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두 얼굴

패닉(Panic)과 오르페우스의 리라

by 김경훈


그리스 신화에는 소리를 지배하는 두 가지 상반된 힘이 존재한다.

하나는 아르카디아의 험한 산을 뛰어다니는 반인반수 '판(Pan)'이 만들어내는 거칠고 본능적인 소리이며, 다른 하나는 트라키아의 음유시인 '오르페우스(Orpheus)'가 리라(Lyre)로 연주하는 정교하고 이성적인 소리다.

이 두 신화적 원형은 오늘날 우리가 소리와 정보를 소비하는 방식을 완벽하게 은유한다.



판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전체(All)'를 뜻한다. '팬데믹(Pandemic)', '파노라마(Panorama)'의 어원이 된 이 거창한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패닉(Panic)', 즉 집단적 공포의 어원이기도 하다.

신화는 말한다. 판이 숲에서 지르는 괴성은 군중을 이유 없는 공포로 몰아넣어 이성을 마비시킨다고. 왜 '전체'가 '공포'가 되는가? 인간의 인지 능력은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 감당할 수 없는 '전체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질 때 뇌는 과부하에 걸려 패닉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인터넷 환경은 판의 영토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 혐오 발언, 알고리즘이 쏟아내는 무한한 데이터의 소음. 이 '전체성(Pan)'은 우리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립시키고 불안하게 만든다. 현대인은 매일 스마트폰이라는 판의 피리 소리를 들으며 정보의 숲에서 길을 잃는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경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안내견 탱고의 눈으로 길을 보고,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1,08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1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공포와 매혹의 이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