지 기다렸었다.     


나는 아빠의 치킨을 매번 기다렸지만

아빠는 매번 치킨을 드시지 않으셨다.     

아빠는 어린시절 시골 집에서 닭을 잡는 모습을 본

그날 이후부터 닭을 못 먹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빠는 왜 꼭 늦은 시간에 드시지도 못하는 치킨을 사와서는

매번 엄마한테 혼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 좋은 치킨을 일찍 사서 일찍 집으로 오면

엄마한테 혼나지도 않고 나도 마음 편하게 먹을텐데

그 부분이 항상 아쉬웠다.     


.     


나도 아버지가 되고 두 아들이 자라면서

회사에서 점차 야근과 회식이 점차 많아졌다.

     

늦은 밤 조용히 집에 들어가서

이미 기다리다가 지쳐서 잠들어버린

두 아들과 아내의 얼굴을 살짝 보고

이불 속으로 살짝 들어가서 눕는다.     


집에 늦게 오는 날이 많아 질수록

이미 잠들어버린 가족들이 '나'를 잊을까봐 두려웠다.     


그런 마음이 누적되는 날에는

나도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치킨을 튀겨 간다.     


아버지께 배운 것도 아니고,

늦은 치킨은 아이들 건강에 해롭다지만

그 날 만큼은 내 존재를 가족들에게 어필하고 싶다.     


대문 앞에서 치킨 사왔다고

호기롭게 소리도 쳐보고 싶고

날 기다린 아아들의 모습도 무척이나 보고 싶다.     


아버지의 늦은 치킨은

아버지가 잊혀질까봐 두려웠던

'나' 라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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