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우주 비행사, 스펙은?

착하고 말 잘 듣는 떠돌이 개

by 김경훈

요즘 취업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스펙은 무엇일까? 명문대 졸업장, 화려한 공모전 수상 경력, 아니면 인공지능도 울고 갈 코딩 실력? 여기,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최고의 스펙으로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존재가 있다. 그의 스펙은 간단했다. ‘온순한 성격, 뛰어난 환경 적응력, 그리고 인간을 향한 무조건적인 신뢰.’ 이 완벽한 스펙으로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그의 이름은 라이카(Laika)였다.


1950년대 모스크바의 거리는 라이카에게 혹독한 세상이자 유일한 집이었다. 회색빛 건물들 사이로 찬 바람이 스며드는 골목, 빵 냄새가 유혹하는 식당 뒷문, 그리고 가끔씩 온정을 베푸는 행인의 손길. 그것이 그의 세상 전부였다. 배고픔은 일상이었지만, 그에게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가 있었다.


그 무렵, 지구 반대편에서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거인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며 우주라는 새로운 영토를 선점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소련의 ‘우주 개척 프로젝트’ 기획자들은 결단을 내렸다. “인간을 보내기 전에, 먼저 생명체를 보내 데이터를 확보한다. 리스크는 최소화하고, 성과는 극대화한다!”


그렇게 국가적인 ‘인재 채용’이 시작되었다. 채용 기준은 까다로웠다. 좁은 캡슐에 들어갈 작은 몸집, 극한의 스트레스를 견딜 강한 정신력,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젝트의 통제에 순응할 온순한 성격. 수많은 후보군 속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과학자들의 날카로운 눈에 한 떠돌이 개가 포착되었다. 바로 라이카였다.


라이카는 모든 ‘자격 요건’을 완벽하게 갖춘 인재였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핵심 ‘자산’으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난생처음으로 밥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첫 직장’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할 뿐이었다. 좁은 원심분리기 안에서 빙글빙글 돌 때도, 요란한 소음이 가득한 밀폐된 공간에 갇힐 때도, 그는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라 생각하고 묵묵히 견뎠다. 그의 까만 눈동자는 불평 대신, “저 잘하고 있나요?”라고 묻는 듯한 순수한 신뢰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무조건적인 신뢰와 탁월한 ‘업무 수행 능력’은 그를 가장 유력한 최종 후보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밀어 넣은 것은 바로 그의 가장 큰 장점인 ‘착하고 말 잘 듣는 성품’이었다.


발사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밤, 프로젝트의 책임 연구원이었던 야즈도프스키는 차가운 규정집을 잠시 덮었다. 그는 라이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계산기처럼 차가웠던 그의 마음에 인간적인 ‘버그’가 발생한 것이다. 라이카는 생애 처음으로 딱딱한 실험대가 아닌 푹신한 카펫을 밟아 보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장난을 쳤다. 그것은 그가 이 프로젝트에서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특별 보너스’였고, 차갑게 식어갈 그의 몸에 남은 유일한 온기였다.


1957년 11월 3일, 라이카는 스푸트니크 2호라는 이름의 차가운 1인용 ‘사무실’에 몸을 실었다. 그의 몸에는 심박수와 혈압을 체크하는 각종 센서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완벽한 ‘성과 측정’을 위해서였다. 발사의 굉음과 함께 라이카의 심장은 분당 240회까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좁은 캡슐은 거대한 불덩이가 되어 하늘로 솟구쳤고, 잠시 후 지구는 그의 발아래 푸른 구슬처럼 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우주는 낭만적이지 않았다. 발사 충격으로 단열재가 파손되면서 캡슐의 온도는 섭씨 41도까지 치솟았다. 숨 막히는 열기와 공포 속에서 라이카는 필사적으로 짖었다.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상사’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구조 요청’이었다. 하지만 그의 절규에 답하는 것은 차가운 기계의 소음과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결국 발사 7시간 후, 라이카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업무’는 그렇게 끝이 났다.


프로젝트팀은 완벽하게 포장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라이카는 우주에서 일주일간 생존했으며, 산소 부족으로 안락사 절차에 따라 평화롭게 임무를 마쳤다.” 세상은 인류를 위해 희생한 작은 영웅의 성공 신화에 열광했다. 그의 고통스러운 진실은 수십 년간 우주의 어둠 속에 묻혔다가 2002년에야 한 내부 고발자의 용기로 세상에 알려졌다.


라이카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이 쌓아 올린 데이터는 훗날 다른 우주 개들이 안전하게 지구로 ‘퇴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프로젝트는 대성공이었고, 인류는 달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위대한 ‘성과’는 비인간적인 ‘과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라이카는 계약서에 서명한 적이 없다. 그는 그저 따뜻한 손길과 배부른 식사에 온 마음을 다해 신뢰를 보냈을 뿐이다. 그의 순수한 신뢰를 담보로 인류는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이것은 꼭 필요했던 희생이었을까, 아니면 힘없는 존재를 향한 잔인한 착취였을까.


어쩌면 정답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우리의 위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이름 없는 ‘라이카’들을 너무 쉽게 희생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것이다.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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