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밍아빠 Jun 22. 2016

도시락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회사 근처의 편의점이 보인다. 들어가서 도시락을 하나 집어 들었다. 편의점 앞 벤치에서 혼자 도시락을 든다. 비가 내린다. 부슬비라 파라솔 아래서 피할만하다. 상쾌한 공기와 빗소리가 어우러져서 호젓하다. 도시락을 먹고 있자니 지나간 추억들이 떠오른다.




20살 때 처음 일본땅을 밟았다. 친구와 단둘이 10일간 배낭여행을 떠났다. 어릴 때 일본에서 몇 년간 생활했던 친구 덕분에 일본어라고는 '곤니찌와, 스미마셍' 밖에 모르지만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처음 편의점 도시락을 만났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편의점 도시락이 발달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삼각김밥과 김밥 정도만 팔았다.


처음 먹어본 일본 편의점 도시락이 너무 맛있었다. 덮밥, 초밥, 라멘도 먹어보았지만 나는 편의점 도시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었을까? 비싼 메뉴를 먹는 것이 부담스럽던 차에 편의점 도시락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음식 같았다. 저렴하고 푸짐하면서 맛이 있었다. 그야말로 가성비 최고의 음식이라 여행기간 동안 몇 번이나 도시락을 사 먹었다.




10년 정도 지나서야 우리나라 편의점에도 도시락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혼자 살 때 아침을 편의점 도시락으로 자주 해결하곤 했다. 새벽에 운동을 하고 강변을 바라보며 먹는 도시락은 꿀맛 같았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건강을 우려해서 제재를 당하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도시락이 좋았다. 집에서 먹던 반찬이라도 맛이 달랐다. 함께 먹는 친구들과 떠들썩한 점심시간 분위기가 더 맛을 돋웠던 것 같다. 햄이나 소시지 반찬을 싸 달라고 졸랐지만, 어머니는 쉽게 승낙하지 않았다. 장조림, 전, 일미, 멸치, 김치 등 집밥 같은 반찬이 반찬통에 주로 담겨있었다. 그래서 내 반찬을 친구들이 선호하지 않았다. 그래도 불만 갖지 않았다. 왜냐하면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반찬 뚜껑을 들고 반을 한 바퀴 돌면서 친구들의 반찬을 얻어먹었기 때문이다.


너도 내 반찬 먹어


나는 나눠먹고 싶었지만, 친구들은 내 반찬에 손을 잘 대지 않았다. 그래서 내 반찬도 내가 먹고, 친구들 반찬도 또 먹었다. 반찬을 남겨가면 어머니가 속상해하시니깐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먹었다. 맛도 있었다.




어느 순간 도시락은 사라지고 학교 급식으로 바뀌었다. 다행히 나는 급식보다 도시락을 오래 먹었기에 그 추억이 마음속 깊이 남아있다. 가끔은 밖에서 사 먹는 밥 말고 어머니가 싸주시는 도시락이 먹고 싶다. 그 속에 담긴 정성과 손맛이 어떤 비싼 음식에 비할바 아니다.  


급한 대로 인스턴트 도시락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다시 직장으로 나간다. 밥 먹을 수 있어서 좋고,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밥 먹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