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읽을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지적 자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판타지 소설, 조앤 K. 롤링의 <해리 포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이 책이 사실은 미국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금서(Banned Book)' 신청이 들어온 책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이유는 다양합니다. "마법과 오컬트를 조장한다", "권위에 반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들에게 너무 어둡다".
학부모와 종교 단체들은 도서관에 찾아와 사서에게 요구합니다.
"이 불온한 책을 서가에서 당장 치우세요. 우리 아이들이 볼까 두렵습니다."
이때 도서관 사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1. 학부모의 걱정을 받아들여 책을 치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그 자리에 둔다.
문헌정보학의 대답은 단호하게 2번입니다. 바로 '지적 자유(Intellectual Freedom)' 때문입니다.
1. 사서는 '도덕 선생님'이 아니다
문헌정보학에서 사서의 역할은 '좋은 책'을 골라주는 것이지, '나쁜 책'을 검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사서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 종교적 신념, 혹은 개인적 도덕관을 기준으로 "이 책은 나쁘니까 빼야지"라고 결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보수적인 사서가 있는 도서관에는 진보적인 책이 사라질 것이고, 독실한 신자 사서가 있는 도서관에는 과학 서적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사서는 '중립성'을 지키는 전문가입니다. 여기서 중립이란 '아무런 입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와 반대되는 생각, 사회적으로 불편한 생각, 심지어 혐오스러운 주장을 담은 책이라도 이용자가 원한다면 볼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도서관 권리 장전 (Library Bill of Rights)
미국도서관협회(ALA)가 1939년에 채택한 '도서관 권리 장전'은 전 세계 사서들의 헌법과도 같습니다. 그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도서관 자료는 저자의 출신, 배경, 견해 때문에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도서관은 검열을 통해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해야 한다."
실제로 나치의 분서갱유(책을 불태움) 시절, 그리고 냉전 시대의 매카시즘(공산주의 색출) 광풍 속에서도, 깨어있는 사서들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사회주의 서적을 서가에서 빼라는 압력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건 공산주의가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읽고, 스스로 판단할 권리"였습니다.
3. '불편함'을 허용하는 용기
물론 도서관에는 정말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책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해리 포터>가 악마의 책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특정 정치 서적이 혐오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헌정보학은 말합니다. "한 사람의 혐오가 다른 사람의 지적 호기심을 막을 수는 없다"고.
나에게는 독이 되는 책이 누군가에게는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 '독'을 직접 맛보고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그 책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판단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지, 책을 숨기는 '사서'나 '권력'의 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 금서 주간 (Banned Books Week)
그래서 매년 9월 말, 전 세계 도서관들은 '금서 주간(Banned Books Week)' 행사를 엽니다. 역사적으로 금지되었거나 금지 요청을 받았던 책들을 보란 듯이 전시합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앵무새 죽이기>, <1984>, 그리고 <해리 포터>까지.
이 명작들이 한때는 '위험한 책'으로 낙인찍혀 사라질 뻔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사서들은 이용자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당신이 오늘 이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건, 누군가(사서)가 검열에 맞서 이 책을 지켜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서관이 단순히 '조용한 공부방'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요새(Arsenal of Democracy)'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