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석이 결정하는 존재의 풍경

비행기 18열에서 배운 ‘타인의 자리’

by 김경훈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좌석’을 예약한다. 비행기 이코노미석부터 도서관의 열람석, 혹은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의 내 자리까지. 단순히 엉덩이 붙일 공간을 찾는 일 같지만, 사실 어디에 앉느냐는 우리가 세상을 어떤 각도로 바라볼지, 그리고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를 결정하는 인문학적 선택이다. 뱅쿠버로 향하던 정 씨가 만난 ‘18열’의 비밀처럼 말이다.



자유의 대가 혹은 환대의 의무


A380 항공기의 18열은 이코노미의 VIP석이라 불린다.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그 ‘광활한 자유’는 매력적이지만, 거기엔 묵직한 조건이 붙는다. 비상시에 승무원을 도와 타인을 구해야 한다는 사회적 계약이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18열은 ‘나의 편안함’과 ‘타인의 생존’이 맞닿아 있는 윤리적 지점이다. 내가 다리를 뻗는 공간은 누군가의 탈출로가 되어야 한다. 결국 진정한 명당이란 단순히 공간이 넓은 곳이 아니라, 나의 여유가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임의 자리라는 뜻이다. 우리는 충분히 다리를 뻗고 있는가? 그리고 그만큼 타인을 위해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16열의 비극과 인간의 유한성


반면 비상구 바로 뒤인 16열과 17열은 좌석조차 젖힐 수 없는 고통의 공간이다.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이 개인의 신체를 억압하는 현장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인간의 유한성을 절감한다. 앞선 자의 자유(18열)를 위해 누군가는 무릎이 닿는 비좁음을 견뎌야 한다면, 그 시스템은 과연 공정한가?


정보학에서도 분류 체계의 끝단에 놓인 데이터들이 소외되듯, 좌석 배치라는 사소한 인덱싱 오류는 누군가의 10시간을 지옥으로 만든다. 나쁜 자리에 앉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보이지 않던 시스템의 폭력’을 감각하게 된다.



왼쪽과 오른쪽, 시선이 창조하는 세계


제주로 갈 때는 왼쪽, 히말라야로 갈 때는 오른쪽. 이 치밀한 선택은 단순히 경치를 구경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마주할 세계의 해상도를 결정하는 행위다.


좌회전하는 비행기 안에서 비양도를 내려다보는 이와 구름 낀 한라산만 마주하는 이의 여행은 같은 노선일지라도 전혀 다른 ‘텍스트’로 기록된다. 결국 삶의 풍경은 운이 아니라 의지의 산물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 미리 지도를 읽고 자리를 선점하는 수고로움이야말로, 내 삶을 우연에 맡기지 않겠다는 인문학적 리터러시의 실천이다.



KTX 2호차의 온기 : 서비스가 흐르는 최단 거리


KTX 2호차가 명당인 이유는 승무원실과 가깝기 때문이다. 이는 기술적 효율성보다는 ‘돌봄의 거리’에 가깝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응답받을 수 있는 자리를 찾는 본능. 홀수 열 좌석을 선택해 더 넓은 창으로 세상을 보려는 욕망.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단순히 이동하는 화물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존엄한 주체’임을 증명한다.



좌석 번호 하나가 주는 위안과 고통 사이에서 우리는 삶의 기술을 배운다. 비상구 좌석을 얻기 위해 공항에 일찍 나가는 부지런함은 더 나은 삶의 궤적을 그리려는 인간의 본질적인 노력과 닮아 있다.


내 인생이라는 비행기에서 나는 지금 몇 열에 앉아 있는지 자문해 본다. 타인을 위해 비상구를 열 준비가 된 18열인가 아니면 그저 구름 뒤에 숨은 한라산을 원망하며 16열의 좁은 틈에 갇혀 있는가. 어디에 앉든, 창밖의 풍경을 선택할 권리만큼은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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