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을 것 같았던 마음은 동료와 마신 술이 깨면서 주말 새 요동쳤다. 온갖 비관적인 상상이 사고 중추를 마비시켰다. 불면은 당연했다. 일주일 같은 하루, 한 달 같던 일주였다. 출근해서 미리 싸두었던 짐을 새 자리로 옮겼다. 상자를 밀차에 실어 화물 승강기에 오른다. 그 모든 동작이 어색하고 볼품없게 느껴졌다. 옮겨온 사무실 바닥이 어지럽다. 그곳 직원들도 여기저기 분주하다. 매우 어수선해서 안정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광경. 지난 몇 년간 남의 사정이던 일이 내 것이 된다. 첫날은 어떻게 하루를 채우고 퇴근했는지 모르겠다. 불안. 두 글자로 가득 찬 시간들이었다.
이삼일은 잠을 못 잤다. 잠들 수 없었고 겨우 잠드는 듯해도 새벽에 여지없이 깼다. 밝고 좋은 쪽으로 사고를 유도해도 자꾸만 어두운 길로 파고들었다. 끼니도 어떻게 때웠는지 모르겠다. 이전 부문장도 그런 것 아니라고 하고, 주변 동료들도 손사래 쳤지만 조직의 형벌인 건가 싶었다. 나가라는 건가. 네 효용은 여기 까지라는 말인가. 멘털이 과자 쿠크다스처럼 바스러졌다. 회사원이란 참 허약한 존재구나. 권력 있는 자의 장기판 말놀음에 속절없이 휘청거리는구나. 어려서 공부를 어설프게 잘할 것이 아니라 제일 앞줄에 설만큼 끝까지 잘했어야 하는데. 그래서 이딴 방송사 직원이 아니라 의사, 판검사, 변호사, 회계사 따위의 면허로 자생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어야 하는데. 늦어도 너무 때늦은 후회까지 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불편한 진실을 미리 털어놓으려는 마음이었을까. 아내와 노부모에겐 새해 출근 전에 말해두었다. 두 노인네 걱정할 것이 걱정됐지만 가족끼리 신상 변화에 비밀은 없다가 원칙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장성한 아들이 마마보이처럼 늙은 어미의 위로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 동기, 선후배 등 노란 메신저를 활용해 필자의 보직 변경에 대해 알렸다. 우스꽝스럽지만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어처구니없는 응석이다.
삼일 차 출근길 전철에서 급기야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고 회사 생활도 온전히 잘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꼬인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궁리하다 몇 년간 소원하고 격조했던 옛 인연들을 떠올렸다. 그중에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아니 떠오르지도 않는 까닭으로 다투어 멀어진 친구, 선후배 몇이 손에 잡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다시 세워보자. 인간관계부터 온전히 돌려놓자. 아직 어둑한 뜬금없는 아침에 지난 잘못에 용서를 구하는 문자를 보냈다. 신기하게 그 아침에 모든 사람으로부터 응답이 왔다.
다음날 정오 무렵에는 대학 은사님을 찾았다. 필자는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언론학을 부전공했다. 강의 열심히 듣는 타 단과대생이 어느 신문방송학과 교수님 눈길을 끌었던 것 같다. 그분이 언론사 입사 준비도 이끌어주셨다. 장가들게 된 아내를 보여드렸고 결혼식 주례를 봐주셨다. 교수 연구실 문을 노크하고 열었더니 응접 테이블 위에 도시락 두 개가 있었다. 회사에서 일어난 사정을 말씀드렸다. 중년 네 나이 때쯤 그런 일들이 생긴단다, 금전·건강·이성 관계 중에서 마치 목에 칼을 겨누는 것 같은 위기가 찾아온단다, 다 지나가는 일이고 그저 새옹지마란다, 선생님은 네 나이 때 그런 일이 없었을 것 같니? 이 나이 먹도록 연로한 스승에게 위로를 구한다. 연구실을 나서며 “선생님, 못난 제자여서 죄송합니다.” 했더니 네가 왜 못난 제자냐며 호통 치셨다.
금요일 퇴근을 한두 시간 앞두고 아내와 통화했다. 평소에는 급한 집안일 아니면 일터에서 전화하지 않는다. 불안한 일과 가운데 잠깐 듣는 아내 목소리는 세상 무엇보다 효과 빠른 진통제다. 오늘도 버티느라 애쓰셨겠네, 이따 퇴근해서 아이 학원 끝나면 집 앞 단골 삼겹살집 갈까? 아내 음성에 지옥 같던 지난 며칠이 지나고 기어이, 어찌 됐든 금요일 방과 후가 가까움을 체감한다. 그럽시다, 당연히 동의하며 통화를 마쳤다. 부부지간은 내 인생 소박한 행복을 구성하는 절대적 조건이다. 애교라곤 없는 뻣뻣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단단한 ‘철의 여인’이다. 말로 하지 않는 애정을 내게도 깊이 품었음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느낀다.
새해 첫 출근한 며칠 전과 비교하면 연옥에서 사바세계쯤 올라온 멘털의 회복이다. 모두 가족과 친구, 동료, 선후배들의 가슴 깊은 위로와 응원 덕분이다. 엊그제 아침에는 정말로 인생 잘못 산 것 같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고맙고 감사하다. 나의 생애를 맞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언제고 더 큰 사랑을 여봐란듯이 돌려주고 말 테다. 아울러 주말 새 또다시 어두운 생각이 파고들어 몹쓸 불안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이렇게 면팀 1주차 임상 기록을 맺는다. 이 인생 시험의 끝에 어떤 인류적 발전과 성취가 있을지 알 수 없다. 다만 나로 인해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고통받지 않길 바란다. 아픔 없는 성장이 없듯, 이것보다 더 큰 시련과 위기, 고난과 역경이 닥쳐올 때 꿋꿋이 버텨내는, 시간이 빚어낸 귀중한 자산이 되길 절대자에게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