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트라는 이름의 체스판
르네 라코스테에게 테니스 코트는 격정의 무대가 아니었다. 그곳은 차가운 기하학의 세계였고, 상대 선수는 풀어야 할 데이터의 집합이었다. 그는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확률을 계산하고 각도를 분석했으며, 상대의 습관이라는 변수를 방정식에 대입했다. 그의 경기는 뜨겁지 않았다. 대신, 잘 설계된 기계처럼 정교하고 냉정했다. 사람들은 그의 지치지 않는 체력에 감탄했지만, 정작 그를 움직이는 것은 폐나 심장이 아니었다. 그의 두뇌였다.
1920년대의 코트는 지금과 달랐다. 선수들은 빳빳하게 풀을 먹인 긴팔 셔츠라는 이름의 갑옷을 입고 싸웠다. 귀족 스포츠의 품위라는 불문율은 끈적한 땀과 쓸데없는 열기 속에서 선수의 움직임을 옭아매는 족쇄와도 같았다. 라코스테는 셔츠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는 승리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경멸했다. 그것이 자신의 젖은 셔츠일지라도.
2. 가죽을 욕망하다
1923년 보스턴, 그는 경기 전의 산책길에서 운명과 마주쳤다. 운명은 여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점 쇼윈도 너머에 진열된, 악어가죽으로 만든 여행 가방이었다. 매끄럽고 위협적인 광택, 단단하고 원시적인 패턴. 그 가방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포식자의 피부였고, 승자의 전리품이었으며,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상징이었다. 그는 멈춰 서서 마치 새로운 상대를 분석하듯 그 가방을 뚫어지라 응시했다.
그는 프랑스팀 주장에게 어울리지 않는 농담을 던졌다. “내가 내일 경기에서 이기면, 저 가방을 사주시오.” 그것은 승부사의 객기였고, 아름다운 것을 탐하는 젊은이의 치기였다. 다음 날, 그는 경기에서 졌다. 미국 기자들은 악어가죽 가방을 놓친 젊은 프랑스 선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었다. 그들은 끈질기게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에 빗대어,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악어(The Crocodile)’.
라코스테는 그 별명을 사랑했다. 그는 가방을 얻지 못했지만, 대신 그 가죽을 얻었다. 신문 지면 위에 인쇄된 그 단어는 그의 몸에 보이지 않는 문신처럼 새겨졌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르네 라코스테가 아니었다. 그는 코트 위의 악어였다. 친구가 재미로 그려준, 입을 벌린 초록색 악어 스케치를 받아 든 순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 완성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는 그 그림을 블레이저 재킷 가슴에 부착했다. 이제 피부는 그의 몸 안팎에 모두 존재했다.
3. 셔츠라는 이름의 혁명
혁명은 늘 사소한 불편함에서 시작된다. 1928년 프랑스오픈 결승, 라코스테는 코트의 오랜 침묵을 깨는 이단아로 등장했다. 그는 빳빳한 긴팔 셔츠 대신, 자신이 직접 고안한 짧은 소매의 피케 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관중석은 술렁였다. 저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복장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서막인가.
라코스테에게 그것은 패션이 아니었다. 발명이었다. 그는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으며, 오직 승리라는 목적에만 복무하는 전투복을 창조한 것이다. 그의 움직임은 한결 가벼워졌고, 서브는 더 날카로워졌다. 그는 그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사람들은 그의 실력뿐 아니라, 그의 셔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남자의 비효율에 대한 증오가 그렇게 패션의 역사를 바꾸었다.
4. 두 번째 코트
그의 폐는 그의 정신만큼 강하지 못했다. 호흡기 질환은 이른 나이에 그를 코트 밖으로 내몰았다. 악어는 사냥을 멈춰야 했다. 그러나 그의 두뇌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앙드레 질리에라는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코트 밖에서 두 번째 경기를 시작했다. 사업이라는 이름의 경기였다.
그는 자신의 혁명적인 셔츠에, 자신의 정체성이었던 악어 로고를 박아 세상에 내놓았다. 'L.12.12'. 사람들은 그저 폴로셔츠 한 벌을 산다고 생각했지만, 라코스테가 팔고 있던 것은 자신의 역사와 철학이었다. L은 라코스테, 1은 혁신적인 소재, 2는 저항의 상징이었던 반팔, 그리고 12는 완벽을 향한 열두 번의 집요한 시도. 그는 옷을 파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데이터를, 자신의 발명품을 팔고 있었다.
그는 테니스 라켓을 개량했고, 공을 자동으로 공급하는 기계를 발명했다. 그는 사업가가 되어서도 여전히 코트 위의 분석가였다. 시장은 그가 분석해야 할 새로운 상대였고, 고객의 욕망은 그가 풀어야 할 새로운 데이터였다. 그의 제국은 번창했고, 작은 초록색 악어는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 위로 옮겨 붙어 영원히 죽지 않는 상징이 되었다.
5. 상징의 삶
르네 라코스테는 1996년에 사망했다. 하지만 악어는 죽지 않았다. 오늘날, 파리의 카페에서 서울의 거리에서 사람들은 그의 셔츠를 입는다. 그들 중 대부분은 르네 라코스테라는 이름도, 악어가죽 가방을 건 내기 이야기도 모른다. 그들에게 작은 악어 로고는 그저 브랜드일 뿐, 한 남자의 땀과 집념, 혁명의 증표가 아니다.
한 인간의 치열했던 삶과 승부욕, 비효율에 대한 증오가 고작 2센티미터 남짓한 자수 로고로 압축되어 영생을 얻는 것. 그것은 과연 영광일까, 아니면 가장 완전한 형태의 망각일까. 악어는 아무 말 없이 오늘도 낯선 이의 가슴 위에서 조용히 코트를 내려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