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점수와 플러팅의 상관관계
사회학자들은 가끔 짓궂은 실험을 통해 인간의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즐긴다. 여기, 인간의 자존감이 얼마나 하찮은 종이 한 장 차이인지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연구진은 한 그룹의 남성들에게 유치원생도 풀 수 있을 법한 쉬운 문제를 주고 '천재'라는 착각을 심어주었다. 반면, 다른 그룹에게는 아인슈타인도 울고 갈 어려운 문제를 주어 처참한 패배감을 맛보게 했다.
그 후, 그들을 이성들이 있는 방으로 보냈다. 결과는 적나라했다. 쉬운 문제를 풀고 의기양양해진 남성들은 망설임 없이 가장 매력적인 여성에게 다가가 구애했다. 반면, 어려운 문제 앞에서 좌절한 남성들은 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스스로 판단하기에 경쟁률이 낮아 보이는 상대에게만 소심하게 접근했다. 여성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고작 종이 쪼가리에 적힌 점수 따위가 한 인간이 타인을 사랑할 자격과 용기까지 결정짓는 '알고리즘'으로 작동한 것이다.
이 실험은 슬픈 진실을 시사한다. 현대인의 자긍심은 내면의 단단한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던져주는 '합격' 목걸이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삶에서도 빈번하게 관찰된다. 대중은 장애인이 조금만 능숙하게 걸어도 "대단하다"며 과한 점수(칭찬)를 주고, 작은 실수라도 하면 "역시 안 돼"라며 가혹한 점수(비난)를 매긴다.
타인의 채점표에 일희일비하다 보면, 영혼은 조울증에 걸린 시계추처럼 칭찬과 비난 사이를 멍하니 오갈 뿐이다.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날아오는 '당근과 채찍'이라는 자극제로부터 감각을 차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타인의 평가를 무시하고 자긍심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해답은 스스로에게 시험을 출제하고, 스스로 채점하는 '자율적 입법자'가 되는 것이다.
이 분야의 권위자는 단연 칸트 철학을 전공한 파트너 보보다. 그녀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자신만의 '패션 고사'를 치른다.
그녀의 옷차림은 때로 대중적인 미적 기준과 거리가 멀 때가 있다. (형광색 양말에 빈티지 드레스를 매치하는 식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그녀는 당당하다. 그녀의 기준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이 코디가 나의 미적 논리에 부합하는가?"라는 내부의 정언명령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출제한 난해한 패션 시험을 통과했기에, 그녀의 자긍심은 거리 위에서 누구보다 높고 단단하다.
자긍심을 건축하는 가장 확실한 자재는 '위험(Risk)'이다.
안전한 길만 골라 다니며 얻은 100점은 자긍심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부러 어려운 과제를 설정하고, 깨질 위험을 감수하며 덤벼보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자존감의 근육을 키운다.
시각장애인에게는 매일이 이 '위험 감수'의 연속이다. 익숙한 경로를 벗어나 새로운 맛집을 찾아가는 일, 점자 메뉴판이 없는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시도해 보는 일.
비록 주문에 실패하여 원치 않았던 '따뜻한 파인애플 주스'를 마시게 될지라도(명백한 실패다), 그 시도 자체를 스스로 칭찬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공했는가?"라고 묻는 것은 타인의 방식이다.
"위험을 무릅썼는가?"라고 묻는 것이야말로 주인이 되는 방식이다.
결국, 자긍심이란 승리의 트로피 개수가 아니라, 상처 입을 각오를 하고 링 위에 올라간 횟수에 비례한다.
오늘도 보보는 난해한 철학 책과 씨름하고, 연구자는 복잡한 데이터와 씨름한다.
우리는 매일 기꺼이 실패하고, 기꺼이 자신을 사랑하는 중이다. 타인의 채점표 따위는 구겨버린 지 오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