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 연재를 시작한다. 일전에 회사에서 ‘면팀(팀장 직위를 면함. 좋든 실든)’하게 된 선배들 사연을 글줄로 적었다. 회사 조직은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 위로 오르지 못하면 비키거나 내려와야 한다. 그 일이 지난 연말 회사 인사이동에서 내게도 일어났다. 언젠가는 닥쳐올 줄 알았던 사건을 맞이해 몸소 겪는 심리적, 인지적, 행동적, 신체적 변화에 대해 스스로를 시험체로 내어 놓는다. 엄밀히는 자원한 건 아니지만. ^^
이제부터 하나씩 쌓아갈 글들은 그것에 대한 임상시험 기록이다. 필자의 이전 글들보다 더 두서없을 전망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좀비 바이러스의 창궐을 다룬 영화를 보면 그것을 만들거나 없애기 위해 완전히 미친 과학자가 반드시 등장한다. 카메라가 달린 모니터 앞에 앉거나 가운 앞섬에서 자그마한 녹음기를 꺼낸다. 시험체의 변화와 관련된 기록의 파편을 그때그때 남긴다. 그것을 나중에 발견한 주인공 일행들의 관점에서 그 기록은 충분히 두서없을 만하다.
필자의 인사이동은 실은 완전히 예상 밖의 것은 아니었다. 이전 부서에서 짧지 않은 기간 팀장을 맡아왔다. 그 자리가 업무 적성에 딱 맞춤한 것도 아니어서 영구히 독점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삼 년 전부터는 연말이 되면 ‘올해까지겠지’ 자연스레 떠올렸다. 다만 옮겨갈 자리가 최소한의 근로 의욕을 일으키는 곳이기만 바랐다. 지난 하반기 인사평가 면담에서 상관인 부문장(가칭)이 필자의 부서 이동에 대해 먼저 거론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 인사발령 전날 따로 호출해 그것의 실현에 대해 귀띔해 왔다.
최악인지, 최악은 면한 것인지 아리송했다. 필자는 첫 직장이었던 전 회사를 포함해 두 군데 방송사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며 제작과 편성 부서에서만 일했다. 모두 직간접적으로 방송 콘텐츠를 취급하는 업무다.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방송 현업 부서가 아닌 곳으로 가게 됐다. 부문장은 필자의 팀장 직위 유지가 가능한 자리를 물색했으나 여의치 않았단다. 그러나 필자의 특장점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곳으로, 그곳 부문장에게 ‘잘’ 얘기해 두었으니 가서도 ‘잘’ 해주었으면 좋겠단다. 두 번 등장한 ‘잘’이라는 부사가 무척 생경하게 다가왔다.
퇴근해서 친한 동료와 조촐한 송년 술자리를 가졌다. 서로 수고하고 애쓴 지난 일 년을 격려했다. 동료의 지난 회사 생활도 평탄하지 않았다. 이곳저곳 팀을 옮겨 다니는 스포츠 선수를 ‘저니맨(journey man)’이라고 부른다. 동료의 자칭이다. 그러면서 처음 익숙한 둥지를 떠나는 필자를 걱정했다. 다른 방송사들 보면 사람 쳐내고 자르느라 난리인데, 그것보단 낫지. 가서 한 번 해봐야지 뭐. 술기운 덕분인지 조바심까지 들진 않았다. ‘될 대로 돼라’의 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