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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May 11. 2017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문을 다녀오며

여보.. OO님 와이프.. 어떡해?


오후 4시. 회사에서 한창 바쁜 시간. 폰 너머로 아내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전 직장동료이자 친한 형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30대 중반. 두 아이의 엄마. 가족과 이별하기엔 너무 가혹한 나이다. 그 가족들을 잘 알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당신 언제 갈 거야? 난 오늘 저녁에 넘어가 봐야겠어."


결혼 전 형의 가정을 보면서 나는 결혼에 대한 꿈을 꾸었다. 사람 사는 냄새, 소소한 가족들과의 시간이 너무 아름다웠다. 참 행복하고 예뻤다. 그 집에서 몇 번 놀러 가서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냈다. 결혼을 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종종 함께 만나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 동네에 살던 그 가족은 형수의 건강이 악화되고 공기 좋은 시골로 이사 갔다. 가끔 사진으로 접하는 가족들의 시골생활 또한 나에겐 만족감을 주었다. 상태가 좋아졌다고 했다. 이 가족의 행복이 지속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주말에 가족들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와 
고기도 구워 먹고 이야기도 하고 재밌게 놀자

 

가끔 형과 통화를 하면 놀러 오라는 말을 꼭 했다. 언제 한번 간다는 것이 2시간 남짓한 거리를 두고 자꾸만 미루었다. 보고 싶은데, 정말 찾아가도 될지 망설여졌다. 이런 만남을 바란 게 아닌데..




인간이 참 잔인하다. 우리 부부는 눈물을 흘리며 조문 갈 채비를 했다. 출발 전 아내는 눈물 닦고 급하게 과제를 제출했고, 나는 급한 회사일을 처리하고 저녁을 대충 먹었다. 마음이 아리고 슬픈데 배가 고팠다. 그래서 죄책감이 든다.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자 슬픈 감정이 커졌다.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잔인하고 자기중심적이다.


누군가는 고통스럽고, 세상이 무너질 텐데, 누군가는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다. 상관없는 누군가는 이 순간 파티를 열고 축하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 사람이 산다는 게 다 그런 것일까?


중학생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부모님과 친척들이 모두 목놓아 우는데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좋았고, 슬펐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때 스스로가 매우 부끄러웠다. 




최근 들어 조문을 자주 갔다. 곡소리를 하고, 목놓아 울다가도 손님이 오면 반가워서 웃으며 술 한잔 하는 상주가 이제 어색하지 않다. 상갓집에서 화투 치고,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것이 이제는 이상하지 않다. 침울하게 앉아있는 것보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상주들을 위한 노력일까?


사람이 사는 것이 그렇다. 어제만 해도 동료를 잃고 회사가 다 끝난 것처럼 울고 실의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며칠이 지났는데 아무렇지 않게 일하고, 회식하고, 웃고 떠들고 장난을 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이런 것일까?



힘없는 얼굴로 찾아줘서 고맙다는 형에게 나는 아무런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대게 조문을 가면 어르신들의 상을 당한 경우가 많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실 겁니다."같은 인사말을 하는데..


형...

처상을 당한 형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손을 꽉 잡고, 입술을 꽉 물고 부둥켜안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어린 아들이 장난을 걸어와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행동에 아내는 또 한 번 눈물을 왈칵 쏟았다. 어제 발인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텐데.. 나는 또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거나 힘이 되지 못할 테니깐..


형수님의 명복을 빌고, 형의 가족들도 다시 행복을 되찾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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